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⑧ 말과 당나귀
우화 ‘말과 당나귀’서 가축 잘못 다룬 ‘서투른 착취자’… 같은 양 짐 지운 ‘당나귀·노새’ 주인은 영리한 착취
백성이 소망하는 왕의 지배 이념은 당나귀 주인처럼 ‘서투른 착취’ 아닌 더 나은 삶 향해 인도해야
한 사람이 당나귀와 말에 각각 짐을 지우고 길을 가는데, 당나귀가 힘겨워하며 말에게 짐을 조금만 덜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말은 매정하게 거절하고 당나귀는 숨을 거둔다. 그러자 주인은 말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죽은 당나귀 가죽까지 그 위에 얹는다. 말은 당나귀를 돕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탄식한다. “이게 무슨 고생이냐! 작은 짐을 더 지지 않으려다가 결국 당나귀 짐 전부와 당나귀 가죽까지 짊어지게 되다니.”
우화 ‘말과 당나귀’의 교훈은 남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당나귀의 짐을 나누어졌어야 한다. 남을 돕는 것은 결국은 나에게도 이로움이 된다. 이웃의 곤경을 방치하다가는 결국 나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다. 특히 이솝우화에서 일반적으로 인물이 마지막에 내뱉는 한탄의 말에 핵심적 교훈이 담겨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해석이 우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는 것임은 명백하다. 고대의 주석가들도 그렇게 보았다.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면 둘 다 목숨을 보존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이 우화에서 읽어낸 교훈이다.
그런데 우화의 작가와 주석가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이러한 교훈은 일면적이다. 불행한 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말에게 있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이야기의 초점을 당나귀와 말의 관계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간과되고 만다. 그 제3의 인물은 말과 당나귀의 주인이다. 주인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지만, 우화 작가는 그를 말과 당나귀가 벌이는 드라마의 배경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그리하여 주인의 행동이 마치 그 누구도 문제 삼거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말은 왜 마지막에 자기 잘못을 탓하기만 하고, 무리하게 일을 시키는 주인을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말이 당나귀의 곤경을 보고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무거운 짐을 더 떠맡고 싶지 않은 말의 심정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상황에 따라 짐을 적절히 나누는 것은 말과 당나귀 둘 사이의 문제로 남겨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일차적인 권한과 책임은 주인에게 있다. 주인이 제 역할을 했다면, 당나귀의 목숨이 오직 말의 선의에 좌우되는 상황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주인은 처음부터 말과 당나귀의 능력을 잘 평가해 짐을 배분했어야 하고, 도중에 당나귀와 말의 상태를 잘 살펴서 짐의 양을 조정해주었어야 한다. 특히나 이들이 주인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은 더더욱 세심하게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동물 우화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의인화하는 장르로 이해되지만 의인화라도 다 같은 의인화가 아니다. 여우처럼 나무꾼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이 우화의 말과 당나귀처럼 자기네끼리는 인간처럼 말을 하면서도 인간 앞에서는 말 못하는 짐승으로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주인은 자기 잘못으로 당나귀가 죽은 뒤에도 아무런 깨달음이 없다. 그는 그저 말에게 모든 짐을 떠맡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말도 많은 짐을 감당하지 못 하고 병이 들어 일을 못 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인은 당나귀를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과중하게 부려먹고 자신의 판단 미스를 말에게 온통 전가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러한 극도의 무신경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딱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과 주인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가축의 관계를 착취 관계라고 본다면, 우화의 주인은 가축을 현명하게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충분한 효용을 뽑아내지 못하는 서투른 착취자라고 할 수 있다. 짐승에게 최대의 고통을 주면서도 그 고통을 자기의 이득으로 만들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는 당나귀만 잃었고, 말도 허약해질 것이다.
‘말과 당나귀’의 주인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주인이 있다. ‘당나귀와 노새’라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주인이다. 당나귀와 노새는 같은 양의 짐을 지고 길을 간다. 당나귀는 노새를 보고 불평한다. 똑같이 짐을 지는데, 노새만 먹을 것을 두 배나 받는다고. 그런데 당나귀는 얼마 가지 않아 지치고 힘겨워한다. 주인은 당나귀 등에서 짐의 반을 덜어 노새에게 옮겨 싣는다. 당나귀는 그렇게 하고도 조금 더 길을 가다 다시 허덕이기 시작한다. 이제 주인은 당나귀 짐을 전부 노새에게 옮긴다. 노새가 당나귀에게 말한다. “이제 왜 내가 두 배 먹는지 알겠지?”
이 우화도 초점은 노새와 당나귀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불평하는 당나귀의 어리석음이 부각된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주인을 ‘말과 당나귀’의 주인과 비교해보면 우화 작가가 전하고자 한 교훈과 다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당나귀와 노새의 주인은 짐승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짐승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짐을 정교하게 배분한다. 게다가 먹이도 일한 정도에 맞게 나누어줌으로써 짐승 사이에 불만이 생기지 않게 한다. 주인의 현명함은 짐승들이 망가지는 사태를 방지하고, 이는 결국 주인 자신에게도 득이 된다. 그도 물론 짐승에게 생존에 필요한 먹이만을 주고 많은 일을 부려먹는다는 점에서 착취자다. 그러나 그는 영리한 착취자다. 짐승들도 그의 관리 아래서 힘겹지만 살아갈 수는 있다.
이 두 우화는 지배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지배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는 비대칭적인 교환 관계가 성립한다. 지배자는 피지배자에게서 이익을 취하는데 이익을 계속 보려면 피지배자의 생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헌납하는 것과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제공하는 것 사이에 교환 관계가 성립하는 셈이지만, 이 교환은 오직 지배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결코 등가 교환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쌍방의 자유로운 의지를 전제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등한 계약 당사자 사이의 교환과도 거리가 멀다. 짐승들은 잡혀 와서 일을 하는 것이고, 묶어놓은 줄이 없다면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지배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지배와 포악한 지배가 구별된다. 더 나아가서 극히 어리석게도 쌍방에게 모두 해를 입히는 지배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지배는 피지배자를 착취해 이득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시작된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은 오직 피지배자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으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솝우화에는 왕을 갈구하는 짐승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그들이 소망하는 왕은 당나귀 주인처럼 착취하는 지배자가 아니다. 왕의 지배 이념은 피지배자를 잘 보살피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인도하는 데 있다. 왕은 백성이 안정되고 화평하게 지낼 수 있도록 법 질서를 확립하고 그들을 외부의 적에게서 보호하며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왕은 무엇을 대가로 그런 일을 하는가? 왕은 백성에게서 아무런 대가도 받아낼 생각이 없이 그렇게 한다. 왕은 무상으로 베푸는 자이며, 백성이 잘사는 것 자체가 왕에게는 보상이 된다. 수메르인들은 왕이 없는 사람들은 목자가 없는 양떼와 같다고 했다. 목자는 양들에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며 오직 양들을 늑대에게서 지켜주고 그들을 잘 이끌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목초지에 이르게 해줄 뿐이다. 물론 진실을 말하면 양도 가축으로서 인간의 착취의 굴레에 있고, 양들의 주인에게 고용된 목자도 간접적으로 그 착취의 성과로 먹고사는 것이긴 하다. 다만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데 특화된 임무를 맡은 사람이기에 당나귀를 부려먹는 주인과 달리 왕의 비유적 형상이 된 것이다.
이솝우화도 그런 왕의 이상을 꿈꾼다. ‘사자의 왕권’에서 왕위에 오른 사자는 성내지 않고 잔인하지도 않으며 난폭하지도 않고 온순하고 정의롭다. 사자가 통치하는 동안 동물들이 모두 평화롭게 화해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는데 토끼가 발언대에 올라 말한다. “나처럼 허약한 동물이 난폭한 동물에게 두렵게 보이는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가장 강한 동물인 사자가 모두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의 폭력을 억제한다. 사자는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않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폭력적인 뺏고 빼앗김의 고리를 끊는다. 진정한 왕의 지배는 모두가 싸움을 그치고 화해하며 서로 존중받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왕권을 오직 피지배자를 위해 쓰는 왕, 무상으로 베푸는 왕이라는 이념은 유토피아적이다. 힘을 쓰지 않는 온순한 사자는 무엇으로 먹고산단 말인가? 이솝우화에서 이상적인 왕의 이야기는 예외적이고, 반대로 왕의 이념을 배반하는 왕, 백성을 등쳐먹기 위해 왕이 된 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왕들은 백성의 소망이 만들어낸 권력을 도리어 백성을 갈취하는 데 써먹는다. 그들은 자애로운 사자나 목자보다는 당나귀를 혹사시키는 주인에 더 가깝지만, 왕의 허울을 쓰고 그렇게 한다는 면에서 대놓고 착취하는 노새 주인보다 더 사악하다. 예를 들면 ‘늑대와 당나귀’라는 우화의 늑대가 그러하다. 한 늑대가 늑대 무리의 대장이 되어 모두에게 법을 정해주는데, 그 법에 따르면 각자가 사냥한 것은 무엇이든 내놓고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만 먹을거리가 떨어지더라도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 질서 아래서는 강한 늑대라고 해서 혼자 살아남고 약한 늑대는 그냥 굶어 죽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가던 당나귀가 이를 보고 한마디 한다. “늑대가 그런 고매한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걸. 하지만 네가 어제 집에다 쟁여둔 사냥감은 어쩌고? 그것도 내놓고 함께 나눠야지.” 늑대는 당황하며 법을 슬그머니 취소한다.
늑대의 법은 자기를 예외로 하는 법이었다. 늑대는 사냥의 전리품을 뒤로 챙기면서 다른 늑대들에게는 사냥한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왕권으로 법을 정하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권력으로 다른 늑대들이 잡은 것 일부를 갈취하려 한 셈이다. 그런 지도자보다는 현명한 노새 주인이 차라리 더 나아 보인다.
왕권을 백성에 대한 봉사에 온전히 사용하고자 하는 왕, 교환하는 계산적 이성을 따르기보다 무상의 헌신이라는 왕의 이념에 충실한 왕, 여기에 더하여 백성을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 잘 판단하는 현명한 목자와 같은 왕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왕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백성도 실망이 거듭되면 자신들의 기대가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런 배반의 경험은 자칫 냉소와 체념으로 흐르기 쉽지만, 이전보다는 좀더 냉정한 탐색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말과 당나귀 : 이솝 우화를 포함해 많은 구전 이야기에서 당나귀는 멍청이의 상징으로 쓰이지만, 실제로 당나귀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체격이 좋고 체력도 강해 열악한 조건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와 달리 대중적 이미지에서 손해를 보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당나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경문대왕조(景文大王條)에 나온다. 왕의 귀가 갑자기 자라 당나귀 귀처럼 됐는데,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복두장이 죽기 직전에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그 뒤 바람만 불면 이 소리가 대밭에서 들렸다고 한다. 이 기록은 삼국시대에 이미 당나귀가 사육됐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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