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떡국과 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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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되면 떡국 한 그릇과 나이 한 살 먹는 것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도 떡국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눈을 부릅뜨고 떡국이란 단어를 곱씹어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떡은 쌀가루를 찌거나 찐 것을 빚어서 만든다. 국은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춰 끓인 음식이다. 밥과 재료는 같되 생김과 쓰임이 다른 게 떡이고, 밥상 위에서 밥의 옆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국인데 이 둘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니 이상하다.

밥상의 주연은 밥이고 조연은 국, 찌개, 반찬이다. 그런데 설날 아침만은 주인공이 헷갈리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밥이 없는 밥상에 조연이었던 국이 주연 노릇을 한다. 그냥 국이 아니라 늘 주연이었던 쌀을 빻고, 찌고, 뽑고, 썰어서 끓인 국이다. 밥이 없으면서 밥이 있고, 국이면서도 밥을 대신할 수 있는 게 떡국이다. 주객전도가 아니라 주객합일(主客合一)의 경지다.

내친김에 떡밥도 따져 보면 재미있다. 말은 떡밥이지만 이는 떡도 밥도 아니다. 떡이든 밥이든 사람의 배를 불리려 만든 것이 떡과 밥인데 떡밥은 배고픈 물고기를 꼬이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재료 또한 쌀겨, 깻묵, 콩가루 등이니 사람들은 잘 안 먹는 것들이다. 떡국은 먹으면 밥이 되지만, 물고기가 떡밥을 먹으면 밥상의 반찬이 된다.

떡국 상을 물리고 텔레비전을 보면 온갖 떡밥이 넘쳐난다. 명절이면 시험 삼아 올려 시청자들의 간을 보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갖은 맛, 향, 모양, 소리로 이목을 끈다. 많은 사람이 이 떡밥을 물면 비로소 ‘정규’ 이름표를 붙이고 주기적으로 밥상에 오른다. 떡국 먹고 연륜에 테를 하나 더했다면 떡밥도 더 잘 가려서 물 일이다. 설날 밥상에 오르는 떡국처럼 반가운 파일럿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떡국 행세를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거나 남의 집에서 훔쳐 온 밥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아야 낚이지 않는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