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인문학>“디지털로 연결된 ‘우리’에서도 노인·장애인은 소외됐다”

  • 문화일보
  • 입력 2021-02-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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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 17·끝

- 15인의 통찰속에서 길어올린 말 (下)

코로나 시대 돌봄노동의 위기
왜 여성만 착취당해야 하나

집은 공존 위한 출발장소이자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장소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자유
대한민국에서만 엉성하게 활용


“팬데믹 시대의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을 흩어진 채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단지 우리가 연결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그 ‘우리’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김초엽 소설가)

“코로나 시대의 위기는 돌봄노동의 위기이자 여성의 위기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고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어도 가족 안에서의 아이와 노인,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여자라는 사실만큼은 큰 변화가 없다. 왜일까?”(권김현영 여성학자)

“식물은 팬데믹과 더불어 인간의 공간으로 재진입하면서 주거의 개념을 생각해 보게 한다. 집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고양이나 식물과 동거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단순히 개인의 경제력 및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어떤 권리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할까?”(황희선 서울대 인류학 박사과정)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새로운 일상의 탄생’ 시리즈 후반부는 ‘나’보다 ‘타자’에 더 집중하는 주제와 사유가 이어졌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그 취약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 장애, 여성, 동물과 식물 등 인류의 위기를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이는 당장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기도 했다.

시작은 김초엽 소설가의 짧은 소설과 에세이였다. 김 작가는 ‘기술과 인간:소설 달섬의 이웃들’(2020년 11월 23일 20면)에서 전염병이 퍼지자 모든 사람이 재빠르게 가상공간 ‘달섬’으로 이주하는 풍경을 그렸다. 달섬은 재택근무, 원격조종, 로봇, 아바타를 지원하며 전염병의 시대에 아늑하고 안전한 대안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일부는 어떤 오류나 부적응 문제 등으로 허술하고 위험한 ‘바깥’ 세상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 ‘달섬의 이웃들’을 김 작가는 팬데믹 시대의 디지털 기술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이어진 에세이에서 “디지털 공간마저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연결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며 노인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키오스크와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QR 체크인 등을 예로 들며,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방역 시스템을 꼬집었다. “한국의 장애인들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상의 접근성을 개선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 요구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술 소외로 이어진다.”

‘팬데믹 시대’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성장 중심의 발전주의 세계관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는 대전제 아래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산업혁명 넘어 돌봄혁명으로’(2021년 1월 4일 13면)에서 천연자원처럼 착취당해온 여성의 돌봄 노동을 ‘모두가 참여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돌봄혁명’을 주장했다. 그는 ‘K-방역’의 성공적인 대책 중 하나가 사회적 거리두기인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보건, 의료, 사회복지 및 돌봄 서비스 제공자들이라는, 이른바 ‘필수 노동자들’의 덕이라면서 “이 노동의 핵심에는 돌봄과 연결이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코로나 시대는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를 지속하고 유지하고 고쳐나가는 모든 노동이 돌봄노동이라면, 지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바로 ‘돌봄’이다. 여성만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식물, 인간 아닌 존재와의 동거’(2020년 12월 14일 13면)와 ‘공간-도시가 아니라 집이다’(2021년 1월 18일 13면)에서는 주거 공간을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공존을 모색하는 출발장소이자 또한 어떠한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안적 장소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황희선 인류학 연구자는 팬데믹과 함께 그 존재가 더 부상한 ‘반려식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차원의 시선을 제공했다. “주거권은 인간 외 존재와 함께 생태계를 구성하는 공간에 대한 권리”라면서 인간이 다른 종과 함께 이루는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분석하는 ‘다종민족지’ 연구를 소개한다. “다른 종들이 없다면, 인간은 말 그대로 헐벗은 상태여서 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함성호 건축가는 한옥에서 팬데믹 시대의 공간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 “한국의 전통주거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렴하고, 집을 통해서 자연의 변화를 수용하는 전일적 세계관과 관계중심적 사고를 통해 팬데믹의 내면을 확장해야 한다.”

여행, 놀이, 노동 그리고 사생활에 대한 전문가들의 성찰과 관성적 일상에 대한 의문, 대안 제시 등이 담긴 말들도 눈길을 끌었다. “많은 곳을 다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가 아니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걸 후회하는가, 혹은 여행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걸 후회하는가. 그게 여행으로 충족하는 나의 욕망과 자각의 방향이고, 바깥을 보는 방식이기도 하다.”(박경일 문화일보 여행 전임기자) “사생활은 어디까지 공개돼야 하냐는 논의가 코로나 시대를 강타하고 있지만 공개돼야 할 사생활이란 없다. 코로나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대한민국에서 엉성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드러냈다.”(오찬호 사회학자) “팬데믹 상황이 강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 즉 고독과 존재론적 회의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위로찾기가 더욱 강화된 방향으로 놀이의 진화를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맹목적인 속도 숭배에서 잠시 내려오게 된 지금, 우리는 경제와 노동의 근본을 되묻게 된다. 일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삶의 품격이 높아질 수 있을까. 빵과 장미를 함께 향유하던 터전은 어디에 있는가.”(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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