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사람 사이는 더 가까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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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시대 일상과 미래 기록한 책 두 권

-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
생애 첫 비대면 수업 사회학자
강의 경청하는 학생들에 고마움
과잉 풍요의 시대 경쟁과 결별
협력과 연대의 가치 복원해야

- ‘열병의 나날들’
신천지發 집단 감염·첫 사망자
약국앞 긴줄·줄서서 투표하기
이태원서 7년째 한국살이 하는
콜럼비아 작가의 촘촘한 묘사

“전쟁이 끝나면 모두 끔찍했던 기억을 서둘러 잊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의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렇다. 감염병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언제나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기록’이다. 그래서 한국의 사회학자와 콜롬비아의 소설가가 ‘코로나 시대’의 일상과 미래를 살핀 책을 썼다.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나남)과 ‘열병의 나날들’(시공사)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이제는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시점이라고, 팬데믹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재난’이 아닌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

“거리를 둬야겠지만 이럴수록 사람들 사이는 더 가까워져야 한다. 배려·연대·공동체가 요즘처럼 중요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 하나하나가 ‘또 다른 처음’을 만드는 근간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가 쓴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은 감염병이 바꾼 강의실 풍경에 관한 에세이다. 올해 3월 2일부터 6월 22일까지 사회학과 신입생을 위해 개설한 ‘사회학적 상상력’ 수업의 진행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담았다. 봄날에 쓴 일기들은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탄식으로 가득하다. 강의란 “학생과의 교감 속에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이라 믿던 저자에게 비대면 강의는 “상상력 수업에 상상력이 빠진” 것처럼 난감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대들이 나의 강의를 경청하고 시선을 집중해줘서 고맙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극히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인 교훈을 얻는다.” 이런 안타까움 속에 저자는 한 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로 수업을 시작했다. “행복할 때 자만하지 말고, 불행할 때 좌절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지만, 스승이나 제자나 지금은 결코 행복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일기의 날짜가 바뀌면서 비(非)일상으로 여기던 일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적응하는 인간(호모 어덥턴스)’의 면모가 서서히 발휘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전염이 우리 자신을 폭로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저자의 성찰이다. 그동안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살지 않았나. 경쟁의 바퀴가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과잉 풍요’의 시대와 결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절제와 느림’의 미학을 수용하되 ‘속도 경쟁’이 놓쳐버린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끈질기게 복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깨달음 덕분에 ‘참 다르게 시작한 시간’은 ‘새로운 질서를 허락한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고 보면 저자가 인용한 앤서니 기든스의 말처럼, 본래 사회학이란 “한 걸음 물러나 일상적인 삶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스스로 거리를 두고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던가.

◇‘열병의 나날들’

‘한국에 삽니다’로 콜럼비아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태원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안드레스 솔라노는 ‘코로나 시대’의 한국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되며 주목받은 책은 코로나를 분석하거나,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느린 호흡’으로 한국을 탐사하는 작가의 눈은 어떤 담론과 예측보다 훨씬 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는 목격자이자 관찰자의 입장을 적당한 ‘거리’에서 견지하는데, 예컨대 중국 우한(武漢)에서 들어와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이 자가격리를 하지 않았을 때 “새 확진자들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우한에서 입국한 데다 의심 증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생활을 한 것이다”고 질타하면서도, “ 가만, 궁금하다. 정상 생활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정상 생활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 있는지, 정상 생활을 그만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라며 질문을 던진다. 또 확진자의 이동 경로가 공개될 때에는 “사설탐정조차도 이토록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놀라워하면서도 탈북민과 간첩,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러낸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 그리고 타인의 동선을 살피는 데에 집중하느라 바빴던 ‘우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책은 올 1월 중순부터, 4월 총선 때까지의 약 100일간의 한국 사회 풍경인데, 이는 K-방역의 흔적들을 쫓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첫 확진자 발생일, 첫 사망자가 나온 날, 우한 전세기가 들어오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 뉴스,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공적 마스크 판매 제도, 신천지발 집단감염, 1m씩 거리를 두고 줄을 서서 투표하는 사람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는 것만큼이나, 벌써 까마득해진 ‘지난날’이 솔라노의 낯선 사유와 감각적인 질문들과 함께 되살아난다.

토마토와 감자는 늘 꼭 직접 보고 골라야 했던 저자는, 난생처음 인터넷으로 장을 보게 됐고, 확진자가 급증하면서는 그 수를 기록하는 것도 포기한다. 그러다 어느 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얼마나 깊게 그 상흔이 이 나라를 가로지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그저 우리에게 다가온 이것과 함께 살기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박동미·나윤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