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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에이징 코리아, 지식사회에서 지혜사회로 게재 일자 : 2021년 01월 04일(月)
현장지식 최고조 때 은퇴는 사회손실… ‘위즈덤 크리에이션’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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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가장 빨리 늙어가는 한국사회

韓, 2025년 65세이상 20%… 산업공동화로 경제존립 위기
정년 조정 등 논란 대신‘인생 이모작’서 돌파구 찾아야
日 일터서 수십년 쌓은 노하우 퇴임뒤 버려지자
‘모노즈쿠리 스쿨’ 열고 재교육… 현장 관리 등 재활용
“젊은이와 공존하며 은퇴자 활용위한 창의적 대안 마련을”


윤순봉 전 삼성서울병원 사장은 10년 전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 재직 당시의 한 장인의 ‘망치질’ 소리를 잊지 못한다. 고졸로 회사에 입사해 20~30년 현장에서 일한 이 직원은 망치 하나로 파이프 여기저기를 두들겨 부식되거나 막힌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수십 년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은 ‘소리의 지혜’로 회사 시스템으로 걸러낼 수 없는 틈을 상시 보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 전 사장은 4일 “석유화학 회사의 파이프가 부식돼 막히면, 1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본다”며 “이 직원은 단순히 지식만 있는 게 아니라, 몇 십 년간 쌓은 경험을 자산으로 회사의 어마어마한 손실을 막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수십 년간 현장에서 지혜를 축적한 인력들이 은퇴 후 일할 곳을 못 찾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기업에서 퇴직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못 찾아 은퇴한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라떼는 말이야~’라며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다 ‘꼰대’ 소리를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전히 ‘젊은 60대’ 은퇴자의 지혜를 수용할 공간 자체가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이다. 윤 전 사장은 “자기 일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혜가 있다고 확신한다”며 “한 사람의 직업인이 가진 지혜가 최고조에 달하는 나이에 모두 은퇴를 하는 것은 큰 사회적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왜 ‘위즈덤 크리에이션’인가 =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는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위즈덤 크리에이션’(Wisdom Creation)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베테랑의 ‘암묵지’(暗默知·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체화된 지식)를 ‘형식지’(形式知·객관화된 지식)로 전환, 사회 자산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에는 ‘지식’(knowledge) 사회를 넘어 ‘지혜’(wisdom)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표준화와 전문화의 시대인 20세기에는 지식이 우선시됐다. 텍스트를 외우고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능력이 선호됐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구글링’ 한 번이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닌, 내재화된 지식이자 수십 년간 쌓인 지혜가 필요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고령 인구가 체화한 지혜가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이자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 박사도 지식정보사회 다음은 지혜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20세기에 기업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생산설비였다면, 21세기에는 지혜를 갖춘 지식 근로자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일찍이 고령 사회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은퇴자의 지혜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도쿄(東京)대는 지난 2005년부터 퇴직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 베이비부머 세대 숙련 기술자를 활용하기 위해 제조현장의 작업 개선을 지도하는 ‘모노즈쿠리(モノズクリ) 인스트럭터(Instructor)’를 양성하는 ‘모노즈쿠리 스쿨’을 운영 중이다. 모노즈쿠리는 고도의 기능과 노하우를 가진 장인이 혼을 담아 제품을 만든다는 뜻으로, ‘암묵지’를 ‘형식지’로 전환하기 위한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이 덕분에 일본 제조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1980~1990년대 전성기보다 크게 떨어졌지만,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으로 대표되는 기초 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노즈쿠리 스쿨을 통해 현장 지식을 재교육해 베테랑 엔지니어의 지식을 개방하고, 정년퇴직 후에는 다른 기업이나 업종에서 현장 관리 등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며 “퇴직한 베테랑들에 의한 지도 방식이 평생 학습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화 개념 재정의 필요 =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령화’라는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젊어서 고생하다 65세가 되기만 하면, 고령의 범주에 들어가 벌어둔 재산을 까먹으며 사는 게 당연하다는 우리 사회 인식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에는 65세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 복지 혜택을 받으며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기가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25년 20.3%에 이르러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2060년엔 고령 인구 비율이 43.9%까지 증가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하는 고령 인구를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2036년(51.0명) 50명을 넘어서고, 2060년에는 91.4명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즉, 모두가 65세까지만 일하면, 복지 비용 증가로 인한 국민 세금 부담이 커지고 경제인구 자체가 부족해진다. 이는 ‘산업 공동화 현상’을 발생시켜 경제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 수명 자체도 크게 늘어난다. 글로벌 기업 구글 산하의 ‘칼리코’는 생명 연장과 동시에 노화 방지, 질병 퇴치로 인간의 수명을 100세를 넘어 500세까지 연장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꼭 500세까지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60세 넘어 10~20년 더 사는 게 아니라, 60~70년 더 살아야 하는 사회가 온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은퇴라는 용어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저서에서 “공연히 정년 조정 등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라는 단어를 아예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과거 은퇴는 ‘자식들 다 길렀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의미였다. 요즘 60대는 건강관리만 잘하면 웬만한 젊은이 못잖게 근력이 좋고, 편히 쉬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50세 전후로 제1인생(번식기)을 마감하고 제2인생(번식후기)을 새로 시작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두 번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가장 가치 있으면서도 활용되지 않는 고령 인구의 지혜를 활용하는 공존의 창의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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