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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1년 02월 22일(月)
“뻔한 이야기를 탁월하게 변주” … “절제된 감정·담백한 연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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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는 한국인 이민자 가정을 소재로 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사로 인종과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 김인구·안진용 기자가 본 화제작 ‘미나리’

[김인구 기자]
감정선 조절… 세미 다큐 본듯
윤여정 휴머니즘·유머 동시에
마운틴듀·화투 등 소품도 재미
이민자 소재 무겁고 지루할수도

[안진용 기자]
美서 ‘전원일기’ 찍은 느낌
윤, 아카데미 못타면 화날듯
스티븐 연 한국어발음 어색
‘다관왕’ 기대감 충분히 만족


미국에서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아카데미 수상까지 기대되고 있는 화제작 ‘미나리’(감독 정이삭)가 지난 18일 언론 시사를 통해 국내 공개됐다. 한국 이민 가정을 다루느라 대사의 90% 가까이가 한국어인 이 영화는 어떻게 언어를 넘어 현지 평단을 사로잡았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중문화팀 두 기자가 나섰다. 함께 일하지만 평소 영화 취향은 조금 다른 김인구·안진용 기자가 배우와 감독, 스토리와 장치까지 미나리를 다각도로 뜯어본다.

◇신파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 담백한 연출

김인구 기자(이하 김) :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서 소문을 듣고 처음 본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인데 다시 보니 더 좋은 것 같다. 처음 볼 땐 좀 지루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곱씹어 보니 놓쳤던 대사나 소품까지 눈에 들어온다.

안진용 기자(이하 안) : 완전 좋다. 뻔한 이야기인데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들이 너무 좋았다.

김 : 오랜만에 둘이 똑같이 후한 평점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다. 스토리부터 보자. 말처럼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변주한 솜씨가 빼어나다.

안 : 억지 울음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순자(윤여정) 할머니가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에게 화투를 알려주며 구수한 욕(?)을 하고, 삶은 밤을 입으로 까서 건네주는 장면에서 찡해지더라. 미국 농장에서 ‘전원일기’를 찍는 느낌이랄까. 응당 ‘저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절묘하게 짚었다.

김 : 정이삭 감독이 직접 쓴 대사와 편집을 통해 감정선을 철저히 조절했고, 배우들도 담백하게 연기했다. 질척거림이 없어 보기 편했다. 세미 다큐멘터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민자’라는 예상 가능한 소재여서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안 :‘미나리는 물만 있으면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는 대사는 한국 이민자가 어디든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와 닿는다. 자가 우물을 고집하던 제이컵(스티븐 연)이 결국 현지인의 도움을 구하는 시퀀스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한국인이 그들의 삶에 동화돼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스티븐 연·한예리·윤여정의 섬세한 연기

김 : 미국 시골인 아칸소로 이주한 5인 가족의 이야기다. 5명 중 가장 두드러진 배우 1명을 선택하라면 아내 모니카(한예리)를 꼽고 싶다. 한예리의 절제된 연기가 제이컵과의 갈등을 차분하게 고조시켰다.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표정도 좋았다. 그리고 스티븐 연도 다시 봤다. 4세 때 미국에 이민 갔으면 네이티브 스피커 아닌가. 그런데 ‘버닝’ 때보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오히려 영어를 쓸 때는 일부러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였다.

안 : 왜 외신들이 윤여정에게 찬사를 보내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딱 그런 할머니의 모습인데, 이민자의 삶 속에 대입하니 어찌 그리 매력적일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국내에선 윤여정이 현대적인 노년의 표상을 자주 연기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의 진면목을 놓쳤던 것이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 주면 화가 날 것 같다. 아역인 앨런 김, 노엘 조도 흠잡을 데 없다. 다만 스티븐 연의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발음은 다소 거슬린다.

김 : 윤여정의 연기는 사실 우리에겐 익숙하다. ‘바람난 가족’ ‘하녀’의 연장선이다. 중년이지만 아줌마나 할머니이기를 거부하는 자존심과 유머가 순자에게도 배어 있다. 이게 미국인들의 눈에는 무척 낯설고 신기해 보였을 것 같다. 순자는 휴머니즘과 유머를 동시에 보여줬다.

◇보는 재미를 더하는 추억의 소품들

안 :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의 시대상을 잘 고증했다. 극 중 윤여정이 즐겨보는 프로레슬링을 비롯해 이민자들의 돈벌이였던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과 큰 병에 담긴 마운틴듀 등을 보며 우리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미국 관객도 경험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소품들을 한국인 이민자가 사용하는 모습이 현지인들의 노스탤지어를 오히려 더 강화했을 것이다.

김 : 두 번째 보면서 미장센을 더듬으니 추억의 소품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미국인 관객에겐 바퀴 달린 트레일러 집, Y자 나무로 우물 찾기, 마운틴듀, 엑소시즘, 레이건 시대, 씹는 담배 등이 정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을 자극하는 소품도 있었다. 순자가 가져온 고춧가루와 멸치, 화투는 가장 한국적인 장치다. 주방에 놓여 있는 진간장, 모니카가 서랍장에 까는 흰 종이, 바가지 물 샤워 등은 미국땅에서 발견한 한국적 풍경이다.

안 : 총평을 말하자면, 솔직히 영화를 보며 놀랐다. 러닝타임 내내 시계 한 번 들여다보지 않게 되더라. 워낙 많은 상을 받아서 ‘기대감이 독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키며 우직하게 이야기를 밀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질감은 다르지만 ‘기생충’이 그랬듯, 가족이라는 보편타당한 소재는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해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에밀 모세리 음악 감독의 선곡도 탁월했다.

김인구·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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