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서대문구 거북골로 명지대 연구실에서 사회가치경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기업의 사회가치경영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낙중 기자
- ‘사회가치경영’ 이론 권위자 김재구 명지대 교수
자동차 기업에 ‘탄소 감축’ 규제처럼 사회적 요구 강화
사회·경제적 가치 함께 창출… 코로나 시대에 더욱 절실
국내 ‘사회적 기업’ 절반이 적자 나지만 5년 생존율은 90%
좋은 일만 한다고 존속 보장안돼… 스스로 경쟁력 길러야
최근 기업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가 바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다. 기업의 지속가능을 위한 핵심 요소로 각인되면서 ESG는 현대 기업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 됐다. 국내 주요 기업 중에서 이를 기업 경영에 직접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SK그룹이다. 이를 최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제 ‘ESG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VBA 2020 코리아’ 세미나에 영상 축사를 보냈다. VBA는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ESG 측정 표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기업 연합체다. 독일 바스프와 SK그룹이 각각 의장사와 부의장사를 맡고 있는데, VBA가 해외에서 세미나를 연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최 회장이 기업의 일선 현장에서 사회가치경영을 실천하는 실천가라면 사회가치경영 이론의 국내 최고 권위자는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사회적경제 전문위원장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 지속가능경영 포럼’(KBR·Korea Business Roundtable)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전략’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기업 등이 일선 현장에서 사회가치경영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설파하고 있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거북골로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사회적기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때를 2010년 무렵으로 기억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책임(CSR)과 공유가치창출(CSV) 등으로 꾸준히 발전돼 왔지만,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인사와 조직문화에까지 투영해야 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김 교수가 뜻이 맞는 교수들과 힘을 합쳐 발간한 ‘기업의 미래를 여는 사회가치경영’은 바로 그런 김 교수의 이론을 보여준 도서다. 최근 내놓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전략’은 후속작 성격의 책이다.
김 교수가 주축이 돼 지난 7월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경영 포럼인 KBR도 출범했다. 사회가치경영을 선도하는 기업과 공공기관, 학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발족한 포럼으로, 사회적 가치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는 조직이다.
―사회가치경영이란 무엇인가.
“경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과 수단, 기업가 정신 등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사회가치경영이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기회를 포착하고 자원을 활용하는데, 그 기반이 되는 경영에는 전략과 거버넌스, 프로세스, 시스템 등이 있다. 그것들을 갖춰서 하는 게 사회가치경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업은 주주 이익 극대화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기업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단일 목적만 추구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은 홀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자원을 받아들이고 제조·가공을 통해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존속할 수 있는데, 경제적 가치 일변도로만 달려가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양극화나 빈부 격차 등의 이슈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기업 스스로도 고객 만족이나 내부 근로자, 협력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라는 요구와 압력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자동차 기업에는 유럽연합(EU)의 탄소가스 감축 요구가 규제로 다가올 수 있으며, 그런 요구는 점점 더 강화된다. 탄소 저감은 국제적 규범이 돼 가고 있기에 기업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된다. 환경 외에 인권, 노동문제 모두 기업에 압력 요인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결국 이는 기업 스스로 사회가치경영을 높여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을 사례로 들었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자산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7조 달러에 달한다. 블랙록은 올해 초 전 세계 투자 대상 기업에 편지를 보내 탄소가스 배출 등으로 인한 숲의 파괴 때문에 기업 경영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블랙록이 투자하고 있는 자산의 포트폴리오 비중을 줄이거나 심할 경우 자금을 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사회가치경영 실현은 경영 성과에 바탕을 둔다. 다시 말해, 이윤을 내야 사회가치경영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치경영을 잘 접목하고 있는 SK그룹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만든 ‘사회적 가치’(SV) 실적이 2018년에 비해 6조 원 넘게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반도체 시황이 악화되면서 매출이 감소했고, 이 때문에 납세와 배당, 기부 활동 등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분석됐다. 기업 존재 목적인 이윤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사회가치경영 실현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김 교수도 저서에서 “기업이 경제적 가치 창출만으로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고 존속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조화가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필요조건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에 이윤은 사람에게 호흡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삶은 호흡이나 마찬가지인데, ‘당신, 삶의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먹기 위해 산다’거나 ‘가치를 위해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숨쉬기 위해 산다’는 사람은 없다. 기업들도 회사를 소개할 때 회사 설립 목적을 ‘이윤 창출’이라고 말하는 곳은 없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그것(이윤)에 그치지 않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사회가치경영을 영위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사회적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회적기업들이 경영손실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계속 얘기하고 있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양립 문제와도 관련되는데, 이런 사회적기업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실제,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국회에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회적기업 1825곳 가운데 817곳이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사회적기업의 44.8%에 해당하는 수치다. 2015년과 2016년에도 적자를 냈다.)
“방향으로 봤을 때는 분명히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두 개 정책 목표 중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제조과정에서 쓰레기 처리비용 등을 줄이면 당장 수익이 나고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는데, 친환경적인 경영과는 분명 상충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당장은 그렇게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고객의 니즈를 보고 그에 기반해 사업기회를 찾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든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이익을 얻는다. 결국, 일반 기업들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기술적 부분이나 마케팅 부분 등에서 확실한 경쟁력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게 기업에는 절체절명의 가치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사실 사회적기업이 적자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존율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적기업의 생존율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5년 이상 생존율이 90%가 넘는다. 생존율만 보면 일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적자가 심한데도 왜 이렇게 생존율이 높은가 하면 사회적기업에는 사회적 사명이라는 미션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회적기업이라고 좋은 일만 한다고 해서 기업의 존속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사회적기업들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수익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지역별·업종별 네트워킹을 해서 협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기업의 규모화를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 정부 공공구매에 사회적기업의 참여를 제안하고 있는데, 150조∼170조 원 수준의 정부 공공구매 조달사업에 사회적기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이 정부를 대신해 공공 사회의 복지안녕을 위해 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기업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만이 아니다. 종업원들도 주인이다. 지난해 8월 미국 내 200대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Business Round Table)에서는 기업의 목적이 경제적 가치 극대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티, 함께하는 공동체 사회, 지역사회의 번영과 발전에도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대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 단체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을 잘 새겨봐야 한다.”
임대환 기자, 정리 = 김온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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