<북리뷰>“노동현장 안전사고 ‘10’에서 ‘1’됐다고 박수쳐선 안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신간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에서 노동·성(性)·교육 등과 관련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분석한다. 오찬호 작가 제공

- ‘세상이 …’ 펴낸 사회학자 오찬호

인간을 존엄하지 못하게 하는
차별·무례함 등에 관한 비평

“그릇된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세상 만들 수 없어
읽으면 우울한 글 계속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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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구조를 비판하면 “제발 긍정의 자세를 가지라”고 타박하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조차 “나아진 현실을 부정하는 배배 꼬인 생각”이라는 냉소에 막히는 사회. 사회학자 오찬호(42)가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이다.

경제 규모를 키우고 첨단 기술을 발전시킨 ‘성과’는 인정하지만, 그의 눈길이 머무르는 곳은 세상의 어두운 그늘이다. 차별과 불평등, 혐오와 무례함이 “인간을 존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는 이런 단상들을 정리한 사회비평서다.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제목이 아닌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들에 관하여’라는 부제에 담겼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년) 이후 벌써 12번째 책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엮었다. 칼럼 모음집답게 한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보다 노동과 성(性), 학벌주의 등 여러 키워드로 촉수를 뻗치며 ‘잽’을 날린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노동 환경에 대한 얘기부터 해볼까요. 전태일 열사가 살던 시대보단 당연히 나아졌죠. 하지만 이 ‘팩트’가 노동자 38명이 사망한 경기도 물류창고 화재 사건을 덮을 수는 없죠.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던 청년의 죽음을 가릴 수도 없고요. 안전사고가 ‘10’에서 ‘1’이 됐다고 박수 쳐선 안 됩니다. ‘0’이 될 때까지 ‘아직은 미흡하다’고 주장해야 ‘0’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오찬호는 노동경시 풍조를 ‘학력 제일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을 줄이는 ‘안목’을 키워주지 않고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묘수’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노동자를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열다섯 시간씩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배달기사의 고충”이 마음 쓰이고, “웬만한 산재 사고는 이슈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정규직·비정규직을 둘러싼 인천국제공항(인국공) 논란도 이 예민한 학자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남겼다. 오찬호는 ‘인국공’ 사태에서 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차별을 넘어 “해서는 안 될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개인들의 무례함을 봤다. “비행기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검색 요원이 ‘아르바이트하다가 로또 취업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요. 스스로 ‘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취업 준비생이 수많은 병·정·무의 요구를 자신의 자리를 뺏는 것으로 느끼며 분노하는 것이죠. 물론 정규직 전환 자체가 절대적 정의는 아니니 다양한 반론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시험 없는’ 정규직 전환이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부르짖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인생 자체가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청소라도 해서 정규직으로 들어가야 하나’라는 한 취업 준비생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청소라도…’라는 표현은, ‘몸 쓰는 노동자가 무슨 정규직 타령을…’이라는 뜻이겠죠.”

책은 동성애 차별을 줄이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시민들의 변화된 의식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동성애 이슈만큼은 법을 먼저 바꿔 의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혼인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는 헌법 36조에서 양성평등을 성 평등으로 바꿔야 합니다. 최상위법을 개정해서라도 그동안 배제된 소수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죠. 철 지난 ‘정상(正常) 이데올로기’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건 그만둬야죠.”

책은 이밖에 성 착취 영상을 유포한 ‘N번방’ 가해자 등을 거론하며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린다. 7∼8개의 칼럼을 묶은 각 부(部)에는 모두 ‘∼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다’는 소제목이 달렸다. ‘∼’을 채우는 건 행복, 교육, 성 평등 같은 단어다. 어떤 생각이 담긴 문구일까. “자기계발서들은 ‘긍정의 에너지’를 열심히 전파하죠. 그 나름의 역할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학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특정 인종이 더 행복했고 특정 성별이 더 행복하지 않았잖아요.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라,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도 이 조건에 주목하며 ‘읽으면 우울해지는 글’을 계속 쓸 거예요. 그릇된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