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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지적 문화 시점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17일(火)
위기의 극장가 女감독의 ‘F등급 영화’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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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정직한 후보’‘내가 죽던 날’(위부터 차례로)과 ‘소리도 없이’ 촬영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아인(아래 사진 왼쪽)과 홍의정 감독(〃 오른쪽).
■ Female - Rating

대작 개봉 연기 잇따라 … 저예산 F등급 영화가 빈자리 채워
페미니즘과는 달라 … 디테일하고 감성적인 전달 강점
‘정직한 후보’‘삼진그룹 …’, 올 개봉 韓영화 흥행 8·9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충무로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지난 4월, 월별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무려 92.7% 감소했다. 최근 멀티플렉스 CGV와 롯데시네마가 발표한 지난 3분기 실적 역시 예년과 비교해 70%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됐다. 여성 감독과 각본가, 그리고 여성 배우들이 참여한 소위 ‘F등급’(Female-Rating) 영화들은 오히려 빛나고 있다. 그동안 충무로에서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던 여성 영화인들이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F등급 영화의 도약

F등급의 ‘F’는 피메일(Female), 즉 여성을 뜻한다.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열린 제24회 배스 영화제에서 처음 사용된 표현이다. 감독과 작가, 주연 배우 중 여성이 포함되면 F등급 영화로 분류되는데, 세 역할을 모두 여성이 맡으면 ‘트리플 F등급’ 영화라고 불린다. 이는 그동안 전 세계 영화계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현실을 반영한다.

F등급 영화의 역설을 살피려면 코로나19 이후 불거진 영화계의 위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것이 불황의 이유일까? 정작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좌석 띄어 앉기 등의 조치로 관객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흥행될 만한 영화’ 등이 개봉을 미룬 것이 침체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미 개봉을 두 차례 연기한 240억 대작 ‘승리호’를 비롯해 ‘모가디슈’와 ‘영웅’ 등 굵직한 작품들이 일제히 몸을 사렸다. 그 빈자리를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알찬’ 영화들이 채웠다. 그 중에는 F등급으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많았다. 한 영화평론가는 “코로나19 이후 F등급 영화를 의도적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여성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들에 상대적으로 자본 투입 규모가 작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9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투입된 한국 영화 49편 중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는 5편이었다. 2017년 0편, 2018년 1편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영화계 전체를 봤을 때 F등급으로 분류될 영화의 수는 여전히 적지만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올해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인 2월 개봉된 장유정 감독의 영화 ‘정직한 후보’는 관객 153만 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우 라미란이었다. 홍의정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저예산 영화 ‘소리도 없이’ 역시 40만 명을 모아 수익을 냈다.

고아성·이솜·박혜수 등 여배우 3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F등급 영화로 분류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역시 15일까지 144만 관객을 동원했다. ‘정직한 후보’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순위 8, 9위에 각각 랭크됐다.

◇페미니즘 영화와는 다르다

F등급 영화는 페미니즘(feminism) 영화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페미니즘 영화가 통상 여성 인권 등의 문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다루는 반면, F등급 영화가 반드시 이 같은 메시지를 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연출·각본·출연 등 한 가지 분야에서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다른 분야에 남성이 포함돼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남성인 이종필 감독이 연출했고, ‘소리도 없이’의 주연배우는 유아인과 유재명이다.

하지만 감독이나 각본가, 배우 중 여성이 포함되기 때문에 F등급 영화는 남성들이 의기투합한 영화들에 비해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 디테일하고 감성적으로 포착한다. 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업 영화로서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김혜수·이정은·노정의가 주연 배우로 참여하고 이 세 여성의 연대를 그린 트리플 F등급 영화인 ‘내가 죽던 날’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지완 감독은 “애초에 여성 서사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다”며 “재미있는 얘기를 쓰려고 했다. 힘겨운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제가 (여성이라) 더 잘 표현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F등급 영화가 늘고 있다는 건,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서는 영화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내년에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현빈이 주연한 ‘교섭’이 공개된다. 여성 감독이 만든 최초의 100억 원대 영화다. 지난 몇 년간 ‘미투’ 운동을 비롯해 성인지 감수성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노력 속에서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판단하려는 기준이 점차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단순히 영화의 소재나 주제로 여성을 다루느냐의 문제가 F등급의 기준은 아니다. 영화에 구현되는 세계에 과연 여성주의적 인식론이 제대로 담겨있느냐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라며 “영화가 상상의 영역을 다루지만,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생산물이고, 관객이 간접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여전히 영화 제작의 주체는 남성 중심이었기에, 균형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F등급 영화를 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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