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한 곡 가수’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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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한순간을 만났어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 순간을 만났어도／ 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이해인 수녀의 시(詩)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시작 부분이다. 후반부는 이렇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개개인의 사적인 관계와는 별도로, 한국 대중가요계에선 단 한 곡의 노래가 히트해 수십 년에 걸쳐 ‘청춘의 스타’로 기억되는 포크 가수 조정희(58)도 떠올릴 만하다.

그가 부른 유일한 신곡은 요즘도 즐겨듣는 사람이 많은 ‘참새와 허수아비’다.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날 찾아 날아온 널／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나의 운명’ 하고 시작한다. 1982년 홍익공업전문대학 디자인학과 1학년이던 그가 제6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청바지 차림에 통기타를 메고 반듯하게 서서 맑고 애절한 목소리로 열창해 최고상인 대상(大賞)을 받았다. 그 뒤로 ‘영원한 가을 명곡’이다. 1983년 윤삼육 감독은 동명의 영화도 만들었다. 조정희는 “작사·작곡자는 내 친구의 친구로, 한양대 공대 학생이던 박철”이라며 “서정적 가사에 처연하면서 호소력 있는 멜로디”라고 했으나, 그의 출중한 가창력이 명곡으로 이끈 핵심 요인이다. 그의 수상 직후부터 음반회사와 방송국 PD들이 다른 노래들의 음반, 프로그램 출연 등을 앞다퉈 제의한 이유다.

하지만 그는 전공 공부가 본업이라며 모두 거절하고, 여러 대학의 축제에 초청받아 노래했을 뿐 ‘직업 가수’로는 끝내 나서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가요제 출신 선·후배들과 함께 서울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의 무대에 극히 드물게 섰고,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하진 않았다. 2015∼2017년 어느 라디오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할 당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래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었다.” 이런 말도 했다. “꿈을 꿨던 20대도 의미가 있지만, 내 전성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 ‘한 곡’을 듣고 싶어지는 계절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