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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27일(金)
“인간이 인간에게 지친 시대 ‘은둔기계’로 살아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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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둔기계’를 출간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관악구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 은둔기계│김홍중 지음│문학동네

“은둔기계는 과열된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과 ‘거리’를 두고 휴식과 안정을 도모하는 새로운 주체입니다.” 김홍중(49)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은둔기계’(문학동네)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존재 유형을 탐구한다. 패권과 관습으로부터의 탈주, 숨을 곳을 찾아 헤매는 도주를 감행하는 자가 바로 은둔기계다.

짧은 문장의 ‘단상’ 형식으로
지향해야 할 존재 유형 탐구

자본주의 욕망에 ‘브레이크’
‘덜 일하고 덜 쓰는 삶’ 추구

코로나로 새 주체 탄생 확신
‘거리두기’로 단절의 힘 배워


전작 ‘마음의 사회학’이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문화현상을 바라봤다면, ‘은둔기계’는 문학적 글쓰기로 세상을 사유한다. “권총을 격발하듯 쓴 문장”으로 이뤄진 단상집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듣고 싶어 서울대 연구실로 김 교수를 찾아갔다.

“20세기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꿈에 사로잡힌 시기였습니다. ‘인류세’ 개념은 지구라는 물적 조건의 유한성과 번영을 향한 욕망의 무한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왔습니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인류의 꿈이 생존을 위협하는 때가 온 것이죠.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고 조금은 느리고 천천히, 덜 일하고 덜 먹고 덜 쓰는 삶을 성찰해보고 싶었습니다.”

김 교수는 ‘은둔기계’의 또 다른 이름은 “자기 비움을 실천하는 초식동물”이라고 말한다. 초식동물은 전통 자본주의 이론이 내세우는 ‘활동적 남성’되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왜 ‘은둔자’가 아니라 ‘은둔기계’일까. 이 말엔 21세기적 주체와 자본주의 양식의 조화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은둔’이 세상의 중심에서 한발 떨어진 비생산의 개념이라면, ‘기계’는 쉼 없이 작동하는 생산의 도구죠. 이 모순되는 단어를 묶은 ‘은둔기계’는 멈춤 속에서 노동하고 저항하는 삶의 양태입니다. 자본주의를 무조건 배격하자는 순진한 주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죠.”

김 교수는 우리 모두가 ‘은둔기계’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시선은 소외된 타자와 약자에 머무른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은둔을 자청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정해놓은 관습대로 세속적 욕망을 좇았으나 실패한 자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에서 말하는 ‘페이션시(patiency·견뎌냄)’는 환자라는 뜻의 ‘페이션트(patient)’에서 유래했습니다. 병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처럼 견뎌낸다는 것이죠. 소란스럽게 세상을 바꾸는 ‘영웅’이 아니라 말없이 버티고 견디는 존재들의 위대함에 눈길이 갑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봄부터 ‘은둔기계’ 집필을 시작했는데, 문명사적 전환을 촉구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그에게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오늘 인류는 ‘바이러스’를 매개로 인간이 중심이라는 근대성의 시각을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로 이전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단절’의 능력으로 초연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셈이죠.”

‘단상’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 역시 은둔기계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유학 시절 폴 발레리, 모리스 블랑쇼의 ‘짧은 문장’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행간을 비움으로써 메시지를 드러내는 단상이 ‘은둔기계’의 주제의식과 부합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 속의 표현대로 “인간은 서로에 대해 지쳤고, 인간이 인간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다. 하지만 김 교수는 프란츠 카프카가 말년에 쓴 일기에서 희망의 돌파구를 찾는다. 카프카는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위중한 인간의 대죄(大罪)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조급함이고 다른 하나는 게으름이다”고 적었다. 김 교수는 조급함과 나태함이 ‘머지않아…’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조급해지고, 머지않아 오기 때문에 지금 깨어 있어야 함을 알지 못하면 나태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반대로도 얘기할 수 있다. 조급함과 게으름을 버리고, 느리지만 한 발씩 나아간다면 머지않아 끔찍한 오늘이 지나갈 것이라고.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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