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코로나 속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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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야간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1964년 12월 25일. 당시 신문 사회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한 사건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남녀 3000여 명이 서울 남산 팔각정 주변에서 밤새 데이트를 즐기다 새벽 4시 경찰이 출동해 강제 해산한 것이다. 시내라고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날 심야에 명동 등 서울 도심으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무려 40여만 명. 젊은이들은 가면을 쓰고 나팔을 불어 대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하루 ‘통금’이 해제된 성탄절 전야는 욕구를 분출하는 날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송년회 문화는 6·25전쟁이 끝난 이후에 본격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망년회 고속족’도 등장했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 교외나 온천 등으로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후 젊은이들의 명소가 다방에서 커피숍과 디스코텍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젊은층은 나이트클럽, 중장년층은 단란주점, 노년층은 콜라텍이 대세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노래방은 인기코스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새로운 풍경을 맞고 있다. 오프라인 송년회는 대부분 취소되고, 대신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한 ‘온라인 송년회’가 트렌드가 됐다. 떨어져 사는 가족이나 친지들 사이엔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송년 인사를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오늘부터 수도권에서 5명 이상 사적 모임이 전면 금지됐다. 연일 1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내려진 특단의 조치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 사라진 대면 송년회를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반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예 술을 못하거나 직장 상사들과의 내키지 않는 자리를 꺼려 온 이들이다. 남편이 술 안 마시고 일찍 퇴근하는 상황을 반기는 주부도 많다.

한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있었다. 올해는 반대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정부의 방역 실패와 백신 무대책에도 대다수 국민은 묵묵히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 모임이 늘면서 강원도와 제주도에는 빈방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올해만큼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자제하는 것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지혜다. 새해에는 코로나19가 진정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