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최경주, 아시아선수 첫 ‘제5의 메이저’ 챔피언 등극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경주가 2011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연장전이 벌어진 17번 홀에서 데이비드 톰스(오른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리를 확정 짓는 파 퍼트 성공 후 포효하고 있다. PGA투어 홈페이지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최종일
톰스와 파3 17번서 첫 연장전
12m 퍼트 파로 막은 최경주
5.5m서 스리퍼트한 톰스 꺾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은 4대 메이저 대회보다 총상금이 더 많다.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권위 있는 대회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잭슨빌 인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에서 매년 열린다. 2011년 5월 12일부터 38번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렸다. 주최 측은 매년 그린 깃대에 전년도 챔피언 사진이 담긴 깃발을 꽂아 우승자를 예우하는 전통이 있다.

2010년 챔피언 북아일랜드의 대런 클라크가 그해 깃발 사진의 주인공이 돼야 했다. 하지만 클라크는 2009년 암으로 사망한 스페인 출신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사진 대신 바예스테로스 사진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2011년 대회 3일째 토요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주최 측은 비가 그치지 않자, 3라운드 전반까지만 진행하기로 했다. 잔여 경기는 일요일 4라운드에 앞서 속개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치러졌고, 3라운드까지 북아일랜드의 그레임 맥다월이 12언더파로 선두였고, 미국의 데이비드 톰스와 최경주가 1타 뒤졌다.

4라운드 시작부터 맥다월은 제풀에 지친 듯 난조에 빠졌다. 톰스와 최경주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첫 홀 버디를 잡은 최경주. 하지만 톰스가 6번 홀까지 3타 앞섰다. 최경주는 포기하지 않고 톰스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16번 홀에서 톰스가 보기를 범해 최경주와 처음으로 동타가 됐다.

2개 홀을 남겨두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갤러리들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고 있었다.

유명한 시그너처 홀, 아일랜드 그린이 있는 17번 홀(파3)에서 최경주가 먼저 티샷을 날렸고 보란 듯이 홀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다. 파에 그친 톰스를 제치고 최경주가 처음으로 1타 앞선 선두가 됐다. 마지막 18번 홀, 톰스의 티샷이 디벗에 들어갔지만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다. 홀과는 5m 남짓. 버디를 하기엔 다소 멀었고, 반드시 넣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홀로 쏙 집어넣었다. 옆에서 담담히 지켜보고 있던 최경주는 허탈하게 웃었다. 극적인 동타가 돼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인세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둘은 플레이오프를 위해 17번 홀로 옮겼다. 최경주는 물에 빠질 것을 우려해 약간 여유 있게 공략했다. 하지만 홀에서 12m나 굴러갔다. 이를 지켜본 톰스는 공격적으로 티샷을 날려 5.5m 거리에 공을 세웠다. 최경주에게 버디를 하기엔 벅찬 거리였고 2퍼트로 막아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경주가 친 공은 홀을 아슬하게 스치며 70㎝ 정도 지난 곳에서 멈췄다. 톰스는 승부를 마치겠다는 듯 과감하게 퍼트를 했지만, 홀을 1.5m나 지나갔다. 톰스가 먼저 파 퍼트를 시도했다. 순간 최경주는 눈을 감았다. 신이 최경주를 선택했을까. 톰스의 퍼트는 홀 왼쪽 가장자리를 훑고 퉁겨 나왔다. 최경주는 아주 짧은 퍼트였지만 신중했고, 결국은 파를 성공시키며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최경주는 아시아인으로는 첫 이 대회 챔피언이 됐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