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텍사스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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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연수 기간 중 국내에서는 보지 못한 ‘아이스 스톰(ice storm)’을 경험한 바 있다.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은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인데, 밤사이 내린 비가 온통 얼음이 돼 ‘겨울왕국’을 만들어 버렸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선을 다 끊어버렸고, 길은 빙판이 됐다. 차를 움직일 수 없으니 한참 걸어서 대형마트에 갔지만, 연료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전기·수도·난방이 끊기니 원시시대나 다름없었고, 졸지에 땔감을 구하러 다녔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 하니 전기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됐다.

이번 미국 텍사스주의 대정전 사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전력 공급 대책의 중요성을 절감케 해준다. 텍사스주는 겨울 평균 기온이 10도인데 이번에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얼마나 추웠을지 짐작이 간다. 셰일가스가 풍부해 천연가스 발전 비중이 52%로 가장 높고, 풍력 발전을 3배나 늘리면서 새 원전 2기를 추가 증설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 풍력 발전기 터빈과 가스관이 얼어버려 발전이 중단됐다. 그나마 원래 있던 원전 3기가 정상 작동해 블랙아웃은 간신히 면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급격히 올리다 보니 자연재해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엄청난 수준의 전기료 폭탄이다. 평소 14만 원 수준의 전기료를 내던 가정에서 331만 원의 전기료가 나왔고, 어떤 집은 전기료로 2000만 원이 청구됐다고 한다. 전기를 공급받는 도매 전력업체의 변동 요금제 때문인데 한파로 수요가 폭증하면 덩달아 요금도 오르는 시스템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2022년까지 가동 예정인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공사 중이던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중단시켰다. 앞으로 신규 원전 계획도 철회했다. 대신 2030년까지 48조 원을 들여 전남 신안에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해 보통 3개 이상의 태풍이 영향을 미치고, 기후변화로 폭설, 홍수가 잦은 상황에 가장 안정적인 원전을 없애고 불안정한 재생에너지에 의존한다는 것은 이념에만 사로잡힌 바보 같은 짓이다. 더욱이 전기차 증가로 전기 사용량은 더 늘어나기 때문에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절실하다. 탈원전론자들은 텍사스 사태를 그저 남의 일처럼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