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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eep Question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29일(木)
인간없는 예술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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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 1.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군기무사령부 터와 조선 종친부 유적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개들이 찾아왔다. 우리나라 반려견 숫자가 지난해 기준 600만 마리에 이르니 무수히 많은 개가 봄여름가을겨울, 이 앞을 지나갔겠지만 개가 정식으로 미술관 안으로 네 발을 들여놓은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문을 연 지 7년, 국립현대미술관 역사 6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공개되다 이날 정식 개관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다. 개를 관람객으로 초청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다.

개를 위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영국·덴마크 등에서 이뤄졌고 국내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 보는 미술이야기’가 2017년 북서울꿈의숲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번엔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상징성과 의미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반려견 상품이 쏟아지는 시대, 반려동물 인구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는 더더욱 아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정면에 52초짜리 3D 모션 그래픽 ‘전령(들)’이 반복재생되고 있다. 우주인 헬멧을 쓴 개가 클로즈업되는데 1957년 11월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간 유기견 라이카다. 이번에 미술관이 정식 초대한 것은 ‘반려견’이지만 전시회는 인간 역사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된 종들, 잊어진 숱한 종들을 모두 호명하겠다는 것이다. 라이카의 참혹한 눈빛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노랑과 파랑의 세계다. 적록색맹으로 노랑과 파랑을 볼 수 있는 개를 위한 배려다. 개가 좋아하는 나무, 풀, 습기, 냄새의 숲이 재현되고, 개 눈높이에 맞춰 작품은 바닥에 놓이거나 낮은 곳에 걸었다.

“사람뿐 아니라 개도 관객으로 오는 미술관을 상정해 인간 아닌 다른 종인 개를 초대해보자는 황당한 기획을 했어요.” 전시를 함께 둘러보던 기획자 성용희 학예사의 설명이다. “개도 좋아하고, 견주들도 사람과 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돼 감사하다고 하는데 정작 개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모르죠. 이 자체가 인간 중심일 수 있어요”라며 그런 점에서 전시를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시도만으로 의미 있어요. 현대미술은 늘 통념을 뛰어넘고, 미술관은 논쟁과 실천의 장소가 됐잖아요. 전시를 통해 경계 밖 존재에 대해 묻고 우리 자신에 대해 성찰했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독립된 기획이지만 미술관이 몇 년간 지속해온 ‘모두를 위한 열린 광장’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좀 더 넓게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존재를 끌어안으려는 현대미술과 현대사상의 큰 흐름 안에 있다.

이야기는 개를 위한 미술관에서 인간 외 존재를 위한 예술, 그들의 예술, 그들과의 연대 등으로 뻗어 나갔다. 그래서 그에게 ‘딥 퀘스천’을 던졌다. “그렇다면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할까요?”

그는 잠시 숙고한 뒤 “답은 예술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인가, 예술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00년 전에 (서구에서) 인간은 곧 백인 남성이었어요. 흑인 여성이 쓴 소설에 감동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그렇다면 다시 100년 후에는요….” 네덜란드 작가이자 철학자 에바 메이어르가 최근 책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에 쓴 문장이 겹쳐 떠오른다. “인간의 언어는 동물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비이성적이고 정치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식민지의 비서양인들 역시 한때 논의의 참여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이 질문이, 인간 아닌 존재들이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감상할 수 있는가, 그들이 예술가인가라는 문제인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모두를 위한 미술관…개를 위한 미술관’展 미술관이라는 공공장소를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개방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프로젝트.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야생과 문명, 인간 안에서도 장애인처럼 소외된 존재 등을 다루며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한다. 전시는 끝났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 (youtube.com/MMCAKorea)을 통해 전시 내용을 볼 수 있다.

▲  전망있는 방(2020)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테레사 라이만 더버스의 작품.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주관과 한계, 문화적 관념들이 어떻게 인공지능(AI)의 해석에 투영되는지 드러낸다. ‘메시아’는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종교적 개념인데 작가는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라며 형성된 자신의 성향이 AI 학습에 영향을 미치도록 위키 갤러리에 ‘예수그리스도’로만 태그된 이미지들로 학습 데이터를 구축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한 인간의 주관적이고 제한된 해석이 복잡한 개념에 대한 AI의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

# 2.

어둠 속, 제단화 형식의 LCD 스크린과 바닥에 메시아 이미지가 명멸한다. 대전비엔날레에 전시 중인 독일 작가 테레사 라이만 더버스의 설치작품 ‘전망있는 방’이다. 인공지능(AI)이 인류역사 속 서구의 메시아 이미지를 학습해 새 이미지를 만들어 비춰내는 작업이다. 기계는 차갑다는 선입견은 깨지고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 있는 것 같은 성스러움을 느꼈다. 명멸하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같았다. “다시 100년 후에는요?” 명멸하는 메시아 이미지 속에서 성용희 학예사의 말을 떠올렸다. 100년의 시간까지 필요 없다. 지금, 여기 AI가 만든 작품 앞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꼈으니 말이다.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가깝게 다가온 존재가 바로 AI다. ‘알파고 쇼크’가 상징하듯 지난 두 세대에 걸쳐 AI, 알고리즘, 머신러닝 기술이 가파르게 발달한 결과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현재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에 빠져 있다. 이는 1970년대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가 제시한 이론으로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를 볼 때 인간을 닮을수록 호감이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 예술가의 창의력을 높이고 예술을 확장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우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 낙관과 공포의 골짜기다.

인쇄술, 사진기, 미디어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언제나 예술의 새로운 도구로 쓰이며 예술 개념을 바꾸고 확대해왔다. 1950년 앨런 튜링의 생각 기계에서 출발한 AI도 마찬가지다. 1965년 독일 지멘스 직원 게오르그 네스가 컴퓨터 코드로 미술작품을 만들고, 1970년대에 음악 작곡 분석을 위한 AI가 개발됐다. 하지만 인간이 고유한 영역으로 믿어온 예술에서 AI의 역할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계기는 2018년 AI 오비어스의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였다. 프랑스 연구팀이 14세기부터 현재까지 초상화 1만5000점을 AI에 학습시켜 만든 작품으로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의 40배를 넘는 43만2500달러(약 4억9400만 원)에 낙찰됐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밝혔듯이 “AI가 만든 결과물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면 (AI 예술작품에 대해) 예술계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2017년 중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 AI 샤오빙(小氷)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를 냈고, 일본에서는 AI가 쓴 소설이 문학상 심사를 통과했다. AI는 음악을 만들고, 시나리오와 기사를 쓰며 영화 OST도 만들고 있다. 챗봇은 거짓말을 지어내고 농담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역시 2016년 알파고 충격이 전환점이 됐다. 그해 아트센터나비에서 열린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는 AI를 주제로 한 국내 첫 전시로, 그 뒤 AI 관련 전시가 이어졌다. 12월 6일까지 계속되는 대전비엔날레에서도 AI와 예술의 융합·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6개국, 25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반면 AI가 진입하기가 어려운 예술이라면 ‘인간의 몸’이 필요한 무용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지난 6월 국립현대무용단은 안무가 신창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AI 안무가와 협업해 만든 ‘비욘드 블랙’을 무대에 올렸다. 국내 AI 안무가의 첫 작품이다. 2013년부터 팀을 꾸려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시도해온 신 교수는 “AI는 인간의 예술 역량을 높여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이라며 “무용은 AI에 정복되기 힘들다는 전망 내지 자만이 있지만 AI 안무가가 인간 안무가를 뛰어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7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사적인 노래’도 흥미롭다. 여기선 사람이 아닌 AI 알고리즘이 기획자로 나섰다. 지식, 정보, 인맥,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예술기획자 자리에 AI가 선 것이다.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와 관련해 상반된 전망이 존재한다. 기술진보주의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으로 본다.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도 2100년쯤 사람의 일반 지능을 가진 기계가 나오고, AI가 일반 지능에 도달하면 슈퍼 인텔리전스는 몇 년 아니 불과 며칠 만에도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불가능’ 쪽에 무게를 둔다. 기계가 인간을, 그것도 인간의 가장 고유한 창조력에 닿을 수 없다는 전통적 입장을 나타낸다. 마커스 드 사토이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책 ‘창조력 코드’에서 인간 창조력에 도전한 모든 예술 AI를 살핀 뒤 “인간 존재 의미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계의 창조력이 발현된 예술 작품이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인간의 창조력을 확장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꾸준히 AI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작업을 하고 있는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학술 연구교수도 “AI가 아무리 높은 수준의 창작물을 만들어도 예술창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십분 양보해 AI 창작물을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하더라도 AI를 예술가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 전통적인 ‘불가능론’의 가장 근본적인 논거는 ‘AI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AI에겐 창작에 필수적인 의도, 자유 의지, 판단, 비판 능력 등이 없다는 것이다. 김재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창작 과정에서 예술가가 마음에 품은 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구현됐는지 아닌지는 예술가가 판단해야 한다. 아름다운 단풍을 비유적으로 예술이라고 할 순 있지만 예술은 예술가가 만드는 것이다.”


# 3.

“글쎄요. 하지만 누군가 안 된다고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크로바금속 2층 작업실에서 만난 김용훈 작가는 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컴퓨터공학 베이스의 신승백 작가와 함께 기계·기술과 인간에 질문을 던지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예정된 외국 전시를 온라인으로 대신하고 국내에 있는 이들은 ‘AI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논거에 반박했다. “보통 AI는 몸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소프트웨어는 몸 없이도 작동된다”고 그는 말했다. ‘의지’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인간은 순수 의지가 있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AI가 인간이 만든 코드로 시작하지만 인간도 DNA에서 출발해 학습하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결국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기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 고유성에 대한 성찰일 수밖에 없다”고 신 작가는 말했다. 과연 “기계에 없다는 자율성, 도덕성, 비판능력 등이 우리에게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고민에 대한 하나의 접근로를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근간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에서 찾을 수 있다. 김교수는 모든 인간이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가정 자체가 편견이라는 관점을 제기한다.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을 가진 화가는 인간 가운데서도 매우 드물다. 한 세기에 손에 꼽을 정도다. AI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비판능력을 갖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할 필요도 없다. 근대 철학이 내세운 인간의 비판 정신은 많은 점에서 과대 포장됐다. 인간이 다른 어떤 생물체나 기계와 달리 비판적 능력을 수행해왔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지만 경험적으로 인간이 이중성을 띤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는 것이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시도한 ‘AI 기획자’ 작업에 참여한 김주옥 홍익대 예술학과 겸임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말했다. “인간 대 기계라는 대결 구도 아래 기계는 인간 창의력을 못 갖는다고 하지만 인간 안에서도 창의력의 격차는 커요. 창의력이 없기에 AI를 인간보다 낮춰본다면 우리가 장애인, 결함 있는 사람, 지능 낮은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해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이어 김진석 교수는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본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AI가 인간처럼 예술적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물음은 미학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어설프거나 구태의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창의성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주로 던지는 물음은 AI가 바흐나 베토벤처럼 작곡할 수 있느냐, 반 고흐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그런 물음은 근대 예술이라는 특정 단계의 예술작업 형태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 형태는 역사적으로 지나간 스타일이며 앞으로 그런 방식으로 다시 예술 작업을 할 필요도 없다”며 “예술적 천재에게 고유한 예술적 본성이나 본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수행했던 예술은 인류 역사에서 빛나는 성과지만 근대 예술이라는 특수한 과정과 틀 안에서 가능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들여놓은 것이 벌써 1910년대.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전제로 한 근대적 예술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인간 없는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보길 권했다. “인간을 전제한 예술의 시대가 갔다는 점에선 맞지만, 인간은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다’. 다만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와 연대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계를 도구로만 생각하면 우리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망상적 불안과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주옥 교수도 덧붙인다.

“인간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기술 발전에 마음을 열고 스스로 내려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이전의 예술을 깨부수며 왔다. 요제프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다. 이제는 그것마저 넘어설 때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AI도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우리 미래를 더 올바르게 끌고 갈 것이다.”

인간 외 존재를 도구로 쓰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은 우연 남산예술센터극장장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세상에 대한 상상은 이미 예술작업 속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구자하 작가의 작품 ‘쿠쿠’를 들었다. 이는 작가가 무대에서 해킹당한 전자 밥통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작가가 의도한 것은 놀랍게도 ‘배우 없는 연극’이다. 저 먼 고대 그리스까지 기원을 올라가는 연극의 3요소 중 하나인 배우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연 극장장은 이렇게 이어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읽는 예민한 촉수를 지닌 예술가들은 ‘인간들이 훈계할 시대는 끝났다. 인간 승리의 서사에서 벗어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모든 예술가의 숙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요.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 사물과 도구, 자연과의 공존이 우리를 살릴 것이라는 절실한 예술적 상상력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빼놓기 아까운 흥미로운 전망으로 마무리한다. 사토이 교수는 ‘창조력 코드’에서 기계가 인간 창조력에 필적할 수 없다면서도 ‘현재 기술 수준에선 그렇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만약 기계가 의식을 갖게 된다면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것이라며 ‘터미네이터’식 디스토피아를 막으려면 AI에 ‘공감’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라고 했다. AI가 인간지능을 뛰어넘는다면 인류의 운명은 인간과 의식 있는 기계가 얼마나 서로를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우리가 원하는 건 다름 아닌 ‘교감’일 것이라고 했다.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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