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우주 탐험>‘별세포 고장’ 수리하면… 치매·파킨슨 속도 늦출 수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⑥ ‘뇌 질환’ 정복 <下>

별세포가 과산화수소 과다 생성
뇌 염증 반응 일으켜 치매 유발
기초과학硏 이창준 박사팀 발견

뉴런 통한 인간 인지기능 연구
100년의 전통이 일거에 뒤집혀

반응성 별세포 초기 진단 통해
중증치매 진행 빠른 차단 매진

뇌과학의 또 다른 이름은 신경과학이다. 뉴런, 즉 신경세포가 이성·감정 등 고차원 정신작용의 주역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에는 신경세포보다 ‘글리아(glia)’로 불리는 교(膠)세포가 훨씬 더 많다. 전체 뇌세포의 70~90%를 차지하는 비(非)신경세포, 즉 교세포는 별아교세포·미세아교세포·희소돌기아교세포·표피세포 등 몇 종류로 나뉜다. 이들은 신경·혈뇌장벽(BBB)의 건축재, 뉴런에 영양과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하는 운송로, 내부 생리활성 조절용 이온(ion) 통로, 독성물질을 치우거나 재활용하는 청소부 정도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반면, 전기·화학신호를 주고받으며 생명의 정보를 온몸 구석구석에 유통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뉴런의 독점 권한이라 생각했다. 기억·학습 등 인간 인지(認知)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모두 뉴런에만 매달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병 같은 인지장애 질환을 정복하려던 제약사들도 지난 30여 년 동안 뉴런의 내·외부 기형 단백질 덩어리 ‘타우 탱글(τ tangle)’과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A-β plaque)’를 없애는 데 주력해왔다.

이 같은 뉴런 중심의 뇌과학 100년 연구 전통을 일거에 뒤집어 버린 연구집단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연구단에서 교세포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이창준 박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2010년 별(아교)세포에서도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가 나온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실으며 일약 스타가 됐다. 이 박사는 “별세포(astrocyte)가 가바를 분비한다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뉴런만 가바를 생산한다는 뇌과학의 통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것이다. 2년 후에는 별세포에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까지 분비된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별세포는 세포 몸통에서 별처럼 뾰족뾰족한 돌기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성상(星狀)세포로도 불린다. 크기는 뉴런보다 작지만 교세포 중 가장 숫자가 많다. 글루타메이트와 가바는 뇌 등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화학적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이다. 스스로 온오프(on-off) 스위치 화학물질을 생산한다면 다른 세포를 조절·통제하는 명령의 주체로 봐도 무방하다. 결국 별세포는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었다.

이 박사 연구팀은 2014년 초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의 뇌에서 흔히 발견되는 반응성 별세포가 가바를 과잉 분비해 기억장애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표했다. 반응성 별세포란 아밀로이드베타 같은 뇌의 독성물질과 접촉하며 부피가 커지고 별 모양 가지 수도 늘어난 별세포를 말한다. 뉴런 사멸뿐 아니라 별세포의 고장도 인지 기능 저하에 주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밝혀낸 첫 사례다.

뉴런을 죽이는 독성물질 제거에만 매달렸던 기존 치매 치료에 새 장이 열린 것이다. 올 11월에는 중증 반응성 별세포에서 너무 많이 생성된 과산화수소가 뉴런을 죽이며 치매를 진행시킨다는 발견도 학계에 보고했다. 가바에 이어 제2의 치매 유발 후보가 확인된 것이다. 과산화수소는 활성산소종(ROS·Reactive Oxygen Species)의 하나로, 일상생활에서는 소독약으로도 쓰이지만 뇌 안에서는 염증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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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뉴로사이언스 논문의 제1저자인 전희정 IBS 선임연구원은 “독성물질과 접촉한 반응성 별세포가 경증이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중증이면 비가역적으로 뉴런을 사멸시키며 치매로 진행된다”며 “과산화수소 또는 그 전 단계인 마오비(MAO-B) 효소를 줄일 수 있는 표적 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또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야 알게 되는 점이 치매 치료의 난점”이라며 “치매 초기부터 출현하는 반응성 별세포를 잘 진단하는 기술, 중증으로 변해가는 별세포를 경증으로 되돌리는 기술도 찾고 싶다”고 후속 연구계획을 밝혔다. 반응성 별세포는 치매뿐 아니라, 파킨슨병·뇌종양 등 다양한 뇌 질환에서 나타나고 있어 향후 관련 연구의 적용 폭은 확대될 전망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