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내게도 ‘죽던 날’이 있었죠…그러나 연기할땐 다 잊게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감과 당당함이 돋보이는 배우 김혜수. 그러나 그는 “오히려 연기할 때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냥 솔직한 게 전부인데 그걸 좋고 크게 봐 주시는 것 같다”며 “당당한 것과 당당해 보이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새영화 ‘내가 죽던 날’ 주연 김혜수

어머니 ‘빚투’ 문제로 큰 고통
좋은 배우들과 작업하며 ‘힐링’
이번 작품도 내게 큰 힘 돼줘

만 50세?… 나이는 숫자 불과
아직도 내 것 제대로 하기 바빠

“새로운 50대를 살아간다고 해서 갑자기 뭔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배우 김혜수가 지난 5일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자신의 새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을 알리기 위한 자리로, ‘국가부도의 날’(2018)로 언론과 인터뷰한 지 2년 만이었다. 이럴 때 대개는 영화와 관련된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 마련인데 이날만큼은 1986년 데뷔 후 34년간 한결같이 톱스타로 활동했던 ‘인간 김혜수’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 언제나 당당해 보이던 그는 연기, 나이, 꿈, 그리고 ‘빚투’(돈 받지 못한 이들의 폭로)까지 정말 숨김없이 답했다.

“‘아, 나도 내가 죽던 날이 있었지’ 하면서 무엇보다 영화의 제목이 와 닿아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내가 맡은 현수는 실제의 나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누구나 말할 수 없는 상처나 고통을 참으며 살지 않나. 세상에서 안 해도 될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 하던데… 익명의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영화는 유서 한 장 남긴 채 절벽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혜수는 불의의 사고와 이혼 소송에 얽혀 심신이 피폐해진 형사 현수를 연기했다. 현수의 고통과는 다르지만 김혜수도 지난해 가족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모친의 ‘빚투’가 불거지면서 ‘만인의 워너비’ 이미지에 흠집을 남겼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나도 죽던 날이 있었다는 건 나의 가족 문제를 말한다. 그게 밖에 알려진 게 지난해지만 내가 처음 안 건 2012년이었다. ‘도둑들’을 홍보할 때쯤이었는데 일할 정신이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는 현수의 대사처럼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한 게 ‘직장의 신’이고 ‘관상’이다. 일할 때는 잊을 수 있더라. 이번 작품도 그럴 때 만난 작품이어서 좀 더 마음이 끌린 듯하다.”

그래서인지 김혜수는 현수를 연기하며 스스로 힐링을 경험했다. “이번엔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컸다. 그 속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위안을 받은 지점이 있다. ‘순천댁’을 연기한 이정은 씨는 너무 따뜻하고 좋은 배우였다. 친구 ‘민정’으로 나온 김선영 씨는 나이를 떠나서 진짜 곁에 있는 친구 같았다. 작품을 하는 것도 운명인데 좋은 인연까지 만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지나고 나니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1970년생인 김혜수는 올해 만 50세가 됐다. 10대의 풋풋한 하이틴 스타였던 그는 이제 완숙미를 겸한 국내 대표적 배우다. 당당한 말과 행동, 사회적 이슈에 귀 기울이는 자세,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외모 등은 언제나 화제였다.

“내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건 기사에 언급될 때뿐이다. 개인적으로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이는 의미가 없다. 그 자체로 어떤 감흥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이 크다. 그건 제대로 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어찌하다 보니 선배가 됐고, 예상하지 못한 감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직도 내 것을 제대로 하기에 바쁘니까.”

다양한 도전과 경험으로 만인의 연인이 된 김혜수도 지금 꾸는 꿈이 있을까.

“어릴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하고 싶었다. 조금 커서는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꿈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배우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꿈을 꾼다. 그러나 어떤 집중을 향한 꿈은 아니다. 다른 직종이나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현재 지향적인 사람이다. 지금 이 시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한 것. 그게 전부다.”

하지만 김혜수는 연기자로서의 소망 하나를 꺼냈다.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를 해보고 싶다. 선생님을 잠깐 다른 현장에 찾아가서 뵌 적이 있다. 조용히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인사드렸다. 10분 안팎의 만남이었는데 그걸 못 잊겠다. 너무 깨끗하고 순수한 배우, 선생님과 작품에서 만날 때를 꿈꿔본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