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딱한 ‘기립 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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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6·25전쟁이 발발한 후 부산으로 피란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재선을 목적으로 개헌을 시도한다. 이 대통령은 직선제가 국회에서 좌절되자 당시 장택상 총리가 마련한 직선제 정부 안과 내각책임제 국회 안을 혼합한 발췌개헌안을 만들었고, 7월 4일 경찰과 군대가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통과시켰다. 서북청년단 등 악명 높은 우익 청년단체들이 동원돼 의원들을 감시했고, 장택상 총리는 화장실을 가다가 이들에게 뺨을 맞는 공포 분위기가 연출됐다. 166명의 의원이 출석한 가운데 표결이 이뤄졌는데, 김익노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만천하에 우리의 의사를 알리기 위해 기립 투표를 합시다”라고 했고 결국 163명이 기립 찬성했다. 이런 협박 속에서도 그나마 3명의 의원은 기권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무기명 비밀투표가 일반화했지만, 국회에서는 인사 문제를 제외하고 법안투표는 공개투표 방식이 일반적이다. 공개투표에는 구술투표·거수투표·기립투표·기명투표 등이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는 주로 전자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자투표는 1994년 6월 전자투표가 기명투표의 한 방법으로 국회법에 명기됐고, 1997년 5월에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본회의장에 전자투표장치가 설치됐다. 그러나 의원들이 찬·반 투표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사용하지 않다가 1999년 3월 약사법 개정안이 처음으로 전자투표에 부쳐졌다. 2000년 2월 선거법 개정안 표결 때는 전자투표로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표결 방법을 정하기 위한 표결’이 이뤄지기도 했다.

상임위에서는 주로 거수투표로 의결되는데 여당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21대 국회에서는 기립투표가 자주 이뤄지고 있다. 이탈표를 줄이고 찬성 숫자를 빠르게 셀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28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토교통위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때도 여당은 ‘기립표결’로 통과시켰다. 공수처법 개정안 역시 7분 만에 기립투표로 통과시켰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에서도 보기 어려운 기립투표”라고 비판했다. 여당 의원들이 기립해 있는 모습을 보면 ‘찬성 로봇’을 보는 느낌이다. 토론과 숙의, 타협이 사라진 국회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