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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Question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18일(水)
민주주의, 진화냐 소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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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밥장 작가

“민주주의가 왜 이래?” 최근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모범국인 미국의 대선 이후 벌어지는 대혼란을 지켜보면서다. 어디 미국뿐일까. 2017년 대선과 지난 4월 총선을 통해 주류세력 교체에 성공한 대한민국 집권세력은 알렉시 토크빌이 예견한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당이 무력화하고, 시민들이 잠재적 독재자를 방조하고, 정치권력에 의해 언론과 사법기관의 독립성이 위협당하고, 극단적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궁극에는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지는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이 포퓰리즘을 부채질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딥페이크와 정보 독점이 그 위기를 가속화 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은 이제 미래에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정치제도라는 대의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무기력해진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새로운 정치과정과 정치체제가 출현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서 어떻게 수요자인 ‘주인=국민’중심의 의제 설정을 일궈내며, 어떻게 대의제의 한계를 넘는 민주주의의 ‘뉴 노멀’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  포퓰리즘(populism) 인민이나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 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elitism)에 상대하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다수의 지배를 강조하고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 하지만, 최근 들어 대중의 인기만을 좇는 대중추수주의 혹은 대중영합주의로 보는 부정적 개념이 됐다.

◇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는 ‘주인’인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리인’에게 법과 정책과 국정 운영의 권한을 위임하는 제도다. 대의민주주의는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의 최고단계이자 강력한 근대성의 상징이다. 하지만 ‘최고단계는 곧 사멸하는 단계’인 것일까.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 대의제에 ‘대의(代議)’가 없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의민주주의는 인구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사회의 고도 분화 등에 따른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산물이었지만 이미 대표성의 위기를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에 의한 민주주의의 전복 사례도 수없이 많다.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민주주의와 관련한 역설 중 가장 비극적인 역설이다(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의제가 무기력해진 것은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공익보다는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모순적 현상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대의제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여겨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애덤 셰보르스키 미국 뉴욕대 교수가 지적한 대로 ‘정부·여당이 패배할 수 있는 제도’였기 때문이었다. 즉 공생을 지향하도록 설계된 제도였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의제는 공멸의 제도가 돼 갔다. ‘베텔스만 변혁지수(BTI)’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국가의 수는 그 이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민주주의 위기는 포퓰리즘의 지구적 확산 속에서 일국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위기로 확인된다.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등장은 지배적인 정치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표준적인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라고(‘포퓰리즘의 세계화’) 말했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포퓰리스트는 대의민주주의의 유용성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고, 자신은 기존의 정치 제도와 싸울 수 있는 권한을 대중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회·관료 조직·사법부 등 민주주의 기구의 권위와 법치를 종종 훼손한다.” 포퓰리즘 지도자는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국민과 엘리트 간의 적대감을 정치의 핵심으로 상정한다. 작금의 한국 정치도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있다. ‘아시안 바로미터 서베이(Asian barometer survey)’는 한국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높아 포퓰리즘이 부상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의 진보는 ‘딥페이크’ 같은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딥페이크는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정치까지 오염시키며 거짓된 정보로 대중을 선동하고 투표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6년 미 대선 전 3개월 동안 딥페이크에 의한 가짜 뉴스 20건이 페이스북 내에서 871만여 건이나 공유되거나 반응을 이끌어 낸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권력 엘리트의 정보·데이터 장악과 국민 통제 기술 또한 더욱 늘어날 것이다.

▲  다수의 폭정 (tyranny of the majority) 정치적 다수파가 집단의 힘에 의지해 소수파를 억압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논리인 다수결이 소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일 때 폭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인데 ‘다수의 전제’ ‘다수의 독재’로도 표현된다. 1788년 존 애덤스의 서적에 처음 등장하며, 1835년 출판된 알렉시 토크빌(그림)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섹션 타이틀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 대안 모색과 시행착오

위기에 처한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책으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모두 유권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언론인 출신의 공화주의자 케빈 올리어리는 책 ‘민주주의 구하기’에서 기존 입법부와는 별개로 일반 시민으로 ‘민회’를 구성해 국정과 입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프랭크 헨드릭스는 좀 더 정교하게 민주주의 미래를 연구한 인물이다. 그는 ‘의사결정의 구조와 주체’라는 틀을 활용해 대의민주주의, 협의민주주의, 유권자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등 네 개의 모델을 고안했다. 그에 따르면 대의제의 약점을 극복하는 대안 모델이 참여민주주의다.

광장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의 극단적 형태다. 확실히 대의제의 쇠퇴는 광장민주주의의 확산과 비례한다. SNS와 과학기술의 발전은 광장의 기획과 실행을 부채질한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 확대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은 때로 반민주주의를 심판하는 장이지만, 때로는 다중을 우민화하고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 파시즘의 무대다. 광장은 공존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절멸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손영준 국민대 교수는 “광장은 종종 ‘폭압성’과 ‘중우성’을 부른다”면서 “이를 제도적으로 제어할 합의된 원리를 수립하기도 어렵고 집행하기도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함규진 서울교대 교수는 광장민주주의 대신 숙의민주주의에 더 기대를 건다. “참여의 폭발에 숭고한 아우라를 부여하는 세력이 제도권 주류로 등장하며 ‘국민 다수의 뜻’과 ‘법에 의한 지배’를 내세워 헌법과 삼권분립과 언론자유를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촛불 정권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대중사회에 착근한 민주정치제도를 인정하고 옹호하면서 의식화하고 전문성 있는 유권자가 나서도록 한 게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이다.” 숙의민주주의는 헨드릭스가 제안한 협의민주주의와 유권자민주주의의 결합 모델에 가깝다.

하지만 숙의 모델 또한 ‘미완의 프로젝트’인 것으로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 결정을 위해 구성된 공론화위원회 사례가 그걸 말해준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숙의 공론장으로서 평가받기도 했지만, 고도의 전문적 결정을 시민의 손에 맡기는 것의 한계와 문제점을 노출하고 정부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빚었다. 숙의의 능력을 갖춘 집단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숙의 능력이 없는 집단은 참여 의지가 높은 ‘숙의의 패러독스(paradox)’ 현상도 문제다.


◇ 또 다른 모색, ‘온 체인 민주주의’

광장이나 숙의가 미래의 시공간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자리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광장에 배태(胚胎)된 ‘폭민정’의 성격, 숙의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참여의 역설, 이 같은 시행착오는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 특히 가속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형태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다(이영탁·손병수, ‘빅 퀘스천 10’). 이와 관련해 블록체인 기반의 ‘온 체인 민주주의’에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럽다. 단순한 전자민주주의를 넘어 블록체인 기술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자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란 분산 컴퓨팅 기술 기반의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이다. 소규모 데이터들이 체인 형태로 연결돼 형성된 블록에 데이터를 저장함으로써 한 번 네트워크에 반영되면 특정인이 거래 기록을 임의로 조작하거나 추가할 수 없어 거래의 ‘신뢰성’을 담보한다. 또 모든 데이터를 코어가 아닌 노드에 저장하기 때문에 ‘탈중앙화’와 ‘보안성’을 갖는다. 온 체인 민주주의는 곧 ‘신뢰성’ ‘탈중앙화’ ‘보안성’이라는 블록체인 운영 원리를 정치에 적용한 형태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크게 선거와 여론 형성과 정당·입법 활동 등을 통해 법률·정책·의제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행정기관을 통해 이를 집행하는 것 등 두 개의 과정으로 나뉜다. 이중 블록체인 기술은 ‘온 체인 투표’를 활용해 앞의 과정을 돕는다. 투표가 소중한 것은 모든 유권자가 ‘1인 1표’의 등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는 데에 있다. 앞서 밝혔던 고도로 발전한 블록체인 기반 투표는 블록으로 이어진 노드들이 부정선거를 방지하도록 설계되며, 탈중앙화 신원인증(DID) 기술을 접목할 경우 중복 및 허위 참여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스크랜튼대학 국제학부 교수는 “기술 발전을 잘 활용할 경우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세대 후의 미래에는 모든 국민 사이에서 ‘완벽하게 등가적인 권력 분산’이 가능한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가 블록체인 원리를 이용한 온 체인 민주주의 실험을 투표로부터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재편성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수요자 중심의 소통방식으로 재편되면 의제설정의 주도권이 대표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수의 개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제 남는 것은 온 체인 민주주의가 법·정책·제도의 효율적인 집행 또한 도울 수 있는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법률과 정책 등의 집행 과정에도 왕성하게 활용되는 민주주의 체계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행정 기관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관리함으로써 ‘정치과정의 환류’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주 지역 ‘열린 정부기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설립된 소프트웨어 기업 ‘OS시티’가 그 사례다. 이 기업은 블록체인의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중남미 전역의 모든 도시에서 보조금 같은 공공자원의 배분에 대한 시범 서비스를 하려고 계획 중이다. 한국의 경우 서울시가 서류 없는 자격 검증, 시간제 노동자 권익 보호, 하도급 대금 자동 지급 등 ‘온 체인 행정’을 준비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정치과정의 전 영역에서 적용되면 의회나 정부 권력의 축소 역시 필연적일 것이다. 그 역할과 기능이 온 체인 민주주의를 유지·지원하는 ‘관리형 정치(행정)’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당 기능의 축소와 소멸을 이끌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화순 연세대 교수는 “미래의 정치는 확증편향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 속에서 미래 시민의 스마트한 의제 설정과 결정을 방해하는 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주의의 미래, 다시 묻다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권자의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늘리면서 ‘수요자 중심’의 정치과정과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래 과학기술사회에서 의제 생산과 결정이 정치권 내에서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당과 정치권의 의제 설정 능력이나 정치인 교육과 충원 능력이 매우 약화했다”며 “기술 발전의 시대에서 유권자 정치 참여의 확대는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술 발전은 많은 정치적 이해 당사자가 정치제도 밖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고 전망했다.

미래의 디지털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대의기구가 제대로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질수록, 다른 대안들이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온 체인 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접근에의 열망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빅 데이터와 AI 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을 잘 활용하면 중앙정부와 권력의 정보·데이터 독점 폐해를 방지할 수 있고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할 시공간이 열린다는 믿음이 점점 더 싹트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새로운 운영체계를 뭐라고 명명하면 좋을까. 권혁주 교수는 ‘인텔리전트(intelligent) 거버넌스’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권 교수는 “온 체인의 알고리즘을 구성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적 결정사항이 될 것이며, 이것이 미래 정치에서 최대 의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준기 교수는 “기술 발전에 따라 개인과 이해집단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 이를 ‘AI 기반의 의제 설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는 처음 민주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대의제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나타날 것인가. 민주주의의 ‘뉴 노멀’은 무엇인가. 이제 이 시점에서 다시 질문한다. 온 체인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멸해가는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인텔리전트 거버넌스’는 민주주의의 뉴 노멀이 될 것인가.


◇ 역사의 원형에서 공존을 배우다

온 체인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의 성숙도와 신뢰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선뜻 답하기 어렵다. 온 체인 민주주의는 그 특성상 때로 참여자 개인의 ‘잊힐 권리(right-to-be-forgotten)’를 거스를 수도 있다. 블록체인의 도입이 ‘기술 격차’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이 마련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더라도 미래를 향한 질문은 계속돼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도 다수결과 대의제라는 민주주의의 원형(原型)이 있었다. 아테네의 아고라 박물관에는 옛날 ‘제비뽑기’에 사용했던 비석이 남아 있다. 당시 모든 성인 남자는 중요 사항을 논의해 결정할 때 아고라 광장에 모였다. 이를 ‘민회’라 불렀다. 직접민주주의다. 민회는 법안을 ‘다수결’로 결정하고 제비뽑기로 500명을 뽑아 평의회를 구성했다. 대의민주주의다. 인류 최초의 민주정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의 결합으로 작동된 건 흥미롭다.

근대 대의제의 역사는 200여 년에 불과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는 고대 민주정의 발전적 구현체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 속에서 부단히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역사적 원형에 대한 ‘영원한 회귀(回歸)’를 계속할 것이다. 김민전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증가하지만 그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스타일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democracy’에서 ‘demos’가 훨씬 활발하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이 이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와 그 대안들은 아직은 모두 ‘미완의 민주주의 프로젝트’이다. 과거의 것과 미래의 것은 대립물의 갈등을 넘어 통일의 단계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래의 정치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를 조화시키는 공존의 지점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그것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성취할 수 없는 파우스트의 깨달음 같은 것이다. 질문은 계속돼야 하고, 답을 구하기 위한 도발적 모색 또한 계속돼야 한다.

허민 전임기자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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