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바로가기
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2.12.9 금요일
전광판
Hot Click
북리뷰
[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12월 04일(金)
맞춤법,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말자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한성우 지음│창비

전문가들, 우리말 규범에 과도한 집착… 국민들은 ‘혹시 틀리진 않았을까’ 마음 졸여
사이시옷·된소리·띄어쓰기 등 문장 이해하는 데 큰 의미 없는 규칙도 많아
‘안습’·‘세젤예’ 등 신조어 자연스럽게 사라져…“지나친 염려하지 말고, 빨간 펜 내려놓으라”


①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②쐬주 한 잔 찐하게 할까요? ③웬지 슬퍼 보여요. ④말할수없어서 그냥 왔어요. ⑤등교길 ⑥갑툭튀 …. 깐깐한 국어학자나 교사, 기자 등이 들으면 대뜸 “그게 아니고∼”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잡아 줄 만한 표현들이다. 순서대로 짚어 보면 각각 높임말, 된소리, 맞춤법, 띄어쓰기, 사이시옷, 조어법 오류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윽박지르지도, 너무 깐깐하게 굴지도 말라는 국어학자가 있다. 음운론과 방언학을 전공한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야기다. 한 교수는 최근 펴낸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창비)에서 우리말 전문가들이 보다 푼푼한 태도로 우리말을 대할 것을 주문했다. ‘푼푼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옹졸하지 아니하고 시원스러우며 너그럽다’ 등이다. 전문가들이 규범과 규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른바 ‘빨간 펜 선생님’처럼 ‘지적질’ 하려 들면 정작 우리말의 주인인 일반 국민은 자신의 말을 쓰면서도 늘상 자신감 없어 하고, 혹시 틀리지 않았는지 마음 졸이게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말의 주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말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뒤로 물러설 것을 … 저와 같은 국어 선생들,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 말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이들, 말을 자신의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에게 자중하라 권하는 책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은 일종의 ‘한국어 주권자 선언’인 셈이다.

20장으로 이뤄진 책은 한글, 맞춤법, 띄어쓰기, 표준어, 표준 발음, 로마자 표기, 외래어 표기 등 어문 규범 관련 주제를 두루 다룬다. 한국어의 주인인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늘 자신 없어 하는 것들이다. 저자는 순수한 것, 똑 부러지게 옳은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라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전에도 엄연히 한국어가 존재했다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맞춤법과 같은 문자 언어의 규범을 반드시 지켜야 할 영원불변의 법칙으로 여기는 태도부터 깨뜨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관점에 서면 꼬치꼬치 ‘맞네 틀리네’ 규칙을 따지는 건 큰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사이시옷 규칙과 관련해 ‘둘레길’로 쓰든 ‘둘렛길’로 쓰든 언중(言衆)은 지친 일상 속에 잠시 멈춘 채 산책을 즐길 뿐이다. ‘소주’든 ‘쐬주’든 피로와 스트레스를 달래고 사람들과 교감하는 수단이라는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서울시어머니합창단’을 두고 ‘서울시 어머니 합창단’이 아닌 ‘서울 시어머니 합창단’으로 이해하거나, ‘내동생고기’라는 간판을 보고 ‘내 동생 고기’라고 이해할 사람도 없다.

저자의 ‘푼푼함’ 강조는 더 나아간다. 깃발을 올린다는 의미로 쓰이는 ‘게양(揭揚)’이라는 단어가 일본식 한자어인 만큼 순화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에 대해 일본과의 불행했던 과거는 반드시 청산해야 하지만, 유독 일본에서 들어온 말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1970년대 등장한 은어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의 경우 여성의 외모를 비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같은 품사가 아닌 명사와 동사를 결합해 줄임말을 만든 첫 사례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 ‘갑툭튀(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옴)’ 등 종래의 관점에선 원칙도 근본도 없는 신조어들도 언중 사이에 의미가 통한다면 규범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등 한때 많이 쓰이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신조어들이 보여주듯, 언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말의 주인은 늘 옳다”는 저자의 접근법은 많은 사람에게 상식적인 목표로 여겨져 온 ‘국어 순화’에 대한 문제 제기다. 순수를 첫 번째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것저것 잡스러운 게 섞인 듯 보이는 우리말의 상황이 용납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애초에 ‘순수한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한국어는 방언의 집합체이지 규범집에 있는 표준어가 아니다. 각 지역, 온 세대의 말들이 뒤섞여 우리말을 이루는 것이지 백옥같이 흰 우리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말에서 흘러들어온 말도,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들도 우리말의 일부를 이룬다.”

그렇다고 저자가 ‘우리말 파괴’와 ‘한글 파괴’ 사례를 찾아내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모두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도 다 옳다”고 한다. 염려와 지적이 너무 지나치면 안 된다는 얘기일 뿐이다.

국어 전문가들을 향해 ‘빨간 펜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저자의 주장은 “주인은 자신의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결코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 현실 속에는 나쁜 주인도 더러 있고 이들이 흙탕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다수 공동의 주인은 이들을 잘 말리고 흐려진 물을 정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 역시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말을 아끼고 보듬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320쪽, 1만6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 문화부 SNS 플랫폼 관련 링크



e-mail 오남석 기자 / 디지털콘텐츠부 / 부장 오남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많이 본 기사 ]
▶ 남욱, ‘이재명 초과이익 환수 포기’ 법정 증언
▶ 울산서 사육하던 곰 3마리 탈출…농장 부부, 습격받아 사..
▶ 첼리스트 “김의겸 자격 없다 생각, 연락 온 적도 없어”…‘..
▶ 류삼영 “경찰국 설치 전 한국은 가장 안전한 나라였다”…..
▶ ‘타이타닉’ 주제곡 부른 셀린 디옹, 몸 뻣뻣 불치병 진단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아들 먼저 보내는 어머니 마음, 감..
‘타이타닉’ 주제곡 부른 셀린 디옹, 몸..
서울 최대어 둔촌주공 청약에 ‘찬바람..
“이란 군경, 고의로 여성 시위자 얼굴..
전세계 홀린 K-팝… 한국 오디션 보러..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7.15 | 회장 : 이병규 | 발행·편집인 : 김병직 | 발행연월일 : 1991.11.1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