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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23일(金)
메밀과 모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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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은 국문학자를 흐뭇하게 하지만 메밀은 국어학자를 괴롭힌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쓰임새도 많은 메밀은 잘못이 없지만 ‘메밀’과 ‘모밀’ 사이에서 국어학자는 헤맬 수밖에 없다. ‘밀’은 공통이니 ‘메’와 ‘모’만 해결하면 되는데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이 둘의 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메’는 거슬러 올라가면 ‘뫼’인데 ‘뫼’와 ‘모’가 넘나드는 게 영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곡물 앞에 쓰이는 접두사 ‘메’와 ‘찰’은 반대의 뜻으로 쓰인다. ‘메’는 찰기가 없다는 뜻이고, ‘찰’은 끈기가 있다는 뜻이다. ‘메지다’와 ‘찰지다’에서 유래한 ‘차지다’가 쓰이기도 한다. 찰기가 있고 없음에 따라서 찰벼와 메벼, 찹쌀과 멥쌀을 구별하니 메밀과 대비되는 ‘찰밀’이 있을 법도 한데 옛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찰밀’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밀 중에서 차지다는 것이어서 메밀과는 관계가 없다.

‘메’가 ‘뫼’에 소급되나 ‘산(山)’의 고유어인 ‘뫼’와 관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옛 문헌에 ‘뫼밀’은 안 보이고 ‘모밀’만 보이는 게 문제다. 한자로는 ‘목맥(木麥)’으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나무와 관련 있다기보다는 ‘모밀’의 ‘모’를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모밀’에 음운규칙이 적용되면 ‘뫼밀’이 될 수도 있으나 이렇게 형성된 ‘뫼’는 본래의 ‘뫼’와는 뜻이 다르다.

‘메밀 낟알을 보면 모가 세 개 나 있잖아. 그러니까 모밀이지.’ 강화도의 촌로한테 들은 이 한 마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모가 나 있으니 모밀이고 본래도 모밀이라는 너무도 간명한 답이다. 사전을 뒤져보니 신통찮은 사람도 쓸모가 있다는 ‘메밀이 세 모라도 한 모는 쓴다더니’라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을 보니 ‘쓸모’의 ‘모’도 왠지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책상머리에서 하염없이 궁싯대는 것보다 현실의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쓸모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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