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내색 없이 평생 가족 부양·자식 간호… 아버지 마음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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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택(1926∼2005)

제 아버지는 경북 고령군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안은 정미소를 운영했던 터라 아버지와 형제들은 유복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셨고, 삼촌들과 고모들 모두 고교 졸업장을 보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1949년 귀국하셨고 당시 19세의 어머니와 결혼했습니다. 두 분은 정미소에서 함께 일하며 가업을 키워갔습니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작고로 시련을 겪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제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 나이가 2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이 취업시장에 뛰어들 나이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모친과 5남매, 배우자와 1남 1녀 등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처럼 아버지는 삼촌과 고모들, 자녀 교육을 위해 가산의 대부분을 처분하고 상경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우리 가족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운수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화물 트럭으로 배달일을 시작하셨고, 이후엔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셨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는 시내·관광버스를 운전하며 생업을 이어갔고, 1990년대 들어서는 동대문구 장한평 일대에서 중고차 매매를 하며 어엿한 사장님으로 자리 잡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안에서 생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했던 아버지는 집안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혼자서 오롯이 가장의 무게를 이겨내는 동안 삼촌과 고모들은 출가했고, 아버지의 자식들은 5남매로 늘었습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과 과감한 선택 그리고 책임감 덕분에 저희 5남매는 우수한 교육기관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우리 가족은 또다시 시련을 맞습니다. 당시 특전부사관이었던 막냇동생이 군대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동생에게는 전신마비가 왔고, 국군병원에서는 5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였기에 아버지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와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동생은 무사히 재활을 마쳤고, 조금 있으면 환갑을 맞습니다. 이 모든 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장으로서 쉬지 않고 살아가신 덕분입니다.

아버지 삶에서 유일한 여행은 어머니 환갑을 맞아 두 분이 함께 떠나신 4박 5일간의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우리 가족을 위해 너무나 고생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선 마음 편히 쉬세요.

셋째 딸 미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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