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기술이 지구파괴를 막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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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피크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4차산업혁명 전문가인 저자 “인류번영·지구건강 동시에 성취 가능”
스마트폰이 지도·카메라 대체했듯 기술발달로 종이소비 감소 주목
“美 ‘지구착취 정점이후 시대’ 들어서… 생태계 덜 오염시키는 방법 찾았다”

북미 종이소비량 급감은 亞로 ‘오염물질’ 이전시킨 글로벌 분업체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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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맥아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의 신작 ‘포스트 피크’는 우리 모두를 안심시키는 매혹적 주장을 펼친다. “인류의 번영이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시대는 끝났다. 마침내 우리는 지구를 덜 착취하면서도 성장을 지속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산업시대에 기술 발전과 자본주의는 지구에 악행을 저지르면서 인류를 파국의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 때문에 1970년 ‘지구의 날’ 이후, 지구를 더 잘 돌보려면 소비를 줄이고 욕망을 억제하는 등 우리의 성장주의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불처럼 일어났다.

저자는 이 주장이 더 이상 옳지 않다고 말한다. 산업시대 초기에 노동자 삶의 질이 악화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결국 이를 극복했듯, 현재 인류는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을 조화시켜 “인류의 번영과 지구의 건강”을 동시에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비롯해 소비를 탈물질화해 주는 디지털 기술”의 발명 덕분이다. “디지털 기술은 원자를 비트로 대체”함으로써 인류로 하여금 “덜 쓰면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여기에 오염과 멸종 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깨어나고, 이에 맞춰 적절한 규제를 도입하는 등 ‘반응하는 정부’가 힘을 덧대면서, 인류는 “인간 조건과 자연 상태를 둘 다 개선”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기술 발전, 자본주의, 대중의 인식, 반응하는 정부를 ‘낙관주의의 네 기수’라고 부른다. 요컨대 우리는 잘하고 있다. 맬서스와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렸듯이, 환경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급진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경제와 사회가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운전대를 꽉 움켜쥔 채 “가속 페달을 밟고 있기만 하면 된다.” 풍요를 누리고 기술의 혜택을 즐기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

이 말은 사실일까. 간단한 증거가 있다.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지도, 나침반, 카메라, 팩스 같은 도구들을 대체해 자원을 절약하고 에너지 사용을 감쇄한다. 탈물질화 기술의 진전에 따라서 미국의 종이 소비량은 1990년에, 전 세계 종이 소비량은 ‘아마도’ 2013년에 정점에 달했다. 또한 미국의 에너지 총사용량은 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2017년까지 경제가 15% 이상 성장하는 동안 2%가량 줄어들었다. 금속 사용량이나 경지 면적 등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과 소비 증가가 비례한다는 환경주의자들의 가설은 오해에 불과하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지구 착취의 정점 이후 시대’에 들어섰다.” 공기와 물을 덜 오염시키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며,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방법을 미국은 기어이 찾아냈다. 기후위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뒤처진 국가들은 몰라도 정점을 넘어선 미국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유럽의 다른 부자 나라들과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도 미국을 좇아 속속 탈물질화에 합류 중이다.

물론, 조심할 부분도 약간 남았다. 오염물질 때문에 날로 뜨거워지는 지구, 텅 비어 가는 바다, 갈수록 집중되는 부, 단절된 공동체 등은 여전히 골칫거리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자원 소비 및 환경 피해를 분리하는 혁신이 결국 이를 해결할 것이다. 기업이 청정 기술에 더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탄소세 같은 적절한 정부 규제, 동물 복지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이에 호응하는 생물다양성 정책,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등 유전공학 기술의 활용,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 에너지의 이용 등을 통해 우리는 더 좋은 세상으로 갈 것이다. 아직 부의 양극화와 사회적 고립을 치유할 방안은 뚜렷하지 않지만, 기술을 가속화해 현재의 정체기를 빨리 건너면 우리 앞에 더 풍요롭고도 자연 친화적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암흑이 아니라 장미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러한 주장은 새롭지 않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려는 이른바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세련된 최신 버전에 가깝다. 기후위기를 가져온 사회·경제 체제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맞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딴죽을 걸어왔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없다느니, 온난화는 자연 주기의 변화에 불과하다느니, 온난화가 인간 탓은 맞지만 낙관을 품고 적응하면 된다느니, 기술이 또다시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느니 등의 이유를 들어 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신봉하는 비외른 롬보르, 제시 오스벨 등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탈물질화’의 확실한 증거로 제시하는 종이 소비량부터 틀렸다. ‘2018년 글로벌 제지산업 현황’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에서 종이 소비량이 ‘약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시아 소비가 ‘폭발’하면서, 2014년 역사상 최초로 4억t을 넘어섰다. ‘아마도’는 없었다. 여전히 북미의 1인당 연간 종이 소비량(215㎏)은 아시아(44㎏)의 4.9배, 아프리카(7㎏)의 30.7배에 달한다. 2008년 정점설도 잘못된 것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소비가 잠깐 위축됐을 뿐 이후 해마다 종이 소비는 증가했다. 북미와 유럽의 종이 소비 감소는 ‘탈물질화’ 덕분이 아니라, 필요한 ‘물질화’를 아시아로 이전한 글로벌 분업 체제 탓이다.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탈물질화’가 아니라 ‘탈진실’이고 “약탈적 지연”이다. 알렉스 스테픈의 말처럼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에서 돈을 벌려고 그사이 필요한 변화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것 말이다. 저자는 급증하는 양극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소외를 해결할 방법을 당장은 못 찾은 것처럼 주장하나,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에 내재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이 실제로 증명한 것은 풍요에 중독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도덕적 면책뿐이다. 392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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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읽으면 좋은 ‘세권의 책’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회의적 환경주의’의 종합판에 가까운 책. 지구온난화는 인간 행동 탓이 아니라 1500년 주기의 자연적 기후 변동 현상에 불과하고,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미미하며, 수십 년 후 기후를 예측하는 것은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지구 온도가 올라간다 해도 현대 기술로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므로 지구온난화는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팝니다 | 나오미 오레스케스·에릭 M 콘웨이 지음, 유강은 옮김│미지북스

대다수 과학자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지구온난화를 회의하고 부인하는 ‘회의적 환경주의’의 배후를 폭로한 책. 담배 회사의 돈을 받고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실험 결과를 유포했던 과학자들처럼,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용병 과학자와 호응하는 보도를 일삼는 의혹의 상인들 뒤에는 화석연료 기업들과 자유 시장을 옹호하면서 규제에 반대하는 마셜연구소 같은 극우 보수주의 싱크탱크가 숨어 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 조천호 지음│동아시아

미세먼지 등 피부에 와 닿는 ‘파란 하늘’ 문제에 사람들은 더 관심을 쏟지만, 실제로 심각한 것은 지구온난화, 즉 ‘빨간 지구’ 문제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자가 경고하듯이,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라는 상승 한계를 넘어서면 기후는 예측 불허의 시기에 접어든다. 문제는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의 결과로 이미 1도가 올랐다는 점이다. 인류가 번영을 지속하려면, 당장 0.5도를 지키기 위해 삶을 변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