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감자 생산 농가를 위해 자신의 SNS 등을 활용한 판매 홍보에 나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강원도청 제공
■ ‘인간 존엄’ 道政목표 실천하는 최문순 강원지사
‘스스로 낮출 때 다른 사람이 채워 주는 게 리더십’ 평소 지론
보수층서도 “민주당은 싫지만 최문순은 좋다” 평가 받아
외모 소개할 땐 자칭 ‘불량감자’라며 망가지기 주저하지 않아
MBC사장때 ‘자율 문화’성과 … 조직도 맨 아래 도지사 배치
정부 실무자 찾아 인사하고 사업 설명하는 단체장으로 유명
사람 좋아 보이는 소탈한 웃음에 대화 도중 연신 ‘네네’ 하며 상대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 이런 최문순 강원지사를 만나 본 사람들은 그에게서 MBC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과 3선 도지사의 자리에 오를 만큼의 권력의지(權力意志)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외모를 강원도 대표 특산물인 감자에 빗대 스스로 ‘불량감자’라고 소개하며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를 두고 주위에서는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란 평가도 나온다.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보수층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은 싫어도 최 지사는 좋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언론인 출신인 최 지사는 MBC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 노조위원장을 거쳐 48세에 최연소 MBC 사장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MBC 사장에서 물러난 최 지사는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이어 2011년 4월 강원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하는 동안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는 등 변신에 성공했다.
◇현장 중심 신뢰의 리더십 = 최 지사는 MBC 사장 재직 시 MBC의 르네상스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 위기 속에서 취임 2년 만에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최고의 영업이익, 한국 방송국 채널 중 평균 시청률 1위라는 3관왕을 동시에 달성했다.
최 지사는 당시에 대해 “언론 조직은 자율성이 중요한데 이전까지는 현장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기자, PD가 언제든지 경영진을 만나 자유롭게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다 보니 자율성과 창의성이 함께 살아나는 선순환으로 경영 호기를 맞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지사는 MBC 사장으로서 성공했던 경험을 강원도정 전반에 이식하는 데 주력했다. 도청 조직이 단순 행정부서를 넘어 무한경쟁 시대를 이끄는 ‘강원도 홍보마케팅’ 부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인사와 조직을 담당하는 전통적 인기 부서였던 자치행정국을 총무행정관실로 축소 개편하며 행정 지원부서의 역할을 명확히 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대신 문화·관광을 비롯해 투자·통상 등 일선에서 강원도 미래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뛰는 실무 부서를 우대하며 공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집중했다.
최 지사 취임 10년 차를 지내며 실·국장 책임 아래서 각 부서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업무 문화는 강원도청 조직 전반에 스며들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적어도 업무를 보며 위의 눈치를 보는 일은 확연히 줄었다.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으로 도청 조직이 더 활기차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지사 자신도 일선 현장을 중요시했다. 취임 후 관용차로 달린 거리만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4만㎞에 달한다. 기획재정부 출신 한 공직자는 “자치단체장 중 기재부를 방문한 횟수로는 최 지사를 넘어서는 인사가 없을 것”이라며 “실무자를 상대로 사업을 직접 설명하며 일일이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탈권위·포용의 철학 = 최 지사가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출 때 다른 사람이 채워주는 것’이다. 그의 탈권위 리더십은 강원도청의 조직표에 그대로 반영됐다. 도청 조직표를 들여다보면 가장 위에 있어야 할 도지사가 제일 아래에 있고 바로 위에 부지사, 다시 그 위에 실·국장, 과장, 그리고 팀장 순으로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최 지사는 뒤집힌 조직표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취임 초에 와서 보니 식당에 가면 상사 옷 받아 걸어주고, 신발 돌려 놔주는 문화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걸 바꾸려고 상사가 부하를 받드는 모양의 조직표를 만들었는데 상사를 갑으로 여기는 문화가 바뀌어야 공무원들이 도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 같았다.”
재선에 성공한 후 최 지사는 2014년 탈권위의 연장선에서 도정 목표를 ‘인간의 존엄’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도정 목표를 향한 ‘최문순 표’ 정책을 두고서는 ‘대중영합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강원도 복지체계’를 한 차원 높였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노·사·정 대타협 모델로 국내 최초로 도입한 강원도 일자리 안심공제, 육아 기본수당,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전체 학생의 85.9%에 장학금을 지급하며 강원도립대를 ‘등록금 걱정 없는 대학’으로 만든 것도 최 지사의 작품이다.
◇소탈함 속에 감춰진 승부사 = 주위에서는 최 지사에게 ‘관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참모들은 그의 ‘승부사 기질’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최 지사는 평소 “정치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정치관을 설명한다. 이 같은 신념은 중요한 인생의 길목에서 최 지사의 행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MBC 사장에 도전할 때 당시 40대 부장대우에 불과했던 그는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공모에 참여했다. 또 국회의원에서 당의 요구로 강원지사 보궐선거에 나설 당시 경쟁 후보보다 20% 이상 차이 나는 열세 속에서도 일단 출마를 결정하자 제일 먼저 한 것이 국회의원 사퇴 발표였다. 이런 그를 두고 배우자인 이순우 여사는 “지금까지 남편을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는 말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승부사 기질은 평창동계올림픽을 불과 두 달여 앞둔 2017년 11월 29일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남북관계가 어려울수록 민간 부문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며 남북한과 중국이 참가하는 제3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 개최에 앞장섰다. 결국, 그해 12월 19~22일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서 대회가 열릴 수 있었다.
당시 강원도 선수단과 함께 직접 중국을 방문했던 최 지사는 북한 체육계 고위 인사를 만나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요청했다. 이를 두고 꽉 막혔던 북한 올림픽 참가 논의의 물꼬를 튼 회담이었다고 체육계 인사들은 전한다. 이후 물밑 접촉이 이어졌고 결국, 개막 직전 북한이 참가를 선언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한 기본 토대가 마련됐다. 최 지사는 “거절을 당해도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춘천=이성현 기자 sunn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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