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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12일(木)
찬·찬·찬…‘맛깔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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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옥의 설렁탕 맛을 살려주는 으뜸공신이 바로 파김치다. 파김치는 따로 주문해야 내준다.

■ 한식 조연서 주연이 된 반찬

밑반찬 재료 주로 채소·콩 등
허드레가 많고 짭조름한 것들
고구마순·깻잎·호박잎 별미
명태껍질·미역귀·파래도 맛나

예전 주부 도시락 찬거리 고민
80년대 중반 김치 등 단골메뉴
80년대 후반엔 소시지·햄 인기


영화 스크린에는 가끔 조연이 더욱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영화제작자는 티켓파워를 보유한 스타급 주연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이게 마련. 하지만 정작 영화가 개봉하면 엉뚱하게도 조연 배우가 폭발적 인기를 모아, 관객 몰이에 혁혁한 공을 세울 때도 있다. 훗날 주연으로 인정받고 스타가 되기도 한다. 영화 ‘타짜’의 아귀 김윤석은 ‘남한산성’의 척화파 김상헌이 됐고, ‘초록물고기’의 날건달 송강호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됐다. 마동석도 유해진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음식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한식 상차림에서도 주연보다 더 매력적인 조연이 활약한다. 바로 반찬이다. ‘주식(主食)을 먹기 위해 곁들이는 음식’인 반찬(飯饌)은 한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반찬을 통해 맛있게 밥을 먹고 영양소의 불균형 또한 해소할 수 있다. 반찬은 외국의 사이드디시(side dish)와는 다르다. 같은 주부식(主副食) 문화권인 일본만 하더라도 반찬 리필은 언감생심이다. 일본에서 단품메뉴를 파는 곳은 아예 반찬을 주지 않는다. 라멘집의 초생강(베니쇼가), 시치미(七味), 다쿠앙(澤菴) 등을 제외하면 따로 돈을 받는다.(다쿠앙도 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아! 그 집? 겉절이가 예술이지.”

식탁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고기와 국 뚝배기가 아니라, 곁들인 반찬이 맛있어서 찾아가는 집이 있다. 주메뉴 없이 반찬만으로도 밥을 넘기거나 술잔을 비울 수 있는 곳도 많다. ‘마포옥’의 파김치, ‘산불등심’의 고등어조림, ‘부민옥’의 멸치볶음이 그렇다. 반찬 맛과 가짓수에 따라 식당의 인기가 결정되기도 한다. 부식(副食)이라곤 하지만 “반찬 좋네”는 즉 ‘맛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맛있게 반찬을 먹고 나서 “밥 잘 먹었다”고만 말하니 조연 입장에선 섭섭할 만도 하다. 그래도 “오늘 뭐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주로 반찬을 이야기하니 아예 무시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식에 따라붙는 수많은 반찬으로 인해 식재료와 조리기술의 범위가 넓어졌다. 개개별 반찬을 하나의 요리로 인정한다면 아마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요리가 많은 나라 일지도 모른다. 한식의 역사는 가히 ‘반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밑반찬 재료로는 주로 채소나 콩, 생선, 고기 등을 쓰는데 보통은 허드레가 많고 짭조름한 것들이다. 밍밍한 밥을 삼켜야 하니 그렇다. 재료의 맛에 어울리도록 소금이나 간장, 고추장으로 간을 한다. 무치고 부치거나 볶고 조린다.

허드레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많은 반찬을 비싼 작물이나 산물로 만들자면 상차림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푸성귀 반찬 종류가 참 많다. 고구마를 캐고 고구마 줄기로 나물을 만들고, 들깨를 얻기 위해 심은 깻잎과 콩 줄기를 거두고 난 후 콩잎으로 장아찌를 담가 반찬을 만드는 데 이 모두가 별미다. 고구마순, 깻잎, 콩잎, 호박잎 등은 어쩌면 허드레 푸성귀지만 굉장히 맛있는 반찬으로 변신한다. 배춧속은 김치를 담그고 겉잎은 우거지가 된다. 무는 캐다가 무청으로 시래기를 만들고 무는 썰어 무말랭이로 겨우내 저장한다. 들이며 산에 나는 산나물이나 식물의 잎, 뿌리 등을 죄다 반찬으로 만들었다.

명태껍질이나 미역줄기, 미역귀, 파래 등 ‘바닷속 허드레’도 맛좋은 반찬으로 사랑받는다. ‘갯가’ 사람들이야 물미역이니 톳, 꼬시래기 등으로 많은 반찬을 만들었다지만, 새우젓과 미역은 옛날 내륙 산간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바다 맛 반찬’이었다. 꽁치, 양미리, 정어리, 도루묵 등 비교적 값싼 생선에도 맛이 든 가을 무를 넣고 조리면 주메뉴가 부럽지 않은 맛있는 찬거리가 된다.

한식 상차림은 기본인 밥과 국(또는 찌개), 그리고 반찬이 깔린다. 반찬의 기본은 김치다. 김치도 여러 종류를 낸다. 동치미(물김치)와 익은 김치, 겉절이 등을 내고 갓김치나 파김치 등 김치만 7∼8종 차리는 곳도 있다.

반찬의 가짓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등 홀수로 올리는데 왕에게 올리는 수라상(水刺床)에는 짝수인 12첩 반상을 차린다. 이때 밥과 국, 김치, 간장은 기본으로 첩수에 넣어 계산하지 않고 나물과 생선, 육회, 산적, 구이 등이 더해진다. 즉 5첩 반상에는 밥과 국, 간장 등을 제외하고도 5가지 찬이 오른다는 뜻이다. 5첩 반상에는 국 이외에 찌개를 더하고, 7첩 반상에는 찜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찬의 색도 중요하게 여겼다.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 등 오방색으로 차리는 것이 전통 상차림의 불문율이다. 과거에는 이런 반상을 독상으로 받았지만 조선 후기부터 물자부족으로 인해 겸상으로 바뀌었다. 반찬이 남을 걱정은 없었다. 옛날엔 물림상이라 해서 왕이나 대감, 집에선 가장과 장남이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랫사람에게 반찬상을 그대로 물렸다. 밥만 새로 준비하면 됐다. 상물림은 한 번에 끝난 것이 아니고 노비 등을 거쳐 가축에게까지 내려가게 된다.

근현대에 들어 반찬이 주목받은 것은 도시락 때문이다. 지금이야 급식이나 외식을 하지만 예전에는 학교나 직장에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도시락은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산다는 것이 드러나는 핵심 샘플로, 서로 간의 빈부를 살피는 지표였다. 이 때문에 주부들은 늘 도시락 반찬이 걱정거리였다. 장에 가는 이유는 늘 다음날 도시락 찬거리를 사러 가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듯, 맛있는 반찬과 함께 ‘자식이 기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도시락에 담았다.

당시 가장 보편적이던 양은 도시락의 특성상, 도시락 반찬은 물기가 적고 짭조름해서 밥을 삼키는데 부족하지 않아야 했다. 가장 만만한 게 건어물과 채소였다. 1980년 중반대만 해도 김치와 시금치나물, 콩나물 무침, 우엉조림, 연근조림 등이 단골메뉴였다.

▲  놀고먹기연구소장
1년 내내 커다란 커피 병에 김치만 싸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럴 경우 김칫국에 밥을 비비기 좋았다) 반찬에는 계절이 반영됐다. 봄동부터 시작해 고구마 순으로 1학기가 끝났다. 2학기는 콩과 무가 학급을 지배했다. 오징어채볶음, 쥐포 조림, 뱅어포 조림, 멸치볶음, 꼬막무침, 김, 콩자반 등도 인기 메뉴였고 김치볶음과 장조림, 소시지부침, 계란부침, 계란조림 등이 고급 축에 속했던 시절도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비수준이 올라가며 학생들이 좋아하는 비엔나소시지와 햄, 참치, 맛살, 불고기 등이 고급 반찬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도시락 반찬에는 집안 사정이 그대로 반영됐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사실 반찬이야말로 한식 상차림의 주인공이다. 식도락에서 밥은 오히려 짜지 않게 반찬을 먹기 위한 조연 신세가 아닐까.

그야말로 주부가 바뀌고 본말이 전도된 형국이다. 지금은 건강한 음식, 맛좋은 음식으로 세계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 원리나 정성으로 보아 요리라 불러도 손색없는 우리 반찬의 영광을 기대해 본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 마포 ‘마포옥’의 파김치
알싸한 맛·농후한 국물 ‘환상’

- 종로 ‘열차집’의 굴조개젓
조갯살 탱글탱글… 곰삭은 맛

- 장흥 ‘경성식당’의 김치
묵은지에 갓김치·알타리까지


◇서울 마포 ‘마포옥’의 파김치 = 정통 서울식 설렁탕집으로 올해로 70년이 넘은 노포. 1949년 개업했다. 한우 사골과 소고기 양지, 차돌박이 등을 써 구수하고도 진한 국물로 정평이 났다. 맛좋은 국밥집이 대개 그렇듯 이 집의 김치 역시 맛이 좋다. 적당히 익어 아삭한 김치를 내놓는데, 신김치와 파김치는 따로 부탁해야만 내준다. 파김치의 알싸한 매운맛이 농후한 국물과 잘 어울린다. 미리 알고 찾아 먹으면 단골. 서울 마포구 토정로 312. 양지설렁탕 1만5000원.

◇서울 종로 ‘열차집’의 굴조개젓 = 서울 시내에서 전을 부쳐 파는 ‘전집’ 중 가장 유명한 집이 아닐까 한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 기름 향이 식욕을 자극하는 모둠전과 빈대떡이 막걸리를 부른다. 이 집에선 독특하게도 전을 간장과 함께 굴 조개젓에 찍어 먹는데 이게 훌륭하다. 매운 양념을 가미한 짭조름한 조갯살이 탱글탱글하니 적당히 곰삭은 맛인데 기름기와 잘 어울린다. 기름에 지진 빈대떡에 얹어 먹기도 하고 싸먹기도 한다. 젓갈 추가 주문은 따로 돈을 받는데, 양이 많아 당당하게 안주로 한몫한다. 서울 종로7길 47. 빈대떡 3장 1만3000원.

◇고양 탄현 제니스 ‘산전수전’의 묵은지 =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와 막걸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 깔끔한 맛의 전(부침개)과 제철 술안주로 소문난 곳인데 김치가 맛있기로도 유명하다. 묵은지와 겉절이 모두 맛있고 곁들여 차린 젓갈류도 좋다.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동에 있지만 멀리서도 찾아오는 집이다. 얼핏 저녁 장사에 포인트가 맞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육개장과 흑임자들기름 국수 등 맛난 식사 거리도 많다. 고양시 일산서구 일현로97-11. 1층. 소고기육개장 1만 원.

◇전남 장흥 ‘경성식당’의 김치 = 업태는 ‘동네 중국집’인데 반찬이 수도 없이 깔린다. 그것도 어묵조림이나 진미채처럼 쉽게 만드는 찬이 아니다. 다 김치 종류다. 묵은지에 갓김치, 부추김치, 무말랭이, 총각김치까지 있다. 단무지와 양파는 당연하다. 반찬은 철에 따라 바뀐다. 봄에는 냉이, 여름엔 고구마순 식으로 계절이 반영된다. 짜장면에 먹자니 황송하다. 양념을 남겨 밥까지 비벼서 먹으면 간이 딱 맞는다. 그 자리에서만 40년이 넘은 오래된 식당. 전남 장흥군 읍성로 164. 짜장면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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