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시간… 無개봉으로 돌릴까, 未개봉으로 더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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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 어떻게 해야하나

① 극장 존폐 : 大作으로 ‘집콕족’ 유인-서비스체질 개선
② 기획·제작·투자 : 장르·작품 규모 등 다양성 늘려야
③ 국내 OTT 경쟁 본격화 : 스트리밍 등 플랫폼 적극 활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휘청이던 한국영화가 드디어 성장이냐 퇴보냐를 가름할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코로나19가 지난 2월 이후 8개월 이상 장기화하면서 더는 가만히 앉아서 버티기 어려운 국면에 도달했다. 개봉하지 못한 영화의 재고는 자꾸 쌓여가고, 관객이 줄어들면서 극장은 일부 상영관의 문을 닫고 있다. 극장 개봉을 기다리다 못해 결국 넷플릭스로 향하는 작품도 있다. 한국영화 생태계를 위협하는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개봉을 앞둔 영화 ‘콜’(맨 위)과 넷플릭스행이 검토된 ‘낙원의 밤’(가운데)과 ‘승리호’.

지난 3월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면서 한국영화 생태계의 변화가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에 걸지 않아도 수익을 내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한국영화의 첫 넷플릭스행 사례라 당시는 논란이 거셌다. 그러나 최근 박신혜·전종서 주연의 스릴러 ‘콜’이 11월 27일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확정했고, 송중기 주연의 우주 SF 대작 ‘승리호’와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 ‘낙원의 밤’까지 넷플릭스행이 검토되면서 기존 한국영화 제작 및 개봉 방식에 근본적 회의가 일고 있다. 한국영화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첫 번째 위기는 박스오피스 규모의 현저한 감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코로나19로 인한 영화계 및 영화인 피해규모’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영화관 입장권 매출액은 지난해(1조4482억 원)에 비해 70.7% 급감한 4243억 원으로 집계됐다. 관객 수는 지난해 대비 70.8% 급감한 4986만 명으로, 여름 성수기 7∼8월의 평균 관객 수 5200만 명에도 못 미쳤다.

여기엔 우선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밀폐된 공간을 꺼리는 심리가 극장으로 가는 관객의 발목을 붙잡았다.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는 20∼30대 관객의 유입은 변함없지만 10대와 50∼60대 장년층 또는 가족 관객의 실종으로 ‘1000만 흥행’을 바라보기 힘들게 됐다. 요즘 박스오피스 하루 관객 수가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지난달 말 추석 연휴 직전 개봉한 ‘담보’는 한 달 가까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켰지만 누적 관객 약 150만 명 동원에 그치고 있다. 지난 15일 개봉한 ‘소리도 없이’는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도 평일 관객 2만 명 내외, 주말 관객 7만∼8만 명 수준에 그쳤다.

쪼그라든 박스오피스의 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우선 관객의 불안한 심리부터 걷어내야 한다. 극장이 안전한 곳이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그리고 ‘집콕’하는 관객을 유인할 ‘큰 영화’가 걸려야 한다. 다행히 CJ ENM이 여름 대목에 풀려다가 연기했던 100억 원대 영화 ‘도굴’을 11월 4일 개봉한다. 박스오피스의 사이즈 자체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두 번째 위기는 한국영화 재고 증가와 상영관 축소다. 개봉이 늦춰지면서 각 투자배급사나 제작사에는 작품의 재고량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한국영화 제작상황판’에 따르면, 이달 기준 개봉 예정이나 준비, 후반 작업 중인 작품만 47편에 이른다. 이중 절반이 넘는 26편은 지난해 이미 크랭크 업된 작품들이다.

한 중견 배급사의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제작 완료 후 개봉하지 못한 작품이 10편이 넘는다. 개봉 시기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재고는 늘어나는데 상영관은 오히려 줄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2000억 원대의 적자를 낸 CJ CGV는 26일부터 대학로, 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등촌 등 7개 지점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관람료 1000∼2000원 인상에 이은 자구책의 일환이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자구책을 준비 중이다. 롯데시네마는 곧 인력 조정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한국영화 투자와 제작에 다양성이 더 늘어나야 한다. 투자 결정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지되 규모나 장르 면에서 다양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극장은 상영관 축소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관객 서비스는 늘리고, 넷플릭스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가 주는 생생한 극장 체험을 전달해야 한다.

세 번째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와 애플TV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이 가져올 또 다른 위기와 기회다. 넷플릭스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국내 구독자 수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2018년 말 90만 명에서 지난달 말 336만 명으로 2년도 안 돼 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한국시장이 성장을 견인”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도 7억 달러(약 798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이는 그만큼 국내 제작사들이 협업할 플랫폼이 확대됐다는 것과 같다.

애플TV 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 서비스 상륙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애플TV 플러스에 한글 유저인터페이스를 적용했고, 국내 영상 사업을 담당할 인력도 채용에 나섰다. 국내 유명 감독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디오 부문과 테마파크 부문에서 매출이 격감한 디즈니도 최근 디즈니 플러스가 포함된 스트리밍 서비스 부문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역시 국내 상륙은 시간문제여서 제작사로선 넷플릭스에 버금가는 협력사를 얻는 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휴가’ ‘타워’ 등을 만들었던 이수남 더타워픽쳐스 대표는 “극장 영화의 넷플릭스행에 대한 찬반 여론이 높다. 하지만 넷플릭스행이 반드시 한국영화 생태계에 위협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이번에는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면서 “제작사로선 위기이자 기회다.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로의 접근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