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창공의 삶을 산 ‘어린 왕자’… 한밤중 홀로 사막위를 떠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서동요(薯童謠) 46x31㎝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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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파리, 사하라 사막

‘하늘의 작가’ 생텍쥐페리
극한의 전투 속 야간 비행
그에겐 하늘이 견고한 땅

지상의 셈법으론 잴수 없는
시간 밖의 또 다른 시간 산
사십여년 남짓의 짧은 생애

황홀한 별과 별들사이 비행
이 사막, 그도 보았을까?
내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육(肉)은 지상에서 한 줌 흙으로 남고 그 흙집을 빠져나간 영(靈)은 하늘로 간다.”

내 나이 14∼15세 무렵,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했을 때 낡은 성경을 가리키며 돌아온 어머니의 대답. 쾅쾅, 흔들림이 없었다.

여기 보아라, 위 것을 생각하고 아랫것은 당최 생각지도 말라고까지 하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돋보기를 밀어 올리며 언짢은 시선과 함께 들려오는 소리. 너는 도대체 예배는 빠지고 밤낮없이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것이냐, 땅에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긴 한숨. 아무래도 하나님이 겸손을 가르치시려고 너를 내게 주셨나 보다. 자식들이 성경의 바깥으로는 한치도 나가지 못하도록 했던 내 어머니는 ‘랍비’와 같았다.

폐일언하고, 그때 반항적 문학 소년의 머릿속을 스쳤던 엉뚱한 생각 하나. ‘야간 비행’과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 하늘에서 살다 땅으로 내려와 죽지 않았는가? 그랬다. 비행사 생텍쥐페리는 지상보다는 창공의 삶을 산 하늘의 사람이었다. 물론 곡예사도 공중에 떠 있지만 잠시 머물다 땅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비행사는 더 높은 곳에서 더 오래 머문다. 특히 그는 낡은 수송기와 정찰기로 대륙을 넘나드는 야간 비행을 자주 했다. 그런 그에게는 때론 하늘이 더 견고한 땅일 수도 있겠다. 생텍쥐페리, 그러니 40년 남짓의 짧은 시간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하늘에 머물렀던 그의 시간을 땅의 계산법만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쩌면 그가 한밤중 홀로 사막 위를 떠갔던 깜깜한 시간은 지상의 셈법으로는 잴 수 없는 “시간 밖의 또 다른 시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아이는 기실, 아이가 아니라 동양판 ‘노자’ ‘장자’의 화자(話者)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나이를 먹었다 할 수도 있으리라.

어쨌거나 ‘야간 비행’이나 ‘어린 왕자’는 하늘의 기록이자 땅의 서사다. 특히 ‘야간 비행’은 내게 ‘모비딕’만큼이나 경이로운 책이었다.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는 모비딕을 읽고 일본의 사(私)소설적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그 스케일에 압도돼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는데, 나 또한 ‘야간 비행’을 읽으며 문학의 시야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확대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읽은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은 실로 땅의 이야기였다. 가끔 하늘로 상승하는 듯싶다가도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이야기들. 남과 여, 사랑과 이별, 한숨과 비탄의 쳇바퀴를 뱅뱅 도는 것들. 아니면 지상을 너무 멀리 떠나버린 신들의 이야기였거나. 하늘에 떠서 땅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래서 읽는 이의 상상력 스펙트럼까지 뒤집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서사는, 그 집필 순과 관계없이 ‘인간의 대지’에서부터 출발해 이동해갔다. 처음부터 서늘하게 하늘을 떠다닌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극한적 전투 상황 속에서 낡은 비행기로 위태하게 프랑스 상공에서 출발, 서북 아프리카까지 오가야 했으므로 낭만적 야간 비행과도 거리가 멀었다. 주로 밤에 비행했던 것도 최대한 적병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불현듯 ‘야간 비행’이나 ‘어린 왕자’를 아! 싶게 지척의 이미지로 떠올리기는 수년 전 사하라 여행의 한 캠프에서였다. 와르르 쏟아질 듯한 그 별과 별 사이를 떠가는 밤의 비행이라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바로 저 지점을 언젠가 그도 지나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 지는 거 구경하러 가자(어린 왕자)….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나면 별의 몸단장을 해줘야 해(어린 왕자).

마음으로 봐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어린 왕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저 깜깜한, 그러면서도 황홀한 밤을 홀로 떠가면서 그는 실제로 먼 별에서 온 어린 왕자가 돼 그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어린 왕자’를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의 진정한 차이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아이는 키가 자라듯 생각도 자라고 성숙해져서 ‘어른’에 이르는 걸까. 그런데 비행사 생텍쥐페리는 생각의 감옥을 만드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는 일을 어떻게 했을까. 그는 비행하는 동안 하늘의 한쪽에서 떠오르는 다른 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구의 어느 한쪽에서 봤을 때 떠오르는 그 해는 반대쪽에서는 지는 해였을 것. 하늘에서 보는 밤, 낮, 아침의 의미는 따라서 고정돼 있지 않거나 뒤집힐 수 있다. 지상에서 움켜쥐거나 열망했던 것들도 하늘에 떠서 봤을 때는 하찮게 보이거나 덧없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시각과 시야의 변이가 자연스럽게 사고의 변용을 불러온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 ‘어린 왕자’의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상상력은 사실 시야 혹은 시점 이동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생각 전복일 수도 있었으리라. 내가 머물렀던 사하라의 별 밤을 해뜨기 기다려 출발하면 오후에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닿게 된다. 지난밤의 그 와르르 쏟아질 듯한 별 밤은 환하고 시끌벅적한 도회에서는 환몽(幻夢)처럼 된다. 석양에 파리를 떠났던 고독한 밤의 여행자는 역시 먼 비행 끝에 북아프리카의 튀니스에 와서야 해 뜨는 땅을 밟았을 것이다. 그 튀니스의 오르막길 끝에 오래된 문인 카페 데나트(돗자리라는 뜻)가 있다. 이슬람식 작은 창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전망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그 오래된 카페에는 프랑스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발길이 잦았다고 한다. 작가 앙드레 지드, 화가 파울 클레 같은 이의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는 그곳에 생텍쥐페리도 자주 왔다고 한다. 그곳의 창가에 앉아 그는 둥근 지구와 수평의 지구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을까. 보아뱀이 모자로 보이듯 비행을 마치고 그곳에 왔던 그로서는 바다가 하늘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말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생텍쥐페리(1900∼1944)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서양 경전 같은 어린 왕자를 잘 읽기 위해서는 홀로 밤의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거나 사하라에 가서 고개를 한껏 젖혀 밤하늘의 별 밤을 보는 일일 것 같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생텍쥐페리(1900∼1944)

‘어린 왕자’ 작가이자 비행사… 44세 프랑스로 가던중 실종

“용기가 없다면 단 한 번의 이착륙도 해낼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서문에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썼다는 문장이다. 그런 면에서 생텍쥐페리는 노후한 공군 수송기와 정찰기로 지중해를 왕래한 용기 있는 비행사였던 셈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 이름이 문장만큼 긴 그는 소설가이자 공군 장교로, 문학적 성취와는 달리 북서 아프리카와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 개척자 중의 하나였고 야간 비행의 선구자였다. 그 공로로 사후 프랑스 국가 훈장도 받았다. 신비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그는 밤의 비행기록 일지 혹은 몽상이라 할 수 있는 ‘야간 비행’과 ‘어린 왕자’로 불멸의 작가가 됐다. ‘남방우편기’ ‘인간의 대지’ ‘비행사’ 같은 비행과 관련된 자전적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고 특히 ‘야간 비행’과 ‘어린 왕자’는 별도의 어록들이 편집될 만큼 사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44세던 1944년 여름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한 기지에서 정찰 비행기로 프랑스 본토로 떠난 후 실종됐는데, 귀로 중 독일 전투기에 격추,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행방불명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2004년 노르망디 가까운 해저에서 그의 비행기 기체가 발견됨으로써 최종적으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