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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29일(木)
때론 통으로 때론 갈아서 ‘팔팔’… 뜨끈한 한 그릇에 힘이 ‘펄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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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금옥’ 추어탕.

■ ‘가을철 제맛’ 추어탕

민물고기인데 한자 이름 있고
이름에 ‘가을’ 들어있는 鰍魚
양반·농군 막론하고 모두 즐겨

갈아 넣으면 의심해서 ‘통’으로
鰍에 魚있다고 따져 ‘추탕’으로
깍쟁이 많아 서울스타일로 발전

단백질·비타민·아미노산 풍부
수술환자 등 보양식으로 인기
동의보감 “속 보하고 설사 멎어”


미꾸라지에 대한 단상 하나. 미꾸라지는 억울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흐린 물에 살았다. 괜히 잡아다 맑은 물에 넣어두고 바닥을 온통 헤집고 다니면 물 흐린다 나무랐다. 단상 둘. 탁류에서 난 용에 빗대 나름 귀한 대우를 받았다. 추어(鰍魚). 잉어나 붕어는 물론이고 귀하고 비싼 민물고기 쏘가리에도 붙지 않는 한자 이름을 가졌다. 단상 셋. ‘얼추탕’이란 음식이 있다. 추어(미꾸라지)를 넣지 않고 양념만 비슷하게 끓인 탕을 말한다. 그래서 서자 얼(孼)에 미꾸라지 추(鰍)를 썼다. 얼추탕은 요새 만든 음식이나 이름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도미는 넣지 않고 쑥갓을 넣어 끓인 ‘가(假)도밋국’도 있다.

가을 논두렁의 주인공은 미꾸라지, 추어다. 고기(魚)에 가을(秋)이 들었다. 뿌리가 농경민족인 우리 민족은 논농사를 지으나 도랑을 치나 미꾸라지가 나오면 이를 잡아 팔팔 끓여 보양했다. 추수철 논물을 빼고 개천을 훑으면 펄떡펄떡 진흙탕에 남는 것이 미꾸라지다. 빈부에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먹었다. 농군도 장사치도, 청계천 걸인들도 먹었다. 모른 체하더니 양반들도 가을이면 뜨끈한 추탕 국물을 뜨기 바빴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저마다 특색 있는 추어탕 집이 있는 이유다. 미꾸라지는 농경민족이 구하기 힘든 동물성 단백질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뼈까지 통째로 먹으니 칼슘과 무기질도 공급했다. 맛도 좋았다. 쌀쌀해지는 가을은 만물에 맛이 드는 시기다. 기름이 단단히 오른 미꾸라지는 고소한 맛도 품어 거친 밥을 말아 먹기에 딱이다.

서울, 원주, 남원, 청도, 경주식 등 각각 내세울 만한 추어탕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기만 다르지 남도 짱뚱어탕도 그 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리산 여행객들로부터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남원식 추어탕’은 된장과 우거지를 쓰는 방식이다. 한 번 삶아 육수를 내고 맷돌로 갈아 된장과 함께 다시 끓여낸다. 들깻가루를 넣는 집도 있다. 걸쭉하고 묵직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좋아 많이 찾는다.

원주식은 천렵 어죽 스타일이다. 냇가에서 냄비를 걸고 피라미나 송사리 등 작은 민물고기를 반나절 고아 먹던 어죽과 결이 같다. 고추장 양념에 수제비나 국수를 넣는다. 강원도답게 감자, 깻잎 등 푸짐한 나물과 채소가 들어가는 전골 방식이 그 특징이다.

청도식은 민물고기를 쓰는 것도 모두 추어탕의 범주에 넣는다. 미꾸라지가 아예 안 들어갈 때도 있다. 삶아서 갈거나 찧어 으깬 고기에 된장 양념으로 간을 한다. 국물이 텁텁해지지 않게 들깨는 넣지 않는다. 시래기나 배추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초피가루를 처음부터 넣어서 내는 것도 그 특징이다.

이 중 서울식은 가장 모양새가 다르다. 사골과 소고기로 밑 국물을 낸 후 대파나 토란대를 넣은 육개장 스타일 국물이다. 미꾸라지도 갈지 않고 그대로 낸다. ‘통마리는 곧 서울식’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왜 유독 서울식은 통마리로 쓸까. 대표적 서울 추탕 노포인 용금옥(1932년 개업)의 후계자 신동민 대표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간단한 현답이 돌아왔다. “거, 왜 서울 사람을 ‘깍쟁이’라 하잖아.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으면 안 들어갔다고 의심해.” 몇 마리 들어갔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서울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 통마리로 낸다는 것. 이름 또한 양반 행세를 하는 이가 많아 고기 어(魚)가 변에 들어갔는데 왜 또 어(魚)자를 붙이냐 해 추어탕이 아닌 추탕이 됐다. 서울의 청계천 명물인 추탕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다르다. 종이 다르다. 다만 굉장히 비슷하다. 수염과 색깔도 유사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미꾸라지가 수염이 길고 좀 더 크다. 미꾸라지(large)로 외우면 구분이 어렵지 않다. 미꾸리는 단면이 더 둥글다. 점액을 분비하는 겉가죽이 미끄러워 미꾸라지라 불렀다는 말도 있고, 미꾸리는 방귀처럼 보글보글 호흡하는 까닭에 ‘밑이 구리다’해서 밑구리가 됐다는 설이 있다. 미꾸리의 원이름은 ‘기름종개’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는 학자뿐이다.

미꾸라지는 맛있을 뿐 아니라 영양소도 풍부하다. 단백질과 아미노산, 비타민이 풍부하다. 예부터 수술환자나 기가 허한 사람에게 먹였다. 좀처럼 아이를 갖지 못할 때는 민간처방으로도 썼다. 불포화지방산과 철분이 많고 단백질 소화를 돕는 뮤신이 있어 입맛까지 살려주니 아이와 노인들에게도 좋다.

미꾸라지는 한의학에서도 그 영양이 좋다고 추켜세우는 식재다. 본초강목은 미꾸라지(泥鰍)가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해 기운을 만들고 술을 깨게 하며 당뇨병(소갈증)으로 목이 자주 마른 데 좋다”고 썼다. 동의보감은 “속을 보하고(補中) 설사를 멎게 한다(止泄)”고 했다. 방약합편에도 “주독을 풀고 당뇨를 다스리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그 효능을 풀이했다.

미꾸라지는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고 살기에 모기 예방에도 좋다. 흙투성이 흐린 물에서도 잘 살아 물웅덩이에 풀어놓으면 모기가 급격히 줄어든다. 하루에 1000마리도 먹어치운다고 한다. 생활력도 강하다. 물 밖에서도 피부로 호흡한다. 심지어 농수로 진흙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아예 흐린 물에 사는 미꾸라지가 괜한 욕을 얻어먹으니 억울한 것이다.

미꾸라지는 외국에선 잘 먹지 않는 식재료지만 간혹 쌀문화권인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요리가 발견된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단 일본인들은 미꾸리(일본에는 미꾸라지가 없다)를 잘 먹는다. 미꾸리를 ‘도조(泥)’라고 하는데, 삶아서 달걀을 풀어 먹는 야나가와나베(柳川鍋), 도조나베(泥 鍋), 사키나베(裂き鍋) 등 다양한 미꾸리 요리가 있다. 장어처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 먹는 가바야키(蒲燒き)는 장어나 미꾸리나 같은 이름을 쓴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현재 전 세계 미꾸라지 생산량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나는데, 중국에 미꾸라지 요리가 없을까. 소설 금병매에 등장하는 미꾸라지는 주인공 서문경의 스태미나식으로 묘사된다. 그때도 맛 좋고 영양 많은 보양식으로 각광받았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지금은 주로 튀김 요리가 많지만 예전에는 성주탕(醒酒湯)이라 불리는 해장국에 미꾸라지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가을은 공평한데 논농사를 짓지 않는 나라에선 미꾸라지를 잘 먹지 않는다. 미끌미끌 잘도 비켜난다. 덕분에 이름난 보양식치고는 아직까진 값이 저렴해 든든히 가을을 맞을 수 있겠다.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으로 조석 간 빠르게 흐르는 계절 변화에 대응하면 된다. 미꾸라지들이 동면하는 겨울이 오기 전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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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먹을까

서울 ‘용금옥’, 사골 우린 육수로 육개장式
남원 ‘삼대원조할매추어탕’, 된장·들깨 넣어 걸쭉한 국물
원주 ‘김가네원주추어탕’, 수제비 넣은 어죽 전골 형식


◇서울식 = 용금옥은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 서울식 ‘추탕’집이다. 1932년에 차렸으니 이제 90년이 다돼 가는 노포 중 노포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데 전통의 메뉴와 맛을 오롯이 지켜와 이젠 ‘서울 음식의 역사’가 되고 있다. 추탕은 통마리와 갈아 넣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소 사골과 내장, 고기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유부, 두부, 애호박, 버섯, 양파 등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육개장 스타일. 한 세기 가깝도록 이어온 업력답게 전 연령대 고르게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먼저 초피가루를 넣고 국수사리와 밥을 말아 먹는 재미가 있다. 식사 겸 반주하기에도 좋지만 미꾸라지 부침(튀김) 등 술안주 메뉴도 다양하다. 서울 중구 다동 24-2. 1만 원.

◇남원식 = 전북 남원시를 가르는 요천 앞에는 ‘추어탕 거리’가 있다. 이곳에 3대째 경영하는 삼대원조할매추어탕이 유명하다. 통통한 미꾸라지를 삶고 갈아 여러 번 뼈를 거른 후, 그 육수에 된장을 넣어 쓴다. 여기다 고랭지 무청 시래기를 넣고 팔팔 끓여낸 걸쭉한 국물이 매력이다. 콩 좋은 남원고을 된장에 들깨, 매운 고추를 넣어 진하면서도 시원하다. 한 뚝배기 비우고 나면 과연 몸이 팔딱팔딱 살아나는 느낌이다. 미꾸라지 튀김도 서비스로 상에 차려낸다. 통마리 추어를 채소와 함께 돌판에 올려 먹는 숙회도 별미다. 추어탕 9000원. 숙회 4만 원부터.

◇원주식 = 김가네원주추어탕은 철저한 원주식 추어탕이다. 갈아 넣었대서 갈추어탕, 그대로 넣어 통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판다. 얼핏 보면 어죽 전골 형식으로 불에 직접 올려 보글보글 끓여 먹고 수제비 등을 넣어 먹는다. 들깻가루가 들어가 뻑뻑하고 진한 국물이 대번에 보양식 느낌을 준다. 강원도 스타일답게 감자옹심이 등도 넣을 수 있다. 미꾸라지 강정이 있는 것이 특징. 갓 지은 돌솥밥으로 선택하면 1000원 추가된다. 강원 원주시 단관공원길 90-3. 1만 원.

◇청도식 = 경북 청도역 앞에도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추어탕 거리가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의성식당은 피라미 등 민물 잡어를 넣고 끓여낸 청도식 추어탕을 파는 곳이다. 미꾸라지는 넣을 때도 있고 아예 안 넣을 때도 있다. 배추와 얼갈이, 우거지 등을 듬뿍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살짝 간을 했지만 전반적으로 맑은 국물이다. 미리 초피가루를 넣어 국물 맛 자체가 얼얼하니 시원하다. 된장이나 고추장, 사골육수를 쓰는 다른 지방 추어탕보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 청화로 204.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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