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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21년 01월 15일(金)
다목적홀 말고 전용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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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前 예일대 음대 교수

연습·연주 전용 콘서트홀
오케스트라 존립의 주춧돌

지자체들마다 다목적홀 건립
음향투자 소홀한 모방의 행정

기업들 기념비적인 홀 건설해
창업주 정신,후세에 물려줬으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무대로 진입하는 웅장한 문에는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익숙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 연주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환하게 오르면 이들은 힘껏 문을 열어젖히며 “마에스트로, 행운을 빕니다”를 외치며 지휘자의 입장을 안내한다.

나는 청중의 박수를 받으며 50개는 넘을 듯한 계단을 신속히 내려간다.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중앙의 지휘단까지 오르는 데 가장 긴 시간이 필요한 연주장이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오늘 밤의 스타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건축물이다. 이곳의 연주들은 내 음악 여정의 잊지 못할 밝은 촛불 중 하나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브루노 발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레너드 번스타인 등 대가들이 머물렀던 대기실은 그들의 숨결과 영감을 느끼는 감동으로 가득하다. 흠모하는 음악의 선열들이 즐겨 찾던 뉴욕의 카네기홀은 완벽한 음향을 자랑한다. 무대에서 속삭이듯 얘기해도 홀 전체에 고르게 전달되는 이런 음향에서는 최고의 연주력을 발휘할 수 있다. 카네기홀을 추억하는 설렘의 파고는 아주 높다.

미국 LA필하모닉의 연주장인 디즈니홀의 세심한 디자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연주자 대기실과 잘 정리된 파란 잔디와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이 연결돼 있었다. 대부분의 대기실이 지하 또는 외부 공기를 접할 수 없는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여러 상념이 스쳐 갔다. 연주자들에게 무대에 나가기까지는 긴장된 대기시간이다. 잠시라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섬세한 기회를 갖는 것은 상상 못할 특권이다. 연주를 위해 잠시 머물렀지만, 그곳을 떠나는 게 아쉬웠다.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는 대륙 간 이동을 거치며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19세기까지 음악 시장의 본류는 유럽이었다가, 2차 대전 후에는 중심추가 미국으로 옮겨 갔다. 수많은 예술가가 나치와 최악의 경제 상황인 유럽을 떠나 폭발적으로 미 대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21세기 초, 아시아 대륙에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엄청난 국가적 지원을 원동력으로 세계 음악계를 향한 중국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문화 경쟁력이 국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임을 인지하고 후발 주자로서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한 결과다.

2005년 중국 광저우(廣州) 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때, 연습실 안의 화장실 악취가 진동해 과연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최첨단 시설을 갖춘 연주장,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구성원과 연주력이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돼 있었다. 광저우의 변화는 중국 전체에 거세게 불고 있는 오케스트라 부흥운동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여러 대륙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내린 정직한 결론은, 오케스트라 존립의 주춧돌은 전용 콘서트홀의 유무라는 점이다. 한 오케스트라가 연습과 연주를 같은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시설의 보유 여부를 말한다. 본인들의 사운드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일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성숙한 음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연습과 연주를 다른 곳에서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생각만큼의 연주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좁은 연습실에서 연습한 뒤 힘들게 확보한 임차 무대에서 연주 직전 잠시 음향 체크를 하는 반복적인 현실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은 산토끼가 감나무 밑에서 알밤 얻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콘서트홀이다. 좋은 악기를 가진 오케스트라가 수준 높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규칙적인 연주를 할 때 오케스트라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건축 중인 지방 도시의 한 대형 연주 시설을 찾은 적이 있다. 단체장은 다른 도시의 홀보다 1㎝ 긴 객석 간 거리와 나름대로 풍족하게 확보된 주차장, 화려한 분수대 광장의 위용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하지만 음향을 위해 어떤 투자를 했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완공 후 그곳에서 몇 번 연주했지만, 최상의 연주를 끌어내긴 어려운 여건이었다. 다른 예산을 줄이고 음향에 더 투자했더라면 자랑스러운 유물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크고 작은 연주홀이 있다. 그러나 과연 몇 군데나 음향을 최우선으로 건립했는지 궁금하다. 지자체들이 다목적홀을 짓고 거기에서 모든 장르의 공연을 하는 패턴은 50년 넘게 이어온 행정적 획일화에서 비롯된 모방 전통이다. 이제는 다목적홀의 전통에서 벗어나 전문화된 연주장이 절실하다.

카네기홀, 에버리피셔홀, 킴멜센터, 디즈니홀, 베스홀 등 미국 주요 콘서트홀의 명칭은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 영원한 유산으로 남긴다. 우리도 국가 예산으로 우수한 전용 연주장을 건립하기 어렵다면, 경제 부흥을 일으킨 기업들이 직접 기념비적인 홀을 건설해 창업주의 정신을 후세에 선물하는 것이 어떨까? 정주영홀, 정몽구홀, 이건희홀, 최종현홀, 구자경홀, 김종희홀, 박태준홀 등이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아름다운 음향을 뽐내는 무대에서 연주하는 감동의 시간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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