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더 나은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에 여행은 불필요했던 것이거나, 지나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행을 부정적으로 여겼던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의 책에서 “집에 있는 것이 더 낫고, 여행은 자기 계발을 위해 불필요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집에 머문다.’ 이게 에머슨의 생각이었지요.

간디도 생전에 자주 현대 여행의 해로운 측면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빠른 이동수단이 세계를 위해 더 나은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빠른 속도의 현대 여행이 인간의 영적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철학자와 사상가, 문학가가 여행을 예찬했지요. 여행은 자주 삶에 비유됐습니다. 여행하는 태도는 삶의 태도에 비유됐고, 현명한 삶의 가치만큼, 좋은 여행의 가치가 대접받았지요.

몽테뉴는 “세상을 여행하는 건, 판단에 놀라운 명료함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여행의 의미가 목적지가 아닌 ‘길 위’에 있다고 믿었던 노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여행이 오래 멈춘 지금, 여행을 생각합니다.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여행을 욕망의 실현으로만 여기는 이들도 있고, 소중한 휴식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여행하는 이들도 있고, 수행처럼 여행을 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행이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같은 목적지로 떠난다 해도 느끼고 깨닫는 게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저마다의 여행은 다양합니다. 그 모든 여행이 일순 멈춘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건 자기의 욕망과 여행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TV 프로그램에 나와 나이프로 유화를 쓱쓱 그려대던 밥 로스를 기억하시는지요.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밝은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두운색이 사용돼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예요. 삶에 조금의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더라도 당신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 어두운 시간이, 종래에는 더 나은 여행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