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37년만에 복귀한 뒤 세 번째 앨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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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조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

‘올해 유행한 옷은 유행 타지 않는 옷’이란 기사제목에 눈에 간다. 유행이란 무엇인가. 노래채집가의 레이더엔 윤복희의 자작곡 ‘왜 돌아보오’가 잡힌다. ‘사랑한다 말을 마오/ 유행가 가산 줄 아오’. 국민가요 ‘여러분’의 원곡자인 이분이 유행가 가사를 폄하? 아니다. ‘이게 사랑인가’ 싶을 땐, 그 설렘을 상대에게 전할 땐 보다 진실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간곡함일 게다.

패션업계처럼 음악동네에도 유행 타지 않는 노래들이 존재한다. ‘물은 흘러도 여울은 여울대로 있다’는 속담을 아는가.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김소월의 시 ‘개여울’ 중).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이 이번에도 들어맞은 걸까. ‘개여울’로 데뷔(1972)한 정미조의 귀환앨범표지엔 37이란 숫자가 들어있다. 1979년 가요계를 떠나 2016년에 돌아왔으니 부재 기간이 무려 37년이었던 거다.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타이틀곡 ‘귀로’ 중). 파리에서 13년 유학했고 귀국 후엔 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화가로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부러움을 살 만한 여정이다.

오디션 ‘신인무대’에서 첫 회부터 주목받았다. 8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별칭이 대형가수였다. 이 말을 들으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키가 크고 성량이 좋아야 한다. 당시엔 ‘제2의 패티김’이란 얘기도 들었다. 7년간 정상에 머물다 무대를 떠난 후 37년 만의 복귀 후에도 앨범을 3개나 냈으니 참 재주도 많고 복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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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그는 “훌륭한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덕에 제3의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전문가의 안목이 올드팬의 의리와 연결될 때 불꽃은 다시 타오른다. ‘바람 불어 잠 못 자던 날/ 웬일인지 가슴 뛰던 날/ 아, 꽃은 피었지/ (중략) 사랑의 꽃 행복의 꽃 생명의 꽃 영혼의 꽃’(정미조 ‘불꽃’ 중).

2017년 ‘젊은 날의 영혼’을 발표한 지 3년 만에 낸 이번 앨범의 대표곡은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다. ‘무엇을 잃었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지금껏 움켜쥔 주먹 안에/ 부끄러운 욕심 하나/ 그 하나만 남았네 (중략) 내가 떠나는 그 날에/ 내가 두렵지 않도록/ 오직 자유로움만이 내 마지막 꿈이 되길’. 정미조의 인생이 바람을 닮았다고 느낀 순간 두 명의 예술가가 오버랩된다. 한 명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중해 동쪽 크레타섬의 묘비엔 이렇게 씌어 있다. ‘난 바라는 게 없다/ 난 두려운 것도 없다/ 난 자유다’. 다른 한 명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 그의 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구절이 유명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은 자연의 호흡이다. 음악동네엔 늘 바람이 분다. 이별할 때도, 기억할 때도, 재회할 때도.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임희숙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중) ‘바람이 추억이 되어 내게 오는 날/ 여전히 널 외로운 마음 곁에 두고 싶어’(나윤권 ‘바람이 좋은 날’ 중)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중). 또한 바람은 성찰이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이소라 ‘바람이 분다’ 중)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중략)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조용필 ‘바람의 노래’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독백인 ‘Tomorrow is another day’를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로 옮긴 건 센스 있는 번역이다. ‘저 바람같이 자유로운 날을 살다/ 어느 날 문득 바람같이 떠나’길 노래한 정미조가 바람을 화폭에 담는다면 어떤 그림이 될지 나는 몹시 궁금하다.

프로듀서·작가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