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김사장의 요즘 소설>“어느날 딸이 사라졌다”… 가족애는 왜 불행 뒤에 생겨날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 내 딸이 사라졌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난 후로 가끔 한 번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평소에는 데면데면한 남동생이 누나가 아프다는 얘길 듣고 집으로 찾아가기 직전이던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누나는 뭘 좋아하냐고. 잠깐 생각한 아버지가 내놓은 대답은 단팥빵. 그 말을 듣고 제과점에 들렀던 동생이 “누나, 단팥빵 좋아하지, 많이 먹어” 하고 내미는데 지영 씨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 단팥빵 안 좋아하는데. 단팥빵은 어릴 때부터 네가 좋아했지. 나는 크림빵 좋아해”라고. 지영 씨의 아버지는 왜 단팥빵이라고 대답했을까.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전체 흐름으로 볼 때 평소에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어느 부모든 신경이 더 쓰이는 자식과 신경이 덜 쓰이는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악의는 없어도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곤 하는 부모는, 늘 지나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명한 부모는 그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때 내 딸이 사라졌다’(왼쪽주머니)의 로럴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이혼한 뒤 걱정이 많아졌다. 아들 제이크의 얼굴에 여드름이 난 것도, 딸 해나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도 걱정이자 스트레스다. 오직 막내딸 엘리만이 기쁨이었다.

한데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엘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문제는 이게 가출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로럴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가고, 혼자 식탁에서 토스트를 먹는 해나를 보며 ‘네가 사라지고 엘리가 토스트를 먹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10년 후. 마침내 경찰은 뺑소니로 결론을 내린다. 사건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아니,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엘리의 장례식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나 로럴이 플로이드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던 어느 날 플로이드의 딸 포피를 만난 로럴은 깜짝 놀라고 마는데. 왜냐면 포피가 엘리의 어릴 적 모습과 그야말로 판에 박은 듯 닮았기 때문이다.

엘리가 사라졌을 때의 나이는 열다섯, 현재 포피의 나이는 아홉 살. 쾌활한 성격이나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닮은 포피가 등장하는 (전체 분량의 2할쯤 되는) 대목까지 읽고 나면 결말이 짐작 가능하지만 이 소설의 굉장한 점은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 이후에야 비로소 가족애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로럴의 모습을 보며 그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듯하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