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Deep Read>文, ‘책임’보다 ‘신념’ 중시…설득 없이 팬덤 편승한 ‘독선 리더십’

■ 文대통령의 리더십

신념의 실현만 중시하고 결과엔 무책임… 정치 지도자의 최고 덕목인 설득·공감능력 안 보여
‘위대한 소통’이 성공한 대통령 만들어… 지지자 결속보다 반대자 이끌어내는 ‘통합 리더십’ 발휘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이전 보수 정권의 두 대통령이 사법적 처벌을 받게 된 시발점은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권력의 밀실화가 발생하고 결국 정치 사유화가 만연하게 된다.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민의 심판을 목도한 문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열린 정부를 천명했다.

그러나 적폐청산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편 가르기가 일상화했고, 이념 갈등과 계층 갈등은 심화했다. 시민적 이성은 실종되고 ‘내 편은 항상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그르다’는 진영논리가 일상화하고 있다. 현재의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공감이나 설득능력은 없이 책임윤리보다는 신념윤리를 내세우며 결과적으로 다양성과 관용의 미덕을 사상한 독선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정치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

정치·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약화하는 상황에선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 교수는 대통령의 실질적 권력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백악관 참모나 관료뿐 아니라 의회를 설득하는 능력이 포함되지만, 무엇보다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 대통령의 권력을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노변정담(爐邊情談)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감성적 접근을 통해 여론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권력이 강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위대한 소통가가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뉴스타트가 전해주는 메시지다.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은 ‘공감’에서 출발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걱정과 고통을 같이 나눌 때 대통령의 위로나 미래에 대한 약속이 효과를 발휘한다. 문 대통령의 인식이 국민과 큰 괴리를 보여준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 해결에 자신이 있다”고 단언했고,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에도 주택임대차 거래에 혼란과 갈등을 초래한 급조된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쏟아냈지만, 주택시장은 이를 비웃듯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장수 국토부 장관 기록을 세우고 나서야 교체됐다. 무주택자와 주택소유자 모두 분노하는 상황인데 편향된 정보에 둘러싸인 대통령의 공감지수는 이를 데 없이 낮다.

◇팬덤정치에 편승한 대통령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특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내부적 저항에 부딪혔고 국회에서는 보수정당의 반대와 열린우리당의 소극적 태도로 4대 개혁입법 좌절을 경험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확실한 여당에 대한 장악력 확보,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양보나 타협보다는 목표 달성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문 대통령은 민감한 현안에서 정치적 갈등 중재자로서의 리더십을 외면해 왔다.

실제로 21대 국회가 야당은 배제된 채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통령은 뒤에 숨은 채 제동을 걸지 않는다. 중립적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무효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야당의 국회 내 합법적인 반대 권한인 필리버스터도 중단시켰다. 결국 국회에서 여야 협상은 사라지고 여당의 야당에 대한 통보만 남아 있게 됐다. 이런 여당의 독선적 행태는 대통령의 심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결과 중심’ 성향의 리더십이 국회를 민주당만의 국회로 만든 원인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의 강한 신념에 기초한 리더십은 열성적인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의 ‘팬덤 정치’와 합치된다. 당내 의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목표 달성의 걸림돌로 인식된다. 대통령이 임명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도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보니 윤 총장을 임명할 당시의 그에 대한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였다.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다양한 압박이 그의 자진 사퇴로 이어지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윤 총장의 강한 저항으로 갈등이 장기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에 대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멘트는 법무부 장관의 징계 제청에 대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재가하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지지자 결속과 반대자 설득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지도자 자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버는 ‘열정·책임의식·균형적 판단 능력’을 정치지도자의 우선적 덕목으로 꼽았다. 소명이 있는 직업정치인은 대의명분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열정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의 주장 중에 리더십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또 다른 개념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에 관한 것이다. 신념윤리에 집착한 정치인은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만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신념 실현의 결과가 처음 의도와 다를 때는 그 책임을 어리석은 세상 탓으로 돌린다. 따라서 대중의 어리석음을 뿌리 뽑아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반면에 책임윤리에 충실한 정치인은 이념과 가치실현도 중요하지만, 타협적이고 현실적 결과를 만들어 내고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베버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책임윤리를 망각하는 순간 정치인의 신념은 이미 ‘좌절된 신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책임윤리에 우선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다음 두 가지의 선택지를 가진다. 첫째는 지지자 집단을 더욱 결속해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대자 집단을 설득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대통령의 설득능력이란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것을 넘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설득의 리더십은 책임윤리와 공감이 수반될 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책임윤리는 없이 신념윤리만 내세우고, 반대자에 대한 설득 대신 지지자 결속을 통해 정권 유지를 꾀하는 독선적 리더십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과거의 유물이 돼버린 것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세줄 요약

정치리더십의 핵심 :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 능력임. 특히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 관건.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은 ‘공감 능력’에서 출발하며 ‘위대한 소통가’가 성공한 대통령이 됨. 편향된 정보에 둘러싸인 대통령의 공감지수는 무척 낮을 수밖에 없음.

팬덤정치에 편승한 대통령 : 문 정권 아래에서 적폐청산 작업이 장기화하고 편 가르기가 일상화하며 이념·계층 갈등이 심화함. 이런 대통령 리더십은 열성적인 친문 지지자들의 ‘팬덤 정치’와 합치되면서 정치·사회적 갈등에 대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함.

지지자 결속과 반대자 설득 : 결국 문 대통령은 설득능력은 없이 책임윤리 대신 신념윤리만 앞세우며 다양성과 관용의 미덕을 사상한 독선적 리더십에 빠짐. 지지자 결속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보다 반대자를 설득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

■ 용어 설명

‘리처드 뉴스타트’는 트루먼부터 레이건까지 40년 이상 미국 대통령들의 자문에 응한 정치학자.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설립하고 초대학장을 맡아 정년까지 강의했고, 1960년에 ‘대통령의 권력’을 출판.

‘막스 베버’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사상가 겸 정치철학자.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지도자의 덕목을 제시함. 또 다른 대표작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