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대신 뛰어난 청각, 음악은 최상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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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재활복지대회 서울시장상 받는 이재혁 피아니스트

출산과정에서 시신경 다쳐
15세때 세종회관서 독주회
美 유학 중 카네기홀 무대

“점자악보 제작 교정사 양성
후배에 도움되는 일 찾을터”

“장애와 비장애라는 벽을 넘어 모두가 서로 도와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피아노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23일 오후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리는 제41회 ‘흰 지팡이의 날’ 기념 시각장애인 재활복지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음악 활동의 지평을 넓힌 공로로 서울시장상을 받는 이재혁(54·사진) 피아니스트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상을 줘서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많은 관객과 묵묵히 지원해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출산과정에서 시신경을 다쳐 시각장애인이 된 그를 깜깜한 세상에서 구원해준 것은 피아노였다. 어머니의 권유로 6세에 피아노를 시작, 15세 때인 1982년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연소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주회를 했다. “말이 독주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엉망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연주회를 한다니까 격려해주는 차원이었지요. 최연소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후 중앙대 음대에 진학,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한 그는 음악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1995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전액 장학생으로 신시내티 음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학 중 1996년 세계적인 무대인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했다. 이어 2001년 뉴저지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두 번째로 카네기 무대에 섰다.

“시각장애인에겐 시각 대신 뛰어난 청각 능력이 있어 장애를 장점으로 승화할 수 있는 음악이야말로 최상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보를 볼 수 없어 통째로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피아노 연주가 몇 배는 더 어려워요. 시각장애인들이 좀 더 쉽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양질의 점자 악보 제작을 위해 요즘 점역교정사 양성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전문 연주단인 한빛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도 맹활약했다. 그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워싱턴, 중국 베이징(北京), 러시아, 일본 등 해외 초청공연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으며 연주를 통해 세상을 큰 빛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실력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현재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전문 음악교육기관인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서 피아노 학과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위한 교구와 교재를 개발하고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고안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더 나은 연주를 위한 연습과 함께 후배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흰 지팡이의 날’은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시각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80년 제정한 기념일이다. 흰 지팡이에는 세상과 연결하는 고리이자 비장애인과 소통의 수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