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인터뷰-이제훈>“인천형제 비극 다신 없게 아동인권 위한 어린이部 역할 할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무교로 재단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어린이가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19일 세계아동학대예방의 날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지금 한국서 가장 심각한 건
가족해체와 가족제도의 붕괴
어린이들에게 치명적 악영향

어릴 때부터 학원 돌며 경쟁
외롭게 자라 외롭게 살게 돼
정서·정신적 고통 점점 커져

문화일보 동참 ‘감사편지쓰기’
아이들 인성교육에 최고수단
감사표현 얼마나 귀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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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어린이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의미죠. 또 어린이들이 잘못되면 우리의 미래가 잘못되는 겁니다.”

오는 11월 20일 유엔과 유네스코가 기념하는 세계어린이날(Universal Children’s Day)을 앞두고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을 지난 4일 만났다. 이 회장은 아동옹호대표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10년 동안 이끌어 온 아동전문가다. 또 오는 11월 19일은 비정부 국제기구 여성세계정상기금(WWSF)이 제정한 세계아동학대 예방의 날이기도 하다. 국내도 2007년부터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아동학대 예방의 날과 아동학대 예방주간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매년 기념일은 돌아오지만, 최근의 국내 현실은 암울하다.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 중태에 빠졌던 인천 초등학생 형제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 형제 중 동생은 사고 한 달여 만인 지난달 말 사망했다. 또 한 중고거래사이트에선 신생아를 20만 원에 거래한다는 글이 게시돼 윤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얼마 뒤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취약계층 아동 10명 가운데 4명꼴로 집에서 부모 없이 홀로 지낸다는 비정부기구(NGO)의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과 세계어린이날을 곧 맞는데, 요즘 들어 그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세계어린이날은 1989년 11월 20일 아동인권을 지키자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해 이날을 기념한 날이다. 아동의 인권과 관련해서는 조금 더 넓게 봐야 한다. 아동 인권 차원에서만 좁혀 생각하면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단 지역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가난한 나라에선 생존이 가장 큰 문제다. 아동 노동 착취라든지 또는 미성년자 군대동원 등의 문제가 많다. 반면 선진국 대열에 동참한 우리나라의 경우엔 가족해체가 굉장히 심각한 요인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환경이 점점 사라지면서 가족 해체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좋아지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정신적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이 과도한 경쟁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문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기 시간 없이 학교와 학원에 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결국 아동이 현재 환경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고통받는지 파악해 그 고통을 어떻게 덜어주느냐, 이게 당면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인천 라면 화재 사건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 사건 역시 우리나라의 가족 해체, 가족제도의 붕괴와 관련된다. 가족 해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지 주변에서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정상적인 가족 테두리 안에서 자라야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홀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녀를 학원에 맡겨놓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큰다. 외롭게 자라서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는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른 길인지 모두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의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이 책임감을 더 많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힘들다는 이유로 혼자 즐기며 살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남을 위한 희생을 꺼린다. 과연 이 상황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걱정이다.”

―어린이날일수록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세계어린이날은 특히 우리나라 어른들이 우리 아이가 행복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의 환경을 바꿔서, 건강하고 자유롭게 꿈을 키우면서 살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또 부모는 아이를 본인 기준으로만 보지 말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끼를 키워줘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기준이나 관점에 본인이 이루지 못한 것을 대입시키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사회성과 배려심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인성 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같이 어울리는 훈련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인 듯하다. 부모들이 조금 더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자녀를 키워야 한다.”

―어린이의 인성을 키울 수 있는 재단의 사업이 있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화일보도 동참하고 있는 감사편지 쓰기다. 15만1800여 명의 아이가 선생님, 부모님, 친구, 감사하고 싶은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는 건 의미가 크다. 좋은 인성은 자기 마음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는 건, 그만큼 가정의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는 일이며 학교의 건강을 위해서도 감사편지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인성교육을 위해 놀이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대한민국 어디든 놀이터’ 사업도 전개해 왔다. 이 회장은 “학교 공부 잘한다고 아이들의 재능이 발휘되는 게 아니다. 노래를 잘하면 노래, 컴퓨터를 잘하면 컴퓨터, 체육이면 체육 등 어린이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다 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끼를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놀이터를 지어주고, 아동의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인재양성사업 ‘초록우산 아이리더’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다문화 아동에게도 새로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인구가 5% 가까이 되는 다문화 국가가 돼 간다. 다문화 학생이 30만 명 가까이 되는데,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한국에서 차별 없이 자라야 우리 국민으로서도, 한국사회도 좋아질 수 있다. 프랑스 등 유럽국가의 사례를 보면 다문화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인종적인 갈등과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한국도 다문화 아동에 대한 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경기 시흥에 다문화 아동지원센터를 만들어 내년 초 문을 연다.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사업은 많았지만, 다문화 아동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는 건 어린이재단이 처음이다.”

이외에도 어린이재단은 20곳의 지역본부, 9곳의 아동옹호센터, 7곳의 사회복지관, 6곳의 가정위탁지원센터, 5곳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정신보건시설과 중증장애인시설 한마음마을도 운영하는 등 폭넓은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또 해외에서도 르완다와 말라위 등 아프리카 14개국,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12개국에 중남미 볼리비아까지 총 27개국에서 아동의 생존과 보호를 지원해오고 있다.

―그간 참 많은 어린이옹호사업을 전개했는데,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올해 72주년이 됐다. 동력은 오랫동안 축적돼온 후원자들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후원자 입장에선 후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재단이 투명하게 관리한 점도 있지만 후원자들의 신뢰가 깊다. 어린이재단은 30∼40년 장기 후원자가 많다. 30년 후원자만 4000명 정도 된다. 좋은 예로 재단 후원회 회장이신 탤런트 최불암 씨는 40년 가까이 후원하고 계신다. 전국 지역별로 자발적인 후원회가 조직돼 있는데, 후원회에서 모이면 무엇이든 기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신다. 너무나 고맙다. 후원자분들 덕에 국내 163만여 명, 해외 60만∼70만 명의 아이가 어린이재단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크고 있다.”

―앞으로의 어린이옹호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

“어린이재단이 존재함으로써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져야 한다. 어린이재단이 왜 존재하는지 늘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어린이재단이 있어서 아동권리가 조금 더 보장되고, 학대도 줄여나가고 아이들이 조금 더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재단이 앞장서는 역할을 하겠다. 정부에 별도의 조직은 없지만, 어린이재단이 ‘민간어린이부’ 역할을 하고, 그것은 한국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좋은 위치에 들어서면서 가난한 나라에 대해 지원하는 역할도 있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미래 세계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서도 국제사업이 필요하다. 한국의 좋은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꾸준히 이어지면, 국제적으로 활동을 많이 할 미래 아이들이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이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친구도 사귀며, 지구촌에서 살아갈 미래를 염두에 두고, 국제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