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비틀스에 맞서 나온 ‘미국판 비틀스’… 그들의 노래로 한편의 뮤지컬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몽키스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몽키스(The Monkees)는 원래 TV 예능프로그램 제목이었다. 영국의 비틀스가 미국의 음악동네를 침공하자 오디션을 통해 뽑은 4인조 보이밴드가 몽키스(사진)였다. 최근에 이름이 거론됐는데 뜻밖에도 방탄소년단(BTS) 덕분이다. 한 해에 3장의 앨범을 ‘빌보드 200’ 1위에 올려놓은 그룹이 역사상 세 팀인데 바로 비틀스, 방탄소년단, 그리고 몽키스다. 최단기간(9개월 3주)에 3장의 앨범을 1위에 올린 1967년은 그야말로 몽키스의 해였다.

몽키스의 노래들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었던 사람들끼리 서로 믿음을 깨버렸다고 탄식하는 장면을 TV에서 보면서 몽키스의 히트곡 중에 ‘믿음(believe)’이 들어간 노래 두 곡이 떠올랐다. 우선 ‘몽상가(Daydream Believer)’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파랑새가 노래하는 동안은 새의 날개 아래 숨을 수도 있어요(Oh, I could hide ’neath the wings of the bluebird as she sings) 6시를 알리는 자명종은 울리지 않겠죠(The six o’clock alarm would never ring) 하지만 시계는 울리고 난 일어나죠(But it rings and I rise)’. 꿈은 꾸는 것이지만 꿈은 깨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의 믿음과 배신을 다룬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2012)에도 이 노래가 삽입됐다.

애니메이션 ‘슈렉’에서 스매시 마우스가 리메이크한 ‘난 믿어요(I’m A Believer)’ 원곡자도 몽키스다. ‘사랑은 진짜로 동화 속에나 있는 줄 알았지(I thought love was only true in fairy tales)/ (중략) 실망이 내 모든 꿈을 뒤덮을 줄이야(Disappointment haunted all of my dreams)’. 하지만 몽키스의 노래 중에서 뮤지컬의 엔딩곡으로 쓸 노래는 따로 있다. 제목만으로도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That was then this is now)’.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어떤 과거는 흘러가지만 어떤 과거는 퇴적해 습지를 이룬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여운 ‘과거는 흘러갔다’ 중). 최근에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삶도 한 편의 뮤지컬로 만들면 어떨까. 그분의 집무실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글귀가 벽에 걸려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제일 먼저 최희준의 ‘하숙생’이 떠오른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가황 나훈아의 노래 ‘공’도 빠트릴 수 없다.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단 것을’. 패티김의 ‘빛과 그림자’도 후보곡 리스트에 넣을 만하다.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죽으면 땅에 묻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억에 묻힌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묻고(매립) 싶어 하면서 남의 과거는 묻고(질의) 싶어 한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라는 독일 작가 비프케 로렌츠의 소설도 있지만 지워버린다고 과거가 묻히진 않는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중략)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나애심 ‘과거를 묻지 마세요’ 중). 아차산역에서 광나루로 넘어가는 천호대로 우측 도로변에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비 하나가 세워졌는데 비석에 새겨진 게 바로 이 노래다.

죽음이란 세상과 이별하고 세월과 상봉하는 절차다. 비틀스의 빌보드 싱글 1위곡은 총 20곡인데 그중 첫 1위곡은 ‘손잡고 싶어요(I want hold your hand)’다. 어느 순간 그 말이 ‘손보고 싶다’로 바뀌는 걸 자주 보면서 세상의 허무함을 절감한다. 마지막 1위곡 제목은 ‘멀고도 험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린 얼마나 많은 손을 잡고 또 뿌리쳤던가. ‘혼자였던 많은 시간/ 울고 지낸 많은 시간들/ 얼마나 애썼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야(Many times I’ve been alone/ And many times I’ve cried/ Anyway you’ll never know the many ways I’ve tried)’.

프로듀서
작가·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