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단 8일만에 완성한 작품… ‘베리즈모 오페라’ 탄생시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에트로 마스카니

친구가 각색한 희곡으로 작업
불륜과 치정 가감 없이 담아내
단막 오페라 공모전 최우수상
‘원 히트 원더’ 작곡가로 유명

피에트로 마스카니는 가업인 제빵 일을 그만두고 가난한 피아노 교사 일을 하며 작곡에 전념하지만 좀처럼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889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출판업자인 손초뇨가 주최하는 1막짜리 단막 오페라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모전의 참가 자격은 오페라를 출품한 적이 없는 신인 작곡가여야 한다는 것. 선정된 3등까지의 작품에 부상으로 모든 제작 비용 후원과 함께 오페라 무대에 올리는 특전이 주어졌다. 마감까지는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스카니는 출세의 등용문이 될지도 모르는 이 공모전에 서둘러 출품하기로 한다.

오페라를 작곡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본이 돼 줄 원작소설을 찾아야만 했다. 이때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조반니 타르조니 토체티가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조반니 베르가의 사실주의 소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희곡으로 각색한 대본을 들고 찾아와 이 작품으로 오페라를 써 볼 것을 추천한다. 이 작품의 내용은 기존 오페라의 줄거리를 이루던 영웅들이나 귀족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골의 기사도’라는 뜻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고귀한 귀족들의 이야기 대신 서민들의 궁핍한 일상과 애환을 담고 있었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닌 불륜과 치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었다. 이에 매료된 마스카니는 서둘러 대본 작업을 끝내고 단 8일 만에 오페라 작품을 완성한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온 투리두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롤라가 돈 많은 마부(지금의 운송업자와도 같음) 알피오와 결혼한 사실에 절망한다. 투리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 산투차와 교제하게 되지만 끝내 옛 연인이자 알피오의 부인인 롤라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애인 산투차는 질투심과 분노에 못 이겨 마부 알피오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리게 되고 마침내 두 남자의 목숨을 건 결투가 펼쳐진다. 그리고 잠시 뒤 “투리두가 살해됐다”는 여인의 절규와 함께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순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서민의 사투리나 하층민의 거친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있는 사실 그대로 그려낸 이 작품으로 마스카니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고 동시에 ‘베리즈모(사실주의) 오페라’라는 새로운 오페라 사조를 탄생시킨다. 하루아침에 27세의 가난한 청년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유명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다. 마스카니는 이후에도 비슷한 종류의 오페라를 만들어냈지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만큼 인기 있는 작품을 쓰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클래식 음악사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원 히트 원더(한 작품에서만 큰 흥행을 이룬) 오페라 작곡가로 남게 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을 완성했을 당시 마스카니는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불만 정도가 아닌 크게 낙담한 수준이어서 출품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마스카니 몰래 출판사에 악보를 보내 출품 등록을 하고 당선까지 된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부활절 아침, 미사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곡. 영국의 음반사 EMI가 선정한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합창곡’에 선정될 만큼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투리두 역의 테너가 부르는 ‘어머니, 맛 좋은 포도주에 취해버렸어요’나 산투차 역의 소프라노가 부르는 ‘시어머니도 아시다시피’ 같은 아리아나 간주곡도 유명하지만, 이 합창곡은 오페라의 백미인 아리아 못지않은 존재감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 작품의 진짜 마니아들은 아리아 장면보다 오히려 이 합창 신을 숨죽이며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