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바이든 ‘치유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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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남부 조지아주 메리웨더 카운티에는 웜스프링스(Warm Springs)라는 인구 400여 명의 작은 마을이 있다. 이름 그대로 따뜻한 광천수가 나오던 평범한 온천 마을인데,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DR·1882∼1945) 덕분에 유명해졌다. 1921년 서른아홉 나이에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하반신이 마비된 루스벨트는 한 청년이 이곳 광천수 수영장에서 운동하며 다리 힘을 회복했다는 소문을 듣고 현지 호텔과 온천 부지를 사들여 재활 센터로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2시간 이상씩 수영을 거듭한 끝에 다시 걷게 됐고 정계에 복귀해 1928년 뉴욕주지사,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웜스프링스는 미국인에게 회복과 치유, 연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성지다. 뉴욕의 엘리트 출신 정치인 루스벨트가 이곳에 전 재산의 70%를 투입해 치유 시설을 만든 뒤 수백 명의 환자와 함께 소아마비 극복을 위해 시도했던 수많은 노력은 대공황이란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미국의 리더로 나설 수 있는 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웜스프링스에서 “어떤 방법이든 대담하고 끈질기게 해보고 실패하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무엇이든 해봅시다”란 말을 자주 했다. 이런 불굴의 정신은 대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줬다. 루스벨트는 대통령 재임 중에도 이곳에 자주 머물렀다. 눈을 감은 곳도 ‘리틀 백악관’으로 불렸던 웜스프링스 자택인데 지금은 루스벨트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직전 웜스프링스를 방문, “미국의 치유를 얘기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100년 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줬던 FDR를 환기시킨 것이다. 지난 7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는 “루스벨트는 뉴딜을 통해 미국에 새 희망을 제시했다”며 코로나 시대의 뉴딜 2.0을 얘기했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루스벨트가 미국의 회생을 내걸고 대공황 위기를 넘긴 것처럼 우리도 코로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FDR 마법’ 덕분인지 바이든은 공화당 아성인 조지아주에서 승리했다. 바이든과 루스벨트는 고난의 연대기 면에서 닮았고 그 덕분에 치유와 경청의 정치인이 된 것도 유사하다. 바이든이 통합·연대의 FDR 리더십으로 코로나 위기를 넘고 극우 트럼피즘까지 이겨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