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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지적 문화 시점 게재 일자 : 2021년 02월 23일(火)
누구나 부를 수 있기에… 트로트, 르네상스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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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한민족 울리고 웃긴 노래 ‘트로트 100년史’

1910년대 美‘폭스트롯’박자에
일제강점기 日 ‘엔카’ 리듬 영향
韓정서 담은 독립 장르로 발전
‘왜색’논쟁에 80년대 이후 외면

트로트 오디션發 인기 재점화
‘단장의 미아리 고개’ ‘배신자’
절절한 가사 흥얼거리며 위안
퍼포먼스 위주 K-팝과 차별점


“한국은 트로트 르네상스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 속 표현이다. 왜 영국이 한국 트로트에 관심을 보일까? 이 기사의 제목을 알면 답이 나온다. ‘K-팝보다 인기 있는 건 무엇일까?’(What’s bigger than K-pop?) K-팝의 인기를 좇다 보니, 정작 본고장인 한국에서는 트로트가 더욱 각광 받고 있다는 ‘놀라운 현실’과 맞닥뜨린 셈이다. 한국에서 2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트로트 열풍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탈(脫) TV 시대에 TV조선 ‘미스트롯2’의 시청률은 30%가 넘는다. 지난해 한국 갤럽이 조사한 40대 이상이 뽑은 2020년을 빛낸 가수 순위에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1위를 차지했다. 30대 이하가 그룹 BTS였던 것을 고려하면 임영웅의 위상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트로트는 왜 트로트로 불리게 됐는지, 트로트는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의 열광으로 이어졌는지, 트로트의 역사를 추적한다.

◇100년을 관통한 트로트, 시작은?

지난해 열린 ‘트롯 어워즈’에서 대상을 받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는 “우리가 위로받고 위로한 노래들이 100년이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과연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트로트를 주제로 음악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4년 국제 학술지에 트로트 관련 논문을 최초 게재한 손민정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는 1927년 발표된 ‘낙화유수’와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애리수의 ‘황성의적’(1932)을 트로트의 시작으로 본다. 손 교수는 “‘낙화유수’는 당시 신세대의 감성을 왈츠풍으로 표현했으나 음과 음을 연결하는 꾸밈음이 전통적 가창 방식”이라며 “작사·작곡가의 개념이 생기고, 가수가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등의 전체적 맥락을 봤을 때 트로트의 시작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교수가 말하는 ‘한국형 트로트’가 등장하기까지 서양과 일본 음악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91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한 ‘폭스트롯’은 자연스럽게 한국에도 흘러들었다. 이는 2분의 2박자, 4분의 4박자 춤곡으로 ‘쿵짝 쿵짝’으로 대표되는 트로트 박자와 유사하다. 여기에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유입된 ‘엔카(演歌)’ 요소가 접목됐다. 흔히 우리 노래라고 알고 있는 ‘희망가’ ‘카추샤의 노래’ 등은 일본의 유행가를 번안한 곡이다. 이렇듯 초창기 트로트와 엔카를 명확히 구분 짓기는 쉽지 않다.

결국 폭스트롯의 박자에 일본의 전통적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라시도미파)에 2박자 리듬을 더한 엔카가 초창기 트로트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한국적 정서를 담은 가사와 리듬으로 다듬어진 독립적 트로트로 발전해 온 셈이다.

◇왜 트로트로 명명됐나?

‘트로트의 황제’라 불리는 나훈아는 지난 2004년 한 일간지에 칼럼을 쓰며 ‘트로나’나 ‘뽕짝’이 아닌 ‘전통 가요’ 혹은 ‘아리랑’이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트로트나 뽕짝이라는 표현 안에 이 장르를 낮추는 뉘앙스가 포함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8월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 트로트 세계화 방안 수립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고, 이 명칭을 둘러싼 논의가 오갔으나 트로트보다 이 장르를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트로트(trot)라는 표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국산 트로트 태동기에 인기를 끌던 폭스트롯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쿵짝 쿵짝’으로 구성된 폭스트롯의 박자는 가수 송대관의 히트곡 ‘네박자’ 속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라는 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두 장르는 유사성을 띤다.

하지만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을 출간한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은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는 “트로트가 갈래명으로 정착된 것은 1950년대로 추정된다. 광복, 6·25전쟁과 휴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연합군을 통해 다양한 춤과 리듬이 수입됐고, ‘도롯도’(트로트)라는 이름도 볼 수 있다”며 “처음에는 리듬만을 지칭하다가 당시 유행하던 노래까지 아울러서 다른 듯 닮은 여러 노래의 집합을 트로트라 부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이미자, 나훈아, 남진, 장윤정, 송가인, 임영웅.

◇왜 평가 절하됐나?

트로트는 1950년대를 전후해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하며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53)과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1955) 등이 그 시기를 대표한다. 1960년대는 미 8군을 기반으로 한 팝 음악이 강세를 띠는 가운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 조미미의 ‘먼 데서 온 손님’ 등 향토적인 정통 트로트도 사랑받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트로트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크로스오버를 시도한다. 록이나 스탠더드 팝과 트로트를 접목한 ‘임과 함께’의 남진과 구성진 꺾기에 세련된 멜로디를 결합한 나훈아가 쌍두마차였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트로트는 새 국면을 맞는다. 팝과 발라드를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가 등장하면서 트로트의 설 자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 송대관·태진아·현철·설운도 등 소위 ‘4대 천왕’과 ‘꺾기의 여왕’인 주현미 등 소수가 트로트 시장을 나눠 가진 것은 다른 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시기 트로트는 한물가고, 촌스러운 어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 배경에는 왜색(倭色) 논쟁이 자리한다. 1984년 일본 문화 개방 논쟁 속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오랜 기간 대중의 심금을 울린 ‘동백아가씨’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민주화 및 개방 물결과 함께 가요계의 황금기를 맞으며 다양한 장르가 봇물 터지듯 유입됐다. 결국 트로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장르의 도입이 트로트를 가요 시장의 뒤편으로 밀어낸 셈이다.

◇트로트, 왜 다시 불리나?

트로트는 2000년대 들어 다시 불렸다. 장윤정·박현빈을 필두로 한 ‘세미 트로트’는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들이 부른 빠른 템포의 신명 나는 트로트는 젊은층까지 섭렵하며 회식 간 ‘노래방 18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K-팝 시장에 밀려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트로트 시장은 2019년 론칭된 TV조선 ‘미스트롯1’을 통해 급격히 팽창했다. 그해 겨울 방송인 유재석이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채찍질했고, 전국 시청률 35.7%를 기록한 ‘미스터트롯’이 정점을 찍었다.

누구나 노래에 빚을 지고 산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기쁠 때나 슬플 때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이 폐부를 찌르며 가슴 속 상처를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송가인이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절절하게 불러 ‘미스트롯’ 결승전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임영웅 역시 5세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애창곡으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부른 ‘배신자’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수 진성은 13세 소년 정동원이 자신의 히트곡 ‘보릿고개’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그 가사를 곱씹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요즘 전 세계를 호령하는 K-팝은 ‘보는 음악’에 가깝다. K-팝 스타들의 고난도 퍼포먼스와 남다른 패션 감각을 뮤직비디오로 즐길 때 맛이 배가된다. 하지만 트로트는 ‘듣는 음악’을 넘어 ‘부르는 음악’에 가깝다. 세상에 발표됐을 때, 더 이상 특정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이를 부르는 모든 이의 노래가 된다.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한창일 때 설운도가 부른 ‘잃어버린 30년’, 우루과이라운드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을 때 배일호가 발표한 ‘신토불이’, 노년의 삶에 대한 열망이 커질 때 오승근이 외친 ‘내 나이가 어때서’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트로트 열풍:남인수에서 임영웅까지’를 펴낸 유차영 평론가는 “유행가는 세월에 따라 흐르기도 하고 되돌기도 한다. 가을 낙엽처럼 강 물결을 따라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바다 위에서 영원히 둥둥거리기도 한다. 이런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된다”며 노래에 담긴 사연과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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