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청력 잃은 ‘악성’, 절망 넘은 ‘환희의 송가’를 남기다

베토벤 ‘합창’

시력 악화·통증 시달리던 53세
초인적 의지·예술혼 담아 작곡
최고 걸작 마지막 교향곡 완성
소리 대신 활 끝 보며 초연 지휘

12월이 되면 클래식 공연장마다 앞다퉈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있다. 우선 크리스마스 시즌의 단골 레퍼토리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로, 늘 매진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다. 성탄 시즌의 공연으로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도 꼽을 수 있다.

성탄 시즌이 지나고 연말이 오면, 전국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음악의 성인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공연이 열린다. 왜 연말엔 꼭 합창 교향곡이어야 하나. 작품의 내용이 연말과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 독자들도 있으리라. 자, 여러분이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의 지휘자라고 가정해보자. 한 해 중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송년 음악회, 제야 음악회의 레퍼토리를 무엇으로 정하겠는가?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그러면서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하지 않을까. 그러한 작품이 바로 ‘합창 교향곡’이고 매해 송년 의례처럼 이 작품이 연주되는 이유다.

베토벤의 나이 27세, 어느 날부터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건만 그의 주치의는 베토벤에게 청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베토벤은 빈을 떠나 교외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떠났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이 시기 베토벤은 유서를 남길 정도로 극한의 절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산책과 독서를 통해 다시금 강한 의지를 되찾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로 한다. 불굴의 의지는 오히려 그 이전보다 강한 열정과 예술혼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스승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아가는 시금석이 된다.

그의 나이 53세, 이제 시력까지 나빠져 극심한 통증과 함께 이중으로 안경을 써야만 했고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의 귀로 작곡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걸작인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한다.

그리고 마침내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초연이 열렸다. 포디엄(지휘자가 오르는 단)에는 베토벤과 또 다른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가 함께 올랐다.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기에 베토벤의 지휘를 읽어 실질적으로 대신 지휘를 해줄 지휘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소리 대신 활 끝을 주시하며 지휘를 했고 그의 초인적인 의지와 예술혼에 관객은 열광했다. 마침내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총주와 함께 그 유명한 합창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고 대단원의 막이 내리자 음악회장은 박수와 환호, 환희로 가득 찼다. 열광하는 객석을 향해 베토벤이 몸을 돌리자 함성은 더욱 커졌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베토벤을 위해 청중은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며 갈채를 보냈다. 이 역사적인 교향곡의 발표는 전작인 8번 교향곡 이후 11년 만이었는데, 합창 교향곡을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무려 30년 만의 일이었다.

오늘의 추천곡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의 전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자 서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1793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읽고 작곡을 결심, 약 30년에 걸쳐 1824년에 완성한 곡이다. 베토벤 자신이 별도로 ‘합창’이라는 표제를 붙이지는 않았으나 합창이 포함된 독특한 구성 때문에 ‘합창 교향곡’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4악장의 유명한 주제선율은 유럽연합(EU)의 공식 찬가로 사용되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