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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 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01월 13일(水)
“혐오·배제시선 사라져야 조현병 환자 자신의 病 마주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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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인의 재활을 돕기 위해 충남 홍성에 협동조합 ‘행복농장’을 설립한 정신건강의학 의사 안병은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13일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홍성=신창섭 기자
■ 정신장애인 일터 만든 안병은 행복농장 이사장

韓은 편견으로 점철된 자폐사회
일부 난폭한 환자에 범죄 낙인
‘조현병 포비아’신조어까지 등장

정신장애인 건강하게 노출시켜야
탈수용·탈시설이 최상의 치료법

행복농장서 파종~수확하며 자립
동료·지역사회 관계맺기도 배워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목표


‘조현병 환자보다도 더 미친듯한 사람들…. ’ 13일 ‘정인이’ 양모가 재판정에 섰다. 말조차 못하는 아이는 온몸에 멍이 들었고, 췌장까지 절단됐다. 해맑은 아이를 숨지게 만든 학대에 우리 사회는 공분했다. ‘정인이 사건’은 아기를 입양해 놓고 철저하게 파괴한 어른들이 과연 정상인지 의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 주변 곳곳에는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들이 있다. 정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 모습은 정상이 아닌 마음의 환자들이다. 최근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한길사)’을 출간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충남대 의대 출신 안병은(50) 행복농장 이사장을 만나 조현병 환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치유하는 삶의 현장 얘기를 들어봤다. 또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현주소도 진단해봤다.

2014년 7월, 인가(人家)가 드문드문 보이는 어느 깊숙한 시골 마을에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농장을 차렸다. 재배지라고는 달랑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두 동. 협동조합 ‘행복농장’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재배 품목이라고는 부추 한 종류뿐이었고, 농업을 전문적으로 배운 직원도 없었다. 6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행복농장의 비닐하우스는 4개 동으로 늘었다. 한 해 매출은 5000만∼6000만 원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이제는 농산물 재배뿐 아니라 가공품 생산도 앞둔 어엿한 농장으로 성장했다. 재배 품목 또한 튤립·수선화 등 화훼류부터 정신건강을 돕는 허브차, 쌈 채소까지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행복농장을 세운 안병은(50) 이사장은 “충남정신건강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처음 시작했지만 이제 행복농장은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직업 재활기관이자 삶의 터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의 행복농장에서 안 이사장을 만났다. 행복농장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2015년부터 약 5년간 정신장애인들에게 일터이자 자립을 위한 재활훈련의 장(場)이 돼왔다. 농장에서 고용한 정신장애인들은 파종부터 시작해 제초작업, 수확, 식사 준비까지 농업활동의 처음과 끝을 모두 수행한다. 하루 4시간씩 주 5일 동안 근무하며 휴일도 보장받는다. 행복농장이 단순히 정신장애인들에게 일터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장애인들은 직장, 농사일, 직장 동료,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기로 자신의 병을 치유받는다. 정신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힘써온 안 이사장이 농촌에서 직업 재활 사업을 시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 이사장은 “농촌에는 돌봄 문화가 있지 않냐”며 “이곳의 버려진 주거시설에 정신장애인들이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며 같이 농사짓고, 저녁에는 쉬면서 삶이 안정화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도시보다 더 쉽게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에게 농업은 생소한 분야였다. 2013년 충남정신건강센터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안 이사장은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농장을 열자는 직업재활팀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농업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고된 일일 뿐 아니라 수익성이 떨어지고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덜컥 보조금을 받게 됐다. 얼떨결에 농장이 문을 열게 됐을 때 안 이사장은 ‘느리게 가더라도 마을과 함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행복농장의 이사장이지만, 농장 일 자체에서 한발 물러나 농장 운영과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상담 등 자문을 주로 맡고 있다. 전문기관 주도가 아닌 마을 어르신들과 정신장애인들이 함께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안 이사장은 “마음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담도 하고, 지역의 어느 학교에서 오면 상담교사 역할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들이 농촌에 스며드는 과정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 장애인 중에서도 정신장애인의 직업 재활이 가장 어렵다고 여겨진다. 안 이사장은 “정신장애인들은 약속된 시간에 출퇴근하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무래도 어려울 때가 있다”며 “증상이 안 좋아지면 약물을 처방하고 정 안 좋을 때는 당분간 쉬었다가 오도록 기다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농촌 사람들에게도 정신장애인들은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집중했다. 안 이사장은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농촌에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며 “꼭 농장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정신장애인들을 모아서 함께 음식도 만들고 놀러도 다니면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배려받으며 살아가도록 하자는 게 행복농장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복지관 하나 없는 이곳 마을에서 행복농장은 복지시설인 동시에 서로의 아픔을 돌보는 치료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조현병 환자들로 인해 발생한 각종 강력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안 이사장의 표정은 사뭇 심각해졌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151%로, 전체 인구 범죄율인 1.43%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력 범죄만 따졌을 때 정신질환자 비율은 0.055%지만, 전체 비율인 0.294%보다 6분의 1가량으로 낮다. 통계적으로도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은 훨씬 낮은 셈이다. 그러나 ‘조현병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듯 조현병 환자와 같은 정신장애인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줄지 않고 있다.

안 이사장은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를 ‘자폐 사회’라고 진단했다. 사회적 상호작용 및 소통이 어려운 자폐증처럼 각자의 편견에 갇혀 알려는 노력도 없이 조현병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안 이사장은 “조현병 환자 중에는 타인을 공격하기보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혐오와 배제의 문화가 실제 조현병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받아들이기보다 외면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약물이나 상담 등 치료로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조현병을 둘러싼 배제적 시선이 결국 일부 난폭한 조현병 환자의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 이사장은 “마음이 아프면 아파도 된다고 말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장이 정신질환자들의 탈수용화·탈시설화를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결국 정신질환자들을 향한 혐오와 배제의 시선이 사라져야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마주하고 치료받을 용기를 낼 수 있다. 안 이사장은 “우리가 조현병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병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질병의 내용 자체도 바뀔 수 있다”며 “과거에는 중증장애인들이나 신체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이들을 자주 보게 되면서 우리의 일부처럼 생각하게 되지 않았냐”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들이 우리 눈에 자주 띄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면 이들을 둘러싼 혐오의 시선도 줄어들 수 있다. 안 이사장은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정신병원의 철문보다 더 견고한 일반인들의 관념체계를 부수는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실제로 그는 현장으로 강연을 나갈 때마다 조현병 당사자들과 동행하며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건강하게’ 노출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안 이사장은 정신질환자들을 관리하는 국가 의료체계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정신질환자들을 관리하는 제도는 ‘치료’보다 ‘격리’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신장애인들을 잘 치료하기 위해 드는 비용보다 이들을 가둬놓고 통제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안 이사장은 “정신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완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시설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주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며 “의료급여를 주고 환자들을 단순히 격리 입원시킬 게 아니라 24시간 의사가 머무는 주거시설, 방문만 하는 주거시설 등을 단계별로 마련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적극적 치료와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지기 위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1순위는 결국 정신보건예산 확충이다. 정신장애인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들에게 비강제적·비강압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의사 1명당 입원환자 60명을 돌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 이사장은 “치료행위를 하는 의사가 개인 면담을 통해 환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만나야 할 환자는 줄지어 있고 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 환자를 기계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홍성 = 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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