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클럽서 춤출 수 있는 판소리”…‘흥’ 내려온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치 멤버인 소리꾼 안이호(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권송희, 드러머 이철희, 베이시스트 장영규, 소리꾼 이나래·신유진이 지난 10일 서울 연희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 ‘조선의 힙스터’…‘범 내려온다’ 열풍 국악밴드 이날치

내달 2일 통영음악제서 공연
최대 클래식 무대 이례적 초대

악기 구성서 기타 과감히 빼
“비트·노래 사이 ‘재밌는 충돌’
뭔가 낯선듯 중독적 음악 추구”

관광공사 홍보 영상 인기 폭발
정치권 선거 로고송 문의 빗발
“새 서사와 멜로디로 도전 계속”

도대체 뭔가. 이것은 판소리인가, 팝인가. ‘조선의 힙스터’ 이날치 음악을 처음 들으면 이런 물음부터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베이스와 드럼이 만드는 독특한 리듬에 몸이 들썩이고, 중독성 있는 가사를 흥얼거리게 된다. ‘1일 1범’ 열풍을 낳은 ‘범 내려온다’부터 지난 2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여보나리’까지 어떤 곡을 고르든 마찬가지다. 판소리와 대중음악의 경계를 신명 나게 허무는 ‘K-흥’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밴드 이날치가 내달 2일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 오른다. ‘범 내려온다’ ‘여보나리’ ‘약성가’ 등 2019년 데뷔 후 발표한 12곡 전부를 80분 동안 선보인다.

이날치는 장영규·정중엽(베이스), 이철희(드럼) 등 연주자 3명과 권송희·이나래·신유진·안이호 등 소리꾼 4명으로 구성된 혼성 밴드.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는 국내 최대 클래식 축제에 ‘얼터너티브 팝 밴드’가 초대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파질 세이 등 쟁쟁한 클래식 스타 사이에서 ‘힙’한 국악 멜로디로 통영의 밤을 물들일 예정이다. 팬들이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음악을 이날치는 어떻게 정의할까. 일정상 불참한 정중엽을 제외한 6명을 지난 10일 서울 연희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클럽에서 들으며 춤출 수 있는 판소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1집만으로는 뭔가 아쉬워 한 번 더 ‘수궁가’를 활용해 육지로 떠나려는 별주부를 아내가 만류하는 대목에 리듬을 붙인 게 ‘여보나리’입니다. ‘남들 다 하는 방식은 안 된다’ ‘비트는 4박인데 3박의 노래가 들어오는 식의 재미있는 충돌을 끌어내자’ 같은 원칙을 갖고 7명이 함께 곡을 만들어요. 악기 구성에서 기타를 과감히 제외한 것 역시 이날치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아이디어죠. 조선 후기 명창인 ‘이날치(본명 이경숙·1820∼1892)’가 날쌔게 줄을 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 것처럼, 밴드 이날치도 여러 장르를 날쌔게 오가고 있어요.” 그룹 리더인 장영규는 이날치의 음악적 지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나홍진 감독의 ‘곡성’ 등 70여 편의 영화에 참여한 음악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음악 작업이 ‘별난’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상업주의와 작가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은 이들 영화 예술가와의 교류가 이날치 음악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장영규의 설명에 옆에 있던 이나래가 말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음악보단 단점이 99가지여도 확실한 한 가지 장점이 있는 음악에 끌려요. ‘뭔가 이상한데 중독된다’는 팬들의 반응은 이날치 음악의 특별한 매력에 주목한 결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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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 홍대 클럽가에서 입소문을 탄 이날치의 인기는 지난해 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협업한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사진)을 통해 폭발했다. 정장에 고무신을 신고 머리엔 갓을 쓴 무용수들이 ‘범 내려온다’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춘 이 영상은 최근 유튜브 조회 수 6억 뷰를 돌파했다. 이런 인기 덕분에 이날치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으로부터 ‘범 내려온다’를 로고송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한다. 장영규는 “가사에서 ‘범’을 정치인 이름으로 바꾸면 명쾌하게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라며 “비슷한 시기에 여야 양쪽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바람에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유진과 권송희는 “전통적인 국악인의 길을 걸었다면 받기 힘들었을 관심이 신기하고 감사하다”면서도 인기에 휩쓸려 본질을 놓치진 않겠다는 다짐을 내비쳤다. “대중의 사랑이란 유효기간이 있고, 언제든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경계하는 건 ‘범 내려온다’가 사랑받았으니 또 비슷한 스타일을 반복하자는 게으름이에요. 이날치가 이날치에 집중해야 팬들도 계속 사랑해주시겠죠.”

멤버들은 ‘이날치 열풍’ 이후 추다혜차지스·허송세월·악단광칠 등 여러 국악 밴드가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모습에 대해 반가워했다. “밴드 음악으로 한국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아요. 지난 20년간 꾸준히 활동한 팀이 몇 개나 있을까요. 이날치가 한 역할은 접할 기회가 잘 없던 국악을 들을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준 거예요. 그 덕분에 경쟁 그룹이 많아지고 시장 자체가 넓어진다면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도 커지겠죠.”

내년 공개될 정규 앨범 2집에 어떤 스타일의 곡이 담길지도 팬들의 관심거리다. 이철희는 “판소리가 포함된 대중음악”이라는 지향점은 잃지 않되 “‘수궁가’를 비롯한 판소리 다섯 바탕은 더 이상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알려진 판소리에 리듬과 가사를 붙이는 건 ‘여보나리’가 마지막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사’와 ‘멜로디’를 전부 새로 만들려고 해요. 험난한 도전을 계속해야 펄떡이는 이날치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