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른 OST, 오스카 주제가賞 1차후보… 영광스럽고 쑥스러워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예리는 “낯선 땅에서 25회차의 짧은 시간 동안 촬영하느라 정신없었지만 뜻밖에 많은 한국 스태프가 우리를 도와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함도 덜했고, 모니카 역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아카데미 진출 유력’ 화제작 ‘미나리’ 주연 한예리

“모세리 음악감독 곡 아름답다”
생각하던 차에 가창제안 받아

“1980년대 美로 건너간 모니카
우리 부모·우리 자신의 자화상

사랑이라는 감정대해 깊이 생각
‘인간 윤여정’에게서 많이 배워”

“제가 부른 OST가 아카데미(오스카) 주제가상 1차 후보라니…영광스러우면서도 엄청 쑥스러워요.”

오스카 진출이 유력시되는 화제작 ‘미나리’(감독 정이삭)의 주연배우 한예리를 23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한예리는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엄마이자 한 사람의 아내, 그리고 딸인 모니카를 연기했다. 스티븐 연,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등 누구 하나 모자란 배우가 없었지만 5인 가족 중 한가운데에서 가정을 지키려 애쓰고, 꿈을 이루기 위해 힘썼던 인물이다. 그는 “처음 번역 초판본으로는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정 감독을 빨리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감독님을 만난 후 너무 좋은 분이어서 작업을 같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예리는 정 감독이 생각하는 모니카와 제이컵(스티븐 연)이 자신이 상상한 모니카, 제이컵과 맞아떨어져 “내가 (모니카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 낯선 미국 땅으로 이주한 모니카와 제이컵은 우리 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한예리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한국적 신파를 담담하고 무던하게 넘긴다. 그런 표현 방식과 감독의 연출 태도를 사랑하고 좋아한 것 같다”며 “‘미나리’가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은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연기 중 가장 기억나는 대목으로는 우여곡절 끝에 식료품점에 샘플을 납품하고 나와서 제이컵과 심각하게 대화하는 장면이다. 갈등이 표면화하는 부분이고, 한예리의 절제된 연기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힘든 장면이었다. 모니카는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힘들다고 표현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끝까지 와 있고 더 밀면 벼랑에서 떨어질 수 있으니 나를 붙잡아달라는 말로 이해했다. 모니카는 제이컵의 꿈을 응원하지만, 또한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게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니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모니카 역의 한예리

스티븐 연이나 친정어머니 순자 역 윤여정과의 호흡도 나무랄 데 없었다. “스티븐은 엄청 스위트한 사람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열정도 남달라서 뭔가 우리가 잘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에너지를 생기게 했다. 윤여정 선생님은 배우로서의 모습도 그렇지만 ‘인간 윤여정’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다. 많이 배웠다.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다.”

정 감독과도 잘 맞았다. “뭔가 집요하게 파고들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똑똑한 분이었다. 항상 배우가 편하고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매번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함께 모여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 감독님이 지었던 미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예리는 연기는 물론 OST도 직접 불렀다. 에밀 모세리 음악감독의 곡을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하던 차에 가창 제안을 받았다. 영화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흔쾌히 하고 싶었고, 결국 영화 엔딩 크레디트 위로 자장가처럼 흘러나오는 ‘레인 송(Rain Song)’을 불렀다. 이 곡은 오는 4월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 1차 후보에 올라 있다. 한예리는 “이런 경사가 생겨서 신기하고 좋다”며 “영광스러우면서도 엄청 쑥스럽다”고 말했다.

현재로는 ‘미나리’가 오스카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골든글로브에서는 외신들도 비판할 정도로 오래된 영어 대사 규정 때문에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그쳤지만, 작품상·감독상·각본상, 그리고 연기자상 후보까지 두루 지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말 뭐라도 되면 엄청 좋겠다. 특히 정 감독님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고생한 만큼 보람된 일이 생겼으면… 그러나 뭐 못 받아도 괜찮다.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