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김주원의 ‘사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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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연습하다 허리디스크가 터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혼자서는 옴짝달싹 못 하다가 조심스럽게 걷는 운동을 시작하고 한 달쯤 후에 겨우 병실 바깥의 벤치까지 가서 잠시 누웠는데, 나뭇가지의 여린 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던가. 매일 그 벤치에 가서 누웠다.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연두색 어린잎이 2주도 안 돼 검푸른 초록으로 바뀌었다. 아, 아름다운 시절은 이렇게 짧구나. 힘센 종마(種馬)처럼 내달렸던 젊은 시절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김주원(43) 성신여대 교수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2017년 봄의 경험이다.

몸이 한창 젊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상태로 유지하려면 이제 연습량을 2∼3배 늘려야 한다는 그가 큰 부상을 겪고 다시 일어서 새로운 도전으로 꿈과 희망을 더 이은 것은 그때뿐만이 아니었다. 2005년 그는 무용가에겐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은 적도 있으나, 6개월 동안 매일 12시간 이상씩 온몸의 근력 운동으로 토슈즈를 다시 신을 수 있게 됐다. 그러고 그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면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프랑스어로 ‘춤의 영예’라는 뜻의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상을 한국인으로선 강수진에 이어 두 번째로 2006년에 받았다.

수석 졸업한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 유학 당시에도 ‘연습광’이던 그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잠도 하루 4∼5시간만 잔다. 1998년 입단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를 15년간 지키다가 2012년 내려놓으며, 뮤지컬·연극·오페라·한국무용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온 그가 ‘김주원의 사군자(四君子) - 생의 계절’을 서울 정동극장에서 오는 22일부터 11월 8일까지 초연한다.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을 춤에 담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그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 ‘인연’에 대한 생각을 무용·대사·음악·연기 등에 담아내는 복합 장르 작품이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두 존재의 만남-이별-재회-윤회를 상징하는 매란국죽(梅蘭菊竹) 이야기로, 대본 지이선, 안무 김성훈, 연출 박소영, 음악감독 정재일, 예술감독 정구호, 배우 박해수·윤나무, 발레리노 김현웅·윤전일·김석주 등이 함께 나섰다. 김주원의 새 도전이 또 큰 감동을 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