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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18일(水)
여우 숨겨주고 사냥꾼에 알린 나무꾼, 책임 피해 功 얻는 ‘면피 정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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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⑦ 여우와 나무꾼

이해관계 충돌 때 모든 것 들어주는 척 ‘나쁜 정치인’… 좋은 것만 주겠다 약속하지만 해결책 없어
사냥꾼이 여우를 잡아도, 여우가 목숨을 건져도, 자기의 功이라 주장할 수 있는 상황만 원해


여우가 사냥꾼들에게 쫓기다가 나무꾼에게 숨겨달라고 간청했다. 나무꾼은 여우에게 자기 오두막에 숨어 있으라고 했다. 잠시 후 사냥꾼들이 나타나 나무꾼에게 여우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자, 나무꾼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손가락은 여우가 숨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사냥꾼들은 나무꾼의 손짓은 간과하고 그냥 가버렸다. 사냥꾼들이 가버린 뒤에 여우는 말없이 오두막을 나섰다. 이를 본 나무꾼이 감사의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리는 여우의 배은망덕함을 비난하자, 여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손이 하는 일이 당신의 말과 일치했다면 고마워했을 거예요.”

이 우화에 고대의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큰소리로 선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 즉 ‘여우와 나무꾼’은 말과 행동이, 겉과 실상이 다른 위선자를 비판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견 정당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이지만,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보다 더 복잡한 관계가 함축돼 있음이 드러난다.

위에 언급한 해석은 여우를 구하는 것이 선이고 사냥꾼의 편을 드는 것이 악임을 전제하며, 그 바탕에는 약자를 돕는 것, 곤경에 빠진 자를 구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그런데 좀 냉정히 나무꾼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여우를 돕는 것이 선행이고, 사냥꾼을 돕는 것이 악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사냥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에서 사냥꾼은 가엾은 여우를 죽이려 하는 악한이고, 따라서 사냥꾼에게 협조하는 나무꾼 역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사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악한으로 간주되는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솝 우화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의 전통적 표상에서 악의 정수처럼 나타나는 늑대도 실은 살기 위해 사냥을 할 따름이다. 다만 늑대에 대해 특별한 악감정이 생긴 것은 ‘거짓말하는 양치기’와 같은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늑대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가축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가 쓰시마 유코(津島佑子)에 따르면, 목축업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서양 문화권에서 늑대가 악마화됐고, 일본 전통에서는 늑대가 오히려 긍정적 이미지를 지녔다고 한다. 이처럼 이야기 세계 속에서 선악의 이미지는 극히 인간 중심적으로 정해지기 마련이어서, 같은 인간인 사냥꾼을 다른 동물을 해치는 악한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 우화가 언행불일치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석에 대해 던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을 선한 말과 나쁜 행동을 동시에 하는 위선자라고 규정할 때, 이는 그의 말이 내세우는 선함이 겉치레이자 가짜이고, 그 사람의 본질이나 진짜 마음은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동의 사악함에 더하여 그 사악함을 가리려는 선한 말이 그 인간을 더욱 가증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나무꾼의 경우에 서로 어긋나는 말과 손짓을 선해 보이려는 겉치레와 진짜 사악한 마음의 실행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여우를 사냥꾼들에게 넘기는 것이 나무꾼의 진짜 의도였고 여우를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선해 보이려는 겉치레일 뿐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사냥꾼에게 여우의 행방을 알리려는 의도는 실현되지 못한 반면 여우를 보지 못했다는 말은 오히려 실제로 여우를 보호하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말과 손짓의 모순은 가증스러운 위선보다는 차라리 어느 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하고 당혹스럽게 갈팡질팡하는 심리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무꾼은 여우 사냥에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서 구원을 바라는 여우와 여우를 잡으려는 사냥꾼들 사이의 갈등에 뜻하지 않게 말려들어 곤란해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나무꾼은 여우의 구원 요청을 받았을 때 오두막 안에 들어가게 한다. 그는 정말로 여우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준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잡아뒀다가 사냥꾼에게 넘길 생각이었을까? 나쁘게 해석하면 답은 후자가 되겠지만, 그랬다면 이후 나무꾼이 보여준 애매한 행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구조 의지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가 절박한 여우의 요청을 면전에서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나무꾼은 자신의 오두막을 은신처로 제공한 것만으로도 여우에게 엄청난 도움을 준 셈이고, 만일 여우를 쫓는 사냥꾼들이 오두막을 그냥 지나쳐 갔다면, 별문제 없이 여우에게 아주 고마운 생명의 은인이 됐을 것이다. 달려가는 사냥꾼들을 붙잡고 내가 당신들이 찾는 여우를 여기 잡아놓았소 하고 외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사냥꾼들이 등장해 나무꾼에게 여우의 행방을 물었을 때 발생한다. 나무꾼은 여우를 지켜주기 위해 은신처 제공을 넘어서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여우를 바로 옆에 두고서 사냥꾼들에게 여우를 보지 못했다고 뻔뻔히 거짓말하기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혹시라도 사냥꾼들이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자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나무꾼은 자신에게 구조를 요청한 여우에게 보호를 약속하고서 대놓고 여우를 배신해 사냥꾼들의 손에 넘길 정도로 철면피하지도 못하다. 등 뒤에 느껴지는 여우의 절박한 호소와 여우의 행방을 따지는 사냥꾼들의 물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 된 나무꾼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절묘한 해결책을 생각해낸다. 크게 들리는 목소리로는 여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나는 여우를 보지 못했소”), 손짓으로는 사냥꾼들만 볼 수 있게 여우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이렇게 되면 나무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비난이 돌아오는 것을 면할 수 있다. 사냥꾼들이 나무꾼의 말만 믿고 가버린다면 여우는 목숨을 건지고 나무꾼을 고맙게 생각하며 오두막을 떠날 것이다. 반대로 사냥꾼들이 나무꾼의 말에 의심을 품는다면 그의 손짓이 지니는 의미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결국 여우를 잡아갈 것이다. 이때 그들은 여우를 잡게 해준 나무꾼에게 고마워할지언정, 그의 거짓말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우는 여우대로 나무꾼의 거짓말이 통하지 않아서 잡혀가게 된 자신의 불운을 한탄할 뿐, 나무꾼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립할 수 없이 충돌하는 쌍방의 요구 사이에 끼어 있던 나무꾼은 입으로는 이 말을, 손짓으로는 저 말을 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게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는 제3의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무꾼은 여우를 살릴 생각도, 죽일 생각도 없다. 나무꾼은 사냥꾼 편도, 여우 편도 아니며, 오직 자기편으로서 행동한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타인의 생사가 걸린 심각한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책을 떠안게 된 사람이 어떤 식으로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 생각해낸 기막힌 면피의 술책이다.

그러나 예민한 여우의 관찰력이 나무꾼의 멋진 계획에 흠집을 낸다. 여우는 나무꾼이 제공한 은신처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생각이 없었던 나무꾼에게 고마워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우화의 하이라이트는 나무꾼이 오두막을 떠나는 여우를 보고 배은망덕하다고 질타하는 장면이다.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고, 어떤 비난도 받고 싶지 않아 여우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나무꾼이 요행히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공을 인정받고자 한 것이다. 여우는 사냥꾼을 따돌린 것이 나무꾼의 의도에 따라 일어난 일이 아님을 지적하고,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까지 나무꾼에게 고마운 마음(공로에 대한 인정)을 가질 필요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오두막을 떠난다.

‘여우와 나무꾼’을 이와 같이 해석해보면, 이 우화가 고도로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이야기임이 드러난다. 책임은 최대한 회피하지만 반대로 공로는 최대한 인정받겠다는 것이 나무꾼의 전략적 태도인 셈인데, 그것은 오늘날 현실의 문제를 용기 있게 타개해가기보다 인기를 잃지 않으면서 곤란한 상황을 잘 빠져나오는 데만 관심이 있는 영리한 정치인들을 위한 면피의 정치학을 표본적으로 보여준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인은 충돌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구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로서, 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받는다. 현실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정치인의 권력이자 책무다. 복합적인 갈등 상황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현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서 권력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책무이기도 하다. 정치적 선택과 결단은 언제나 선택되지 않은 것의 배제와 희생, 기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정치적 주체는 자신의 결단이 드리우는 그늘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에 따른 비난과 공격을 감수할 용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으려면 그는 자신의 선택이 공동체에 가져올 선이 그 그늘을 넘어선다는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하며, 그 신념을 대중에게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신념이 현실에서 증명되지 못할 때 책임지고 물러날 각오까지 해야 한다.

나쁜 정치인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척하는 정치인이다. 부담스러운 결정은 가능한 한 남모르게 하는 정치인, 모두에게 좋은 것만 가져다준다고 약속하는 정치인, 여우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뒤로는 사냥꾼에게 길잡이가 돼주겠다고 제안하는 정치인. 그런 정치인들은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겠다는 데 대한 분명한 신념이 없다. 책임져야 할 위험한 결단은 한없이 회피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공동체 전체의 현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고, 그 결단이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힐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여우를 잡든, 여우가 목숨을 건지든, 그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사냥꾼이 여우를 잡아도 자신의 공이고, 여우가 목숨을 건져도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을 원한다. 그들은 세상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틈바구니에 파고들어 와 그들 자신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런 정치인들의 정치는 어떤 에토스와도 결별한 권력 기술로서의 정치, 가장 나쁜 의미에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이런 직업 정치꾼들이 사라지려면, 여우의 비판적인 관찰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쓰시마 유코와 웃는 늑대 :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津島修治)의 딸로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소설 ‘웃는 늑대’는 쓰시마가 200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아사히(朝日)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실제로 늑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에서 늑대는 근대 일본이 잃어버린 고독하면서도 숭고한 존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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