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의 지식카페>‘길들이기’는 인류 문화발전 발판 됐지만 자유의 구속 불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⑩ 집짐승과 들짐승

인간, 충동적 야성 버리고 스스로를 노동에 속박된 삶에 가둬… 한편으론 자유를 끊임없이 동경
팬데믹 공포 속 자유와 통제 사이 딜레마…‘생명의 위험 앞에 스스로를 길들이는 인간’ 더 힘 얻어

우화 1) 한 야생당나귀가 양지바른 곳에 편안히 쉬고 있는 당나귀를 우연히 보고, 잘 먹어 윤기가 흐르는 그의 몸을 칭찬하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얼마 후 길을 지나다 보니, 일전에 만난 바로 그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주인에게 매를 맞으며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야생당나귀는 이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자네가 조금도 부럽지 않네. 편안히 잘 지내는 것에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알았으니 말일세.”

우화 2) 한 야생당나귀가 짐을 지고 낑낑대고 있는 당나귀를 조롱하며 일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 먹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에 비해 짐을 나르는 당나귀는 주인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늘 매질을 당할 뿐이고, 먹이도 오직 주인에게만 의지하여 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때 사자가 나타나 주인이 지키고 있는 당나귀 대신 혼자 나대는 야생당나귀를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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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당나귀와 당나귀, 들짐승과 집짐승 사이의 대립은 이솝 우화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이다. 첫 번째 우화의 메시지는 늑대와 개의 우화 속에도 들어 있다. 편안히 잘 먹고 사는 개를 부러워하던 늑대가 개의 목줄 자국을 보고 먹을 것을 위해 자유를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떠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다른 버전에서는 같은 교훈을 개가 직접 전해준다. 개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늑대에게 목줄 자국을 보여주며 경고한다. “자네는 나 같은 삶을 택하지 말기를 바라네.”

이러한 우화들은 한결같이 들짐승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과 인간에게 묶인 집짐승의 굴종적 삶을 대비시키며, 전자를 찬양한다. 잘 알려진 우화 ‘시골쥐와 서울쥐’도 이와 유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울쥐는 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보면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지만 그러한 삶의 향유는 인간에게 잡혀 죽을 수 있다는 항시적인 공포와 결부되어 있다. 시골쥐는 당연히 마음 편한 시골의 생활을 선택한다.

서울쥐는 짐을 나르는 당나귀나 사냥개 같은 집짐승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피해서 인간과 무관하게 자연 속에서 사는 들짐승도 아니다. 서울쥐는 인간의 의지에 반하여 인간에게 의존하는 삶을 선택했고 그것이 심각한 삶의 긴장을 가져온다. 그런 긴장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콩과 곡식과 대추야자와 치즈와 꿀과 과일이 있는 풍성한 식탁이 좋다는 것이 서울쥐의 태도이다. 자연 속에서 궁핍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시골쥐는 물론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솝우화에서 야생의 삶과 인간에게 예속된 삶의 대비는 동물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원예사에게 잡초는 잘 자라고 생기가 있는데, 가꾼 채소는 왜 아무리 물을 주고 돌봐주어도 약하고 잘 시드는지 물었다. 원예사는 놀라운 답을 준다. 대지의 여신에게 잡초는 친자식이고, 인간이 심은 채소는 의붓자식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생명력은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난 야생의 삶 속에 있다는 것을 우화는 말하고 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반복되는가? 왜 인간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게 의존하거나 인간에게 묶여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집짐승들이, 혹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재배되는 채소가 이렇게 폄하되는가? 인간을 멀리하고 인간에게 길들기를 거부하면서 때로 인간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들짐승을 왜 인간은 동경하는가?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고 늑대는 철천지원수인데 왜 개처럼 살아서는 안 되고 늑대처럼 살라고 가르치는가?

이솝우화는 많은 경우 동물과 식물이 인간처럼 말을 하는 까닭에 비유적으로 교훈을 전하기 위해 꾸며낸 비사실적 서사 장르라는 인상이 있지만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이솝우화의 핵심적 내용은 동식물의 삶과 습성에 대한 사실적 관찰에서 유래한 것이다. 헤겔은 예를 들어 세찬 비바람에 떡갈나무가 쓰러지고 갈대는 살아남는 것은 자연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고, 여우를 보고 울음소리를 뽐내다가 입에 문 고기를 놓친 까마귀 이야기는 낯선 자를 보면 잘 울어대는 까마귀의 습성에서 유래했다고 지적한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과 동식물들의 삶을 늘 가까이 접하고 관찰하며 살았고, 그러한 관찰이 인간 자신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때 우화가 생겨났다.

집짐승과 들짐승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들짐승과 인간에게 길들어 복종하고 복종의 대가로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는 집짐승의 대립에서 인간은 인간 자신이 직면한 삶의 문제를 발견한다. 그러면 인간은 들짐승과 집짐승 가운데서 어느 편의 위치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일까? 인간은 들짐승인가 집짐승인가? 짐을 나르는 당나귀와 당나귀의 주인, 사냥개와 사냥꾼은 대립적인 위치에 있다. 인간인 당나귀 주인과 사냥꾼은 부리는 자로서 자유로운 주체이고, 당나귀와 사냥개는 주인에게 묶여 부림을 당하는 노예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좀처럼 자신을 자유로운 들짐승과 동일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부리는 집짐승과 비슷한 신세라고 여긴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집짐승의 삶을 경고하는 이야기를 많이 지어낼 리가 없다.

동식물을 길들여 인간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간 문화 발전의 결정적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살기 위해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정처 없는 삶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물질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고 부의 축적도 가능해졌다. 이처럼 길들이기는 문화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구속의 시작이기도 했다. 자기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자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구축한 그 기반에 구속된다. 인간은 농사지을 땅에 묶이고, 자신이 길들인 식물들을 재배하는 데 묶이고, 집짐승들을 돌보는 데 묶인다.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물질적 생산의 공동체에 묶이고, 그 공동체가 축적한 부와 그 부를 독점한 자에게 묶인다.

신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 이제부터는 평생 땅을 파고 땀 흘리며 노동해야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낙원에서의 추방은 먹을 것을 발견하는 시대에서 노동해서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시대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먹을 것의 생산은 동식물을 길들임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길들임, 또는 순화(馴化)의 과정은 누구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충동적인 야성을 버리고 스스로를 노동과 속박된 삶에 길들일 것을 요구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집짐승으로 길들인 것이다.(훗날 나치 우생학자로서 악명을 떨친 오이겐 피셔는 1914년에 자기순화(Selbstdomestikation)라는 개념으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집짐승과 유사한 신체적 변화를 겪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현대 생물학에서도 유효한 테제로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솝우화 속에 나타나는 자유로운 늑대에 대한 동경, 수고로운 짐을 지지 않고 천지에 널린 풀을 뜯어 먹으며 살아가는 야생당나귀의 삶에 대한 동경은 인간이 스스로를 집짐승으로 길들이면서 상실한 야성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유명한 문장의 고대적 표현인 셈이다.

과연 그러한 자유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 문화가 보장하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의 원초적인 자유를 회복한다는 것은 낭만적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길든 자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도, 진정한 의지도 남아 있지 않다. 자유로운 삶으로 탈출하느냐, 예속된 상태에 안주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길들지 않았어야 한다. 늑대에게 나처럼 되지 말라고 충고하는 개가 보여주는 것은 스스로 목줄을 끊어버릴 수 없는 길든 자의 체념이다.

그런데 위에 제시한 두 번째 우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야생당나귀의 삶을 예찬하는 첫 번째 우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자유로운 야생의 삶이 비현실적인 공상 속에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생당나귀가 사자의 공격에 죽게 됨으로써 이 우화의 화자는 야생의 자연이 생명의 위험으로 가득한 공간, 인간적, 문화적 보호가 결여된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설파하는 야생당나귀의 관점을 공박하는 동시에, 외부의 위협을 환기함으로써 당나귀에게서 야생의 삶을 향한 동경이 아예 일어날 수 없게 하려고 한다. 그러한 동경은 당나귀의 노동 의욕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야생당나귀와 당나귀, 사자에 관한 우화는 그래서 길든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길들이는 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집짐승과 들짐승을 다룬 여러 이솝우화의 전반적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이야기는 본래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집에 있던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중세에 시리아 정교회의 언어인 시리아어로 된 이솝우화의 판본에 처음으로 실린 우화로 본래 이야기에 기독교적 색채를 가미한 일종의 패러디다. 야생당나귀를 징벌하는 새로운 결말로 우화가 전도된 것은 야생당나귀의 독자 노선이 목자와 양 떼의 조화로운 관계를 상정하는 기독교적 상상계에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새로운 자유와 통제 사이의 딜레마 앞에 직면해 있다. 거대한 생명의 위험 앞에서 봉쇄에 저항하며 자유를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시위대가 많은 사람에게 사자 앞에 선 야생당나귀의 경거망동으로 여겨지고, 인간은 안전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길들이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더 큰 설득력을 얻는 시절이다. 자유의 이념이 숭고한 이상이며 동경의 대상이던 시대가 아주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헤겔의 ‘미학 강의’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강의명이자 그의 제자들이 정리한 책의 이름.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대 여름학기부터 1829년 베를린대 겨울학기까지 대략 다섯 번에 걸쳐 미학과 관련된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겔이 이 강의를 위해 직접 작성한 원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당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필기하거나 정리한 열두 편의 원고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