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⑦ 국가와 사회 - 고독의 시대, 人文知의 역할

  • 문화일보
  • 입력 2020-11-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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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

코로나는 일상에 숨어있던 불안·애증·차별·배타성 표출시켜
개인과 사회 연결하는 ‘유대의 끈’ 잘라버려
국가는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人文知는 뿔뿔이 흩어진 개인의 연대·협력 이끄는 역할해야


지금 우리는, 당연했던 일상세계의 심연이 열려, 깊은 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예외적 상태’는 ‘정상 상태’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사회와 국가, 그 관계의 본연을 들여다보게 했고, 일상의 표면에 잘 나타나지 않던 불안과 애증, 차별과 배타성을 표출시켰다.
 
감염증과 전염병, 유행병은 우리를 중앙정부와 공권력의 통제 강화, 즉 ‘위생행정’ 아래 놓이게 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관행과 규제, 나아가 국가통제관리 등 사회와 국가가 맺고 있는 ‘관계’ 전반에 관련돼 있다. 더욱이 공중위생의 관점에서 청결이나 격리, 소독이 필수적인 이상, 전염병이나 감염증의 만연은 정치·사회 시스템 배후에 있는 청결과 불결의 감각, 일련의 문화적 습관뿐 아니라, 불가해한 본능과 충동마저 드러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팬데믹화’에 대한 방역은 좁은 의미에서의 공중위생에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문화·사회심리·사생관(死生觀), 나아가 도의적 관념 같은 ‘마음의 습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교차하는 영역에 걸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습관’은 전 지구적으로 창궐하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어떻게 바뀌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삶과 생활양식,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이 같은 변화들을 인문적 지식은 어떻게 마주하면 좋은 것일까.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언급한 ‘마음의 습관’을 실마리로, 미국적 삶의 방식을 지탱해온 ‘개인주의’라는 ‘마음의 습관’이 전통적인 활력을 잃고, 사람들을 고립, 불안과 고독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낸 바 있다. 벨라의 ‘마음의 습관’은 1980년대 중반에 출판됐는데, 한때 ‘현대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며, 세계 각국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과 그 문화가 고독과 불안에 짓눌리고 있으며, 이에 양식 있는 중산층 시민들마저 병들어, 치료와 구원을 갈망하는 모습을 담았다.
 
벨라의 ‘마음의 습관’으로부터 5년 후, 냉전이 종식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말한 것처럼 ‘아메리칸 스타일(미국식 자유민주주의체제)’이 지구를 뒤덮고, 헤겔이 예견한 ‘역사의 종말’이 미국에 의해 실현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30년 가까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은 철저한 ‘자기 책임’을 유일한 도덕성으로 만들며, 벨라가 미국 시민계급에게 찾아낸 ‘개인주의’의 병리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이미, 경제 인류학자 폴라니는 규제 없는 시장 중심 자본주의가 개인과 사회의 유대를 모두 분쇄하고, 커뮤니티뿐 아니라 자연환경까지 파괴하는 참상을 시인 블레이크의 말을 빌려 ‘악마의 맷돌’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기서, 1930년대의 ‘세계적 현상’을 돌아보자. 미국식 뉴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 그리고 구소련의 스탈린주의 등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움켜쥐었고, 국민의 ‘마음의 습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주의적 에토스(성격, 관습)에 물들었다. 그러면서 불안과 고독, 우울과 허무주의는 일거에 전쟁과 파괴의 장대한 드라마 속에서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살육은 ‘인간성’(휴머니티)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킬 만큼 ‘미친 짓’이었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 우린 1930년대의 세계적 광경을 데자뷔처럼 보고 있다. 민영화와 규제 완화가 슬로건이 됐고, ‘모든 것을 시장으로’라는 구호가 부동의 주류 경제학 이론이었는데, 이제 다시 국가가 관제탑으로 나서고 있다. 거액의 재정급여를 비롯해 공중위생, 사람의 이동, 락다운(시설폐쇄)등 강권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에 누구나 순종한다. 이는 17세기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그린 ‘리바이어던’을 방불케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세계 각국에선 개인과 사회를 잇는 유대가 누더기처럼 피폐해지고, 개인의 원자화(原子化·애터마이제이션)와 함께 고독과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이 확산, 젊은 층의 자살률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감염증의 확대는 이 같은 경향을 보다 극적으로 증가케 했고, 결국 홉스가 ‘자연 상태’로써 그려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유사한 상호 불신과 적대적 관계를 만들고 있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면 ‘세계 내전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음울한 광경이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젊은 층의 자살률이 현저히 높고, 유럽에서는 이슬람을 둘러싼 혐오와 테러의 응수가 이어지고 있다. 강대국 간 패권적 대립은 더욱 세차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옴니크라이시스) 혹은 ‘세계 내전’ 속에서 팬데믹이 종식될 징후는 보이지 않으니, 1930년대 이후 역사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인문지’(人文知)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인문적 지식이 국가와 경제·사회가 당면한 위기와 혼란을 외면하고, 대립과 갈등 없는 ‘몰(沒) 정치적’ 위안만을 외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인문지는 벨러가 말한 ‘마음의 습관’을 만드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 바로 ‘마음의 습관’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포함해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도덕성 형성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의 위기를 ‘지양’(Aufheben)해야 할 것으로 치부했고, 그럼으로써 국가의 이념장치가 시민사회를 잠식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강한 국가’와 ‘약한 사회’의 조합이 이뤄지면서 더욱 파국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조선)도 그 와중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겪었다.
 
시민사회가 유약하면, 질서의 보루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팬데믹 혼란 속에서 국가는 마지막 카드가 됐고, ‘현대의 리바이어던’이 돼 국민의 ‘마음의 습관’을 규제하고, 미세한 행동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1930년대 이후의 역사와 흡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내전이나 내란의 이미지를 방불케 하는 팬데믹 상황, 경제 위기, 무너지는 사회통합 등이 극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존재로서 ‘국가’만 보이는 상황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은 그 속한 사회에 따라 달라지는데, 위에서 시민들을 내려다보는 무서운 ‘전횡의 얼굴’도 있지만, ‘족쇄’를 찬 채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유화적 얼굴’도 있다는 점이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좁은 회랑‘).
 
서울이나 도쿄에 필적하는 인구를 락다운 시키고, 일단 강제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중국의 경우는 국가와 엘리트층이 강력하고, 언론자유를 포함해 시민들의 행동이 사실상 통제 상태에 놓여 있다. 중국의 잠정적 성공은 ‘강한 국가’와 ‘약한 사회’의 조합 덕이다. 그곳에선 한편으론 ‘몰 정치적’ 혼돈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적극적인 과잉 동원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자율적인 연대와 협력에 의한 ‘결사형성적인’(結社形成的·associative) 연결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 주도적 ‘과(過)정치화’와, 몰(沒) 정치적 ‘사적’ 영역으로의 도피가 만연하면서, ‘전횡’적인 리바이어던을 지탱하는 ‘마음의 습관’만을 강화한다.
 
이때, 인문적 지식은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적 계몽의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문지는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에 의한 휴머니티 위에 성립되며, 휴머니티에 기초한 ‘마음의 습관’의 확대가 사명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고독이 젊은 층에까지 번지고, 이들이 마음의 병으로 생명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계속된다면, 비록 경제적 번영과 사회질서가 유지돼도 그 안에는 허무주의와 냉소가 팽배한 것이다. 그런 병리는 전횡적인 리바이어던에 짓눌려, 일시적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도, 사회 저변에 계속 머문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한국이나 일본은 중국식 ‘전횡의 리바이어던’과는 다르다. 특히 한국은 1987년 민주화 달성 이후 흔들림이나 후퇴가 있었지만, 적절한 견제를 받는 ‘족쇄 찬’ 리바이어던, 즉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의 조합에 가깝다. 그래서 국가의 지나친 강제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방역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 젊은 층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벨라가 이미 30여 년 전에 이야기한 ‘마음의 습관’을 상기시킨다. 이미 양국에선 불안과 고독이 일상적인 풍경이 돼버렸다. 개인과 사회를 잇는 유대가 약해졌음에도, 그 사실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다는 의미다. 성숙한 사회라면, 원자화(原子化)된 개인이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열기로 단숨에 과격한 민주화를 맞이하고, 그 운동이 퇴조하면 다시 몰 정치적 사적 공간으로 도피하는 식의 행동양식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국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수평적인 연대와 열려있는 협력, 즉 ‘결사형성적인’행동의 패턴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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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즉 불신과 적대가 보다 심각한 희생을 초래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전횡적인 리바이어던이 ‘약한 사회’ 위에 성립된다는 점도 일러줬다. 전염병과의 공존이 불가피하다면 ‘강한 국가’에 굴하지 않는 ‘강한 사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단선적인 민주화나 원자화, 개인화와는 다른, 결사형성적인 ‘마음의 습관’을 넓혀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마음의 습관만이 불안이나 고독에 대한 ‘내성’과 ‘면역력’이 있는 사회로 이어질 것이기에. ‘인문지’의 비판적 계몽의 역할과 의의는 거기에 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번역·정리=박동미 기자

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 일본 근대화 과정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정교수, 도쿄대 현대한국연구센터장,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 성찰을 위한 액션 플랜

강상중 교수는 지식을 인문지(人文知)와 전문지(專門知)로 나눈다. 인문지는 종교·철학·문학·사회 등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 위한 교양이며, 전문지는 당장 돈과 연결되는 전문 지식이다. 그는 현재 팬데믹 상황도 인문지만이 궁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고독과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을 뚫고 나갈 보루가 ‘국가’가 아닌 ‘인문적 지식’이라는 것. 그의 저서 ‘마음의 힘’ ‘고민하는 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등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인문지를 통해 위기를 이기는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성숙한 시민 사회의 조건으로 꼽는 ‘결사형성적’ 연결은 일본 정치철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쓴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 좀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다. 일본 정치학을 근대적 학문으로 확립시킨 마루야마는 ‘자신은 권력을 잡을 생각이 없지만, 공적인 것에 관심과 의욕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민중’을 민주주의와 정치의 조건으로 상정하고 이를 ‘결사형성적인 주체’라고 불렀다. 책은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혜와 복종, 정치권력 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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