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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27일(火)
중첩된 0과 1 동시 처리… ‘꿈의 컴퓨터’ 모두에게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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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14) 양자 컴퓨터의 현재와 미래

양자 역학 기술, 엄청난 처리 속도… 기존 암호망 다 뚫을 수 있어
0과 1 중첩은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유리잔과 비슷… 중첩 깨지는 ‘결어긋남’ 최대 장애물
노이즈 차단하고 -270도 극저온 온도 유지해야… 기존 컴퓨터 대체까지 먼 길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기계는 무엇일까? 아마도 ‘컴퓨터’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뿐 아니라 냉장고의 제어 장치나 스마트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왜냐하면 컴퓨터(computer)는 말 그대로 계산하는(compute) 행위자(-er)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산하는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적절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장은 문자로 쓰여 있으며, 문자는 숫자로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ㄱ’은 ‘1’ ‘ㄴ’은 ‘2’같이 말이다. 모든 숫자는 이진법, 즉 0과 1로 나타낼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0과 1의 문자열로 나타낼 수 있다. 명령을 받아 그것을 수행한다는 것은 0과 1로 된 문자열을 입력받아 적절한 0과 1로 된 문자열을 출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종의 계산 기계인 셈이다.

0과 1로 된 문자열을 입력받아 정해진 규칙에 따라 0과 1로 된 문자열을 출력하는 기계를 ‘튜링 기계’라고 한다. 1930년대 앨런 튜링(Alan M Turing)은 자신의 이름을 딴 튜링 기계가 사실상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남은 일은 튜링 기계인 컴퓨터를 실제 만드는 것이다. 0 또는 1로 이루어진 정보의 기본 단위를 ‘비트(bit)’라고 부른다. 컴퓨터란 비트를 처리하는 기계일 뿐이다.

튜링 기계는 입력과 출력을 비트 문자열로 주고받는다. 입력 장치는 키보드나 마우스 등이고, 출력 장치는 스크린이나 스피커 등이다. 이런 장치는 입력 신호를 비트로, 비트를 출력 신호로 바꾼다. 튜링 기계 내부에서는 비트들만 이동하는데, 비트로 된 데이터를 어딘가 저장하거나 그것을 읽어 처리하는 두 부분이 필요하다. 입출력 데이터를 잠시 저장하는 장소를 메모리라 하고, 메모리의 데이터를 읽고 처리하는 부분을 CPU라고 한다. 오늘날 메모리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는 삼성이고, CPU의 경우는 인텔이다. 이제 튜링 기계를 만드는 일은 현대 문명의 거대한 산업이 됐다.

메모리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원할 때 수많은 비트를 쓰거나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우선, 비트 자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탄생하던 20세기 중반, 전기를 이용한 유무선 통신이 널리 쓰이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통신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고, 전기는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컴퓨터 내에서 비트를 쓰고 지우고 이동시키는 것은 통신과 다를 바 없었다. 즉 비트는 전기로 구현돼야 했다. 전류가 흐르면 ‘1’, 흐르지 않으면 ‘0’으로, 아주 간단하다. 현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이동하는 비트들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이제 비트를 전기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전기를 적절히 켜고 끌 수 있으면 된다. 바로 ‘스위치’가 필요하다. 전등을 켜고 끌 때 사용하는 벽에 달린 스위치 말이다. 물론 컴퓨터에 사용할 스위치는 아주 작고 빨라야 한다. 최근 판매되는 메모리는 용량이 8기가바이트(GB) 정도인데, 이는 640억 비트의 저장 공간을 갖는다는 뜻이다. 비트 하나당 스위치가 하나씩 달려야 하니까 손톱만 한 공간에 640억 개를 넣을 수 있는 크기로 스위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메모리에 사용되는 스위치는 ‘트랜지스터’라는 전자 소자로 구현된다. 트랜지스터는 반도체라는 재료로 만들어지며, 반도체를 바탕으로 한 트랜지스터의 작동 원리는 양자 역학으로 설명된다. 이렇게 양자 역학에서 컴퓨터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참고로 트랜지스터를 만든 과학자들에게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졌다. 메모리는 알겠는데 CPU는 어떻게 구현되느냐고 묻는다면, 지면 관계상 이것도 트랜지스터로 만들 수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양자 역학이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드는 원리를 제공했다면,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컴퓨터 프로그램은 수학자들의 몫이었다. 컴퓨터가 하는 일이 계산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프로그램이 결국 계산하는 방법, 그러니까 수학자들의 일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양자 역학이 컴퓨터에 기여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바로 ‘양자 컴퓨터’다.

튜링이 증명한 것을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튜링 기계가 모든 수학적 작업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나 행동은 수학적인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으므로 튜링 기계가 인간이 하는 일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으로 기술하기 힘든 예술이나 도덕 문제에 컴퓨터가 젬병인 것은 납득할 만하다. 참고로 이런 문제도 잘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인공지능(AI)은 튜링 기계와는 다른 원리로 작동된다.

1980년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는 튜링의 아이디어를 확장하려 했다. 튜링 기계가 모든 ‘물리적’ 과정을 구현할 수 있을까? 튜링 기계는 비트로 된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다. 비트는 특정 순간 0 또는 1 가운데 하나의 숫자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중첩’이라 불리는 이상한 현상을 허용한다. 비트로 예를 들자면 0과 1을 동시에 갖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일상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 서울과 부산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양자 역학은 원자, 분자와 같이 아주 작은 세상을 기술하는 이론이다. 참고로 원자의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수십만 분의 1 정도 된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양자 역학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튜링 기계가 모든 물리적 과정을 구현하려면 양자 역학적으로 작동되는 튜링 기계가 필요한 것이다.

양자 튜링 머신, 혹은 양자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는 이처럼 순수하게 이론적인 의문에서 시작됐다. 도이치는 최초로 양자 역학적 알고리즘을 고안했다. 그의 양자 알고리즘은 입력을 0과 1의 중첩 상태로 받을 수 있다. 중첩 상태란 앞서 말한 대로 0과 1을 동시에 갖는 상태다. 하지만 도이치의 발견은 10년 가까이 무시된다. 양자 알고리즘? 그래서 어쩌라고?

1994년 상황은 급변한다. 피터 쇼어(Peter W Shor)가 소인수 분해 양자 알고리즘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용적이어야 관심을 갖는다. 소인수 분해는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소인수 분해를 빨리할 수 있다면 현재 사용하는 통신 암호가 무력화될 수 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군사 통신 기밀도 문제지만 각종 금융 서비스의 보안도 문제가 된다. 쇼어의 논문이 나오자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양자 컴퓨터의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한 이유다.

1996년 로브 그로버(Lov K Grover)는 기존의 알고리즘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한 양자 검색 알고리즘을 발표한다. 검색은 중요하다. 사실 구글이라는 회사가 세계를 제패할 때 가졌던 유일한 무기는 검색을 빨리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양자 역학적 검색이 빠른 이유는 근본적으로 중첩에 있다. 검색을 하려면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데이터를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중첩은 여러 데이터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1990년대 말부터 양자 컴퓨터를 제작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물리학자들이 연구한 첨단 기술 가운데 많은 것들이 양자 컴퓨터 개발을 궁극적 목표로 내걸었다. 양자 컴퓨터를 구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 구현의 최대 장애물은 ‘결어긋남’이다. 양자 컴퓨터가 특별한 것은 중첩 때문인데, 중첩은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유리잔과 비슷하다.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쉽다는 말이다. 중첩이 깨지는 것을 결어긋남이라고 한다. 결어긋남을 막기 위해, 각종 노이즈를 차단하거나 섭씨 -270도에 가까운 극저온으로 온도를 낮춰 열에 의한 간섭을 막아야 한다.

▲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2019년 10월 구글은 양자 컴퓨터를 구현했다는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다. 구글 양자 컴퓨터는 53비트로 구성되는데, 당시까지 10여 비트 정도가 최대였다. 비트가 많아지면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53비트라는 숫자에 학계는 경악했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기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2020년 8월 구글은 12비트를 이용해 양자 시뮬레이션이라는 다소 실용적인 문제를 다루어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전 기록은 6비트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 문제에서 양자 컴퓨터가 진가를 보이려면 100비트 정도가 필요할 거라고 예측되는 바, 아직 갈 길은 멀다.

컴퓨터 정보 혁명을 일으켰던 양자 역학은 이제 두 번째 정보 혁명을 준비 중이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결어긋남 : 양자 역학은 0과 1의 두 가지 상태가 동시에 공존하는 중첩을 허용한다. 하지만 관측을 통해 상태를 확인하면 0 또는 1 가운데 하나의 값을 갖게 된다. 이처럼 관측을 통해 중첩을 깨뜨려 상태를 하나로 확정하는 과정을 결어긋남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파동이라는 현상에서 온 것인데, 직관적으로 그 관계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실제 결어긋남은 대상이 되는 시스템과 외부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양자 컴퓨터 : 용어 설명에 굳이 양자 컴퓨터를 넣은 것은 사람들의 섣부른 기대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다. 양자 컴퓨터는 특정 문제 해결에 기존의 컴퓨터보다 뛰어나다는 가능성이 있을 뿐, 모든 문제 해결에 더 유용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아직 돈이 많이 드는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양자 컴퓨터가 완벽하게 구현돼도 기존의 컴퓨터를 전면적으로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고, 특정 문제를 푸는 특별한 기계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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