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부캐’ 4인방의 유쾌한 경고와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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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원정대 ‘돈 터치 미’

부케(Bouquet)로 들리는데 표기는 부캐다. 검색창엔 ‘부 캐릭터’라 뜬다. 이럴 땐 예를 들어야 이해하기 수월하다. 화면엔 유재석, 자막엔 유산슬. 그런데 암만 봐도 같은 사람이다.

개그맨 유재석이 본캐(본래의 캐릭터)라면 가수 유산슬은 부캐인 셈이다. 과거에도 종횡무진 뛰는 연예인은 많았다. 가수 남진, 전영록 등은 출연한 영화만도 수십 편이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하진 않았다. 지금은 노래할 때 비, 아이유가 연기할 땐 정지훈, 이지은이다. 예명, 본명과 부캐, 본캐는 뭐가 다를까.

현장에선 독사인데 사석에선 천사인 PD 선배가 있었다. 두 얼굴을 가진 그 형이 명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본캐와 부캐를 잘 활용한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부캐가 많은 곳 중 하나가 군대다. 제대가 임박하면 선임의 태도가 슬슬 바뀐다. 군복을 반납할 즈음엔 이런 말을 하는 병장도 생긴다. “내 맘 알지?” 자신은 악인이 아니라 단지 군대라는 상황 속에서 악역을 맡았을 뿐이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웃으며 짐을 싸는 사람에게 이런 말 던지기란 쉽지 않다. “근데 그땐 왜 그렇게 괴롭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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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군대뿐이랴. 세상이 다 비슷하다. 괴롭힌 사람은 없는데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많다. 괴롭히는 사람 없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 얼굴만 떠올린다.

그러나 질문의 요지는 널(목적어) 괴롭힌 사람이 아니라 네가(주어) 괴롭힌 사람을 물은 것이다. 시비지심으로 보면 인류의 절반은 악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러나 측은지심으로 보면 악인의 숫자는 확 줄어든다. 악역을 맡은 자가 많을 뿐이다. 유재석과 관련해 들은 얘기가 있다. 그를 시샘하는 동료가 삐딱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착한 척하고 살면 좀 피곤하지 않니?”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이 의외다. “계속 착한 척하다 보니까 좀 내가 착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부캐가 본캐를 가리긴 해도 이기진 못한다.

히트작 ‘무한도전’(MBC) 후속은 몇 번의 문답을 거치고 탄생한 제목이다. “요즘 뭐해?” “놀아요.” “뭐하고 놀아?” “그냥 놀아요.” “놀면 뭐하니?” 삶의 터전이 대략 5개인데 풀어보면 각각 일터, 쉼터, 놀이터, 싸움터, 배움터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아야 질 좋은 삶이 된다.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부단히 물어야 한다. 일은 왜 하니? 제대로 쉬니? 놀면 뭐하니? 왜 그렇게 싸우니? 배워서 뭐하니?

명랑과 맹랑을 넘나드는 유쾌한 캐릭터 4명이 모여 배낭을 꾸렸다. 원정대라고 하면 십자군원정대, 히말라야원정대가 떠오르는데 여긴 뜻밖에도 환불원정대다. “교환이나 환불을 하시려면 영수증 지참하세요.” 이 말에 주눅든 소비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려는 팀인가. 천옥, 만옥, 은비, 실비는 능숙하게 환불받아낼 것 같은 부캐들이다. 본캐 명단은 순서대로 이효리, 엄정화, 제시, 화사다.

원정대의 주제가 ‘돈 터치 미’는 누군가 자신을 괴롭힐 때 쓰던 저항의 언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말이 사람의 기를 죽이고 기분을 망치는가. ‘불편한 말들이 또 선을 넘어(중략) 자꾸 건드리네/ don’t touch me’ 개입하는 사람들에겐 경고하고 터치 당한 사람들에겐 격려한다. ‘몇 살을 먹는대도 절대로 난 안 꿀리는 걸/ 따라 하고 싶지 않아/ wanna be original/ 남의 눈치 보지 않아’ 체념은 사람을 시들게 해도 눈물은 사람을 되살린다. ‘때론 눈물이 쏟아지기도 해/ 결국 날 만든 게 눈물이기도 해 익숙해/ 남들 신경 쓰지 마 절대로’ 이 노래는 퀸의 ‘돈 스톱 미 나우’랑 연결해 들어도 괜찮을 성싶다. ‘그러니 이제 날 막지 마(So don’t stop me now)/ 지금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까(Cause I’m having a good time)’ 프레디 머큐리의 다짐을 기억하자.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