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中, 파오차이 수출 키우려 ‘김치 공정’… 막무가내 애국주의 갈수록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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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0-12-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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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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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發 김치 종주국 논란

절임 야채 불과한 파오차이로 “中 김치 세계 표준” 황당 주장… 환추스바오, 악의적 짜깁기로 오보
반복되는 中 억지에도 우리 정부 대응 미흡… 동북공정 등 왜곡 바로잡기 민간이 앞장


때아닌 ‘김치 종주국’ 분쟁이 한·중 간에 벌어졌다. 논란은 지난달 24일 중국 쓰촨(四川)성 서남부 메이산(眉山)시의 특산품인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 인증을 받으면서 촉발됐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조리법이 다른 별개 음식임에도 “김치 종주국 한국의 치욕”이라는 중국 매체의 보도가 공개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양국 간 김치 분쟁은 급기야 외교전으로까지 비하될 조짐이 일었다. 사태는 중국 매체의 ‘오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하마터면 일본의 ‘기무치(キムチ·김치의 일본식 표기)’에 이어 김치의 원조를 놓고 또 한 번 대전을 치를 뻔했다.

9일 관련 업계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실 김치에 대한 국제표준 논란은 이미 19년 전에 끝난 사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산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는 이미 지난 2001년 한국의 ‘김치(KIMCHI)’를 국제표준으로 인정한 것. ISO 인증과 같이 농수산 가공식품 분야 국제 유통의 기준이 되는 코텍스가 당시 일본과의 ‘원조’ 싸움에서 한국 손을 들어주면서 종주국 논란도 사실상 종식된 상태다. 또 한국의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중국의 파오차이 국제표준 인증 보도에 대해 “19년 전 해묵은 논쟁”이라면서 “파오차이에 관한 국제표준 제정과 한국 김치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이번 논란을 촉발한 중국 관영 매체 환추스바오(環球時報)의 주장을 ‘오보’라고 규정했다.

앞서 중국시장감독관리총국 기관지인 중국시장감관보는 지난달 26일 파오차이의 ISO 국제표준 인증 사실을 전하면서 향후 국제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다뤘다. 애초 이 보도엔 김치와 관련된 언급이 단 한마디도 없었다. ISO는 비정부기구로 누구나 표준 신청을 할 수 있고, 인증을 받으면 글로벌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산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신청서를 접수했다. 제정된 ISO 인증문서에도 역시 ‘이 표준은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다.

문제는 중국 관영 매체인 환추스바오가 해당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작성하면서 불거졌다. 이 매체는 ‘한국 김치의 굴욕’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뒤 “중국이 주도한 김치 국제표준이 인가받은 것은 중국의 김치 산업이 국제 김치 산업에 본보기가 되고, 중국 김치 산업 기술 기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면서 “종주국인 한국은 치욕을 당했고, 한국 매체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왜곡된 주장을 펼쳤다.

환추스바오 보도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가지 근거를 내세웠다. 첫 번째는 표준 심사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이번 파오차이 인증 심사 전문가는 중국을 비롯한 터키, 이란, 인도, 세르비아 등 5개 회원국으로 구성됐다. 다른 하나는 ‘2017년 한국의 김치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4728만 달러를 기록했다’는 국내 매체의 2018년 보도였다. 환추스바오는 해당 기사 일부를 발췌, 악의적으로 짜깁기했다. 무역적자로 인한 종주국 굴욕을 마치 파오차이가 표준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발생한 귀결로 보이게끔 해석했다. 염장 채소인 파오차이는 사실상 피클과 유사하지만, 관영 언론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졸지에 이 음식을 ‘원조 김치’로 둔갑시켰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뜸 국제표준에 집착하는 1차 원인을 ‘산업적 측면’에서 찾고 있다.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무렵 김치를 주목하게 된 중국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국 수출량을 점차 늘려왔다. 실제로 국내 식당 등이 값싼 식자재를 선호하면서 지난해 수입된 김치 30만t 중 중국산이 무려 99%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를 통해 쏠쏠한 수익을 올린 중국은 ISO 상임이사국 이점을 앞세워 표준 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치의 인기를 활용, 파오차이를 자국 핵심 수출상품으로 육성하려는 야심이 현지 언론의 확대 해석과 결합해 웃지 못할 촌극이 빚어진 셈이다.

중국의 ‘극단적 애국주의’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아시아 지역의 모든 역사와 문화적 산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연장선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 중국은 수차례 이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가깝게는 환추스바오가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발언’에 대한 중국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을 전하면서 ‘항미원조’ 논쟁의 불을 지폈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때도 ‘중국 단오를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원로 중국 외교관인 우젠민(吳建民) 전 프랑스 대사는 2010년 한 TV 강연에 출연해 중국인의 이 같은 행태를 “지난 100년간 약한 나라로 지내오며 형성된 피해의식”이라고 분석·비판하기도 했다.

김치 표준 분쟁이 확대 기미를 보이자, 미국의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중국은 “한국과 협력할 게 더 많다”며 진화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국 구글 번역기 등에서 영어로 ‘Kimchi’, 한글로 ‘김치’를 입력한 뒤 중국어로 번역하면 ‘파오차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 중국 포털백과사전 바이두(百度)엔 “김치는 중국의 유구한 문화유산이며, 김치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

반복되는 중국 측의 억지에 우리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왜곡된 주장에 대한 바로잡기는 대부분 민간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바이두 측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글로벌 청원 사이트 등을 통해 중국의 왜곡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정은 세계김치연구소 전략기획본부장은 “우리 문화에 김치가 녹아 있어야 종주국 지위도 확고히 유지할 수 있다”며 “국민이 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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